-> 하루에 화장실에 몇 번 가는가? 공중화장실은 그 중에 몇 번이나 되는가? 당신 같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화장실이 항상 깨끗할까? 주인공은 무엇인가를 정화하는 것 같다. 정화의 대상은 자기 자신도 포함이다.
문) 왜 자꾸 점수를 매길까?
-> 점수를 줌으로써 얻게 되는 편안함을 생각했다. 해독할 수 없는 인물과 지금 이 상황이 주는 공포를 잊고 싶은 마음일까? 꿩처럼?
문) 왜 이렇게 정성스럽게 청소하는 걸까? 돈 더 주는 것도 아닌데.
-> 퍼펙트 데이즈는 수많은 나날이 이어져 있는 복수형을 의미하는 알파벳 S가 영화가 한참 끝나고 나서도 지렁이처럼 내 시선에서 떠나지 않고 흐느적거리는 영화다. 주인공은 신념적으로 정성스럽게 청소한다. 이렇게 청소하는 이 순간만이 서로 연결이 되어 보인다. 화장실 청소를 하기 전에 주인공의 삶은 영혼의 골다공증을 앓는 사람처럼 공허했을 것이다. 제목이 퍼펙트 데이즈인 것은 정성스럽게 화장실 청소를 하는 나날들과 연관이 있다. 흑인 관광객에게 바디 랭귀지로 화장실 사용법을 이야기해주고, 화장실 구석에 꽂혀 있는 쪽지에 답장을 쓰는 일도 퍼펙트 데이즈를 구성하는 소중한 모멘텀이다.
문) 주인공은 왜 딱 한 번 진심으로 화를 냈을까? (인력 공급이 안 돼 2인분의 일을 하게 되었을 때)
-> 정성을 들일 수 없는 상황은 그에게는 존재부정과도 같은 것이다.
문) 히라야마의 여동생은 아직도 화장실 청소를 하느냐 물었을 때 히라야마는 왜 힘겨운 미소를 지었을까?
-> 여동생의 딸은 외삼촌 청소를 돕는다. 휴리스틱이 묵은 먼지처럼 쌓인 시선과 초심의 정결함이 반짝이는 두 시선이 서로 다투면서 차이가 선명히 드러난다. 장자는 두 여자와 사는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에게 친구는 갖은 구박을 늘어놓았지만, 못생긴 여자에게는 살갑게 대했다. 친구는 못생긴 여자는 자신이 못생겼다는 것을 알기에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자신이 못생겼다는 사실을 잘 안다는 것은 얼마나 안심 되는 일인가? 그래서 나는 히라야마가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게 안심스럽다. 하지만 여동생에게 이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히라야마는 차라리 그 세계의 부적응자가 되기로 했다.
문) 왜 마지막에서 그렇게 오래 울었고, 롱테이크로 잡았나?
-> 퍼펙트 데이즈를 한땀한땀 채워가던 히라야마는 임계점에 도달했거나 어떤 지점을 통과했다. 예컨대 아버지를 마침내 넘어선 순간인지도 모른다. 여동생에게는 자신의 소질을 살리지 못하고 아직도 한심하게 사는 오빠지만, 그런 생각들이야말로 영광스러운 징표들이다. 일신우일신(민약 어느 날 내가 새로워졌다면 그 감각을 잘 기억해서 나날이 새로워져라)이라는 말처럼 어떤 새로움에 도달했다. 힘든 순간은 마침내 어제가 되었고, 추억할 수 있게 소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