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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Nov 27. 2017

알고보면 육아에 큰 도움되는 31권의 인문고전(上)

실제 아이를 키우면서 반복해서 읽었던 인문고전들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드물다
Sed omnia praeclara tam difficilia, quam rara sunt

이 말은 세상에서 가장 읽기 힘들다는 인문고전 중의 하나인 『에티카』의 마지막 대목이다. 근대 철학자 스피노자는 책을 쓰는 내내 읽기 힘들어하는 독자들을 위로하는 말을 건넸는데, 맨마지막에는 마치 표창장을 주듯 이 말을 해준다. 두 달 동안 종이에 책을 베끼며 이 구절을 품에 안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부모들은 인문고전이 얼마나 훌륭한 육아서가 될 수 있는지 잘 모른다. 고귀한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드물기 때문이다. 부모가 손만 내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녀교육서는 심리학서나 개인적인 경험을 근거로 하고 있고, 심리학서는 인문고전을 근거로 하고 있다. 육아의 오리지널리티는 인문고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육아의 지혜를 인문고전에서 직접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마음으로 동양고전, 서양고전, 문학고전을 뒤적였다.


1. 까라마조프 씨네 형지들 상,중,하


1. 좋은 아빠와 나쁜 아빠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궁금하다면 -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은 아버지가 자식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2대에 걸쳐서 이야기하는 도스또예프스끼의 만년 대작이다. 당시 유럽의 자유주의 사상이라는 큰 흐름과 대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쁜 아버지와 좋은 아버지를 모두 캐릭터로 제시하고 있으며,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을 법정에 세우는 문학적인 과감함을 보여준다. 나도 아버지로서 '그 법정'에 세워진 느낌이었다. 아버지에게 안 좋은 영향을 받은 아이가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요리사 스메르자꼬프를 보라.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행한 후에 비로소 자식 된 도리를 물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아버지가 아니라 반대로 우리 자식들의 적인 것입니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2. 노자의 도덕경


2. 아이를 직접 낳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와는 다른 영향력을 줄 것이라 믿는 아빠를 위한  <도덕경>


아이와 아빠 사이에 '틈'이 있다. 아이와 한몸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처음에는 아이와의 거리감을 주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이 '틈'이 실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아빠가 '까치발'로 걷는 듯한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도덕경>은 철학의 핵심을 '아이'로 두고 있기 때문에 육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필독서다. 아이로 대표되는 낮은 존재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책이다. 아버지들은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고, 아이들은 생명 그 자체다. <도덕경>을 읽고 아이와 친해진다면 아버지는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가장 높은 지도자(아버지)는 아랫사람이 그가 있는 것만 겨우 알고, 그 다음 가는 지도자는 가까이 여겨 받들고, 그 다음 가는 지도자는 두려워하고, 그 다음 가는 지도자는 경멸한다. (도덕경)



3. 안자춘추


3. 자신의 아이에 대한 체벌과 보상이 뒤죽박죽이 아닌지 의심이 되는 아버지를 위한 <안자춘추>


"가령 안자가 지금 다시 있다면, 내 비록 그를 위해 마부가 된다 해도 기쁨과 흠모로 모시리라."(사마천)


제나라의 시장 한가운데에 안자의 집이 있었다. 제경공은 안자를 쉽게 부르려고 궁전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대저택을 짓는 계획을 세웠지만 무산되었다. 안자가 출장간 틈을 타서 일을 처리하려 했지만, 출장에서 돌아온 안자는 모든 것을 '원상복구'해버렸기 때문이다. 안자는 언제나 자신의 주군인 제경공에게 간언할 준비가 돼 있었다. 어느 날 제경공이 안자가 사는 동네인 시장의 물가 이야기를 했을 때 '특수신발'의 가격은 매우 비싸고, 일반신발의 가격은 매우 싸다고 설명했다. '특수신발'은 바로 제경공이 형벌로 발을 베어버린 사람을 위해 특수하게 제작된 신발이었다. 그만큼 제경공은 형벌이 가혹했고, 사치스러웠다. 제나라는 제경공으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강씨에서 '전씨'로 정권이 넘어갔다. 안자는 경공을 불편하게 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경공은 꾹 참으면서 안자의 말을 경청하고 그의 말대로 했다. 경공의 위치에 아버지를 놓으면 안자의 불편한 말이 아이를 키우는 데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 안자가 죽고 나서 17년이 흘렀을 때 제경공은 자신의 활솜씨를 칭찬하는 대부들이 기분 나빠서 활을 던져버리고 이렇게 한탄한다. 사람에게 이런 흔적을 남길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현장! 내 안자를 잃은 지 이미 17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동안 나의 잘못을 지적해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내 지금 활을 쏘아 과녁을 맞혔더니,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소리가 마치 한 사람 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하였습니다.


4. 정본 백석 시집


4. 아버지의 덕德이란 어떠해야 하는가가 궁금한 아버지를 위한 <정본 백석 시집>


백석 시집에는 백석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적다. 직접 등장하는 게 한 번, 간접적으로 언급되는 게 한 번. 이게 전부다. 하지만 그 임팩트만은 강렬하다. 나는 짧게 언급되는 장면 속에서 '아버지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실제로 아이를 키울 때 백석의 아버지에게 본 모습이 큰 도움이 되었다. 백석의 아버지는 아이를 억누르지 않는다. 아니 억누르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한다. 아버지 아래에서 백석은 자신의 감정을 숨김 없이 드러내고 행동하며 느낀다. 무릇 아버지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아이에게 자유롭고 푸근한 느낌을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백석 시집을 읽고 나서 나는 아이의 마음에서 순수하게 솟아나오는 감정을 되도록 꺾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존중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아이가 어른이 되면 고향에 와서 내 친구를 만날 수도 있겠지. 내 친구의 입을 통해서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런 글을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백석의 '고향')


5. 로버트 오언


5. 아이에게 큰 선물을 주고 싶은 아버지를 위한 로버트 오언


우리가 공상적 사회주의자쯤으로 알고 있었던 로버트 오언은 산업혁명이 인류를 덮쳤을 때 '사회'를 우리에게 선물해준 사람이다. 그가 없었다면 아마 우리는 지금쯤 처절한 경제동물로 살점을 뜯기며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영국에서는 아이가 유치원갈 나이가 되면 공장으로 보내는 게 정석이었다. 공장에 나가서 한푼이라도 더 벌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이런 방법은 아이 개인을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영국을 위해서도 위험천만한 짓이었다. 이것을 실질적으로 멈춘 사람이 바로 로버트 오언이다. 어린이에게 실질적인 자유를 준 사람. 그는 어렸을 적 아이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교육받지 못하고 산업 현장으로 끌려가 개처럼 노동해야 하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자랐다. 영국의 어린이들이 공장일을 하는 게 당시의 상식이었던 것처럼, 한국의 어린이들은 학원에 가는 게 상식이 되었다. 이것을 중지시켜줄 한국의 오언이 필요하다. 아동노동이야말로 영국경제의 번영이라는 상식에 맞서 오언이 주창한 아동교육과 보육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를 듣고 있으면 지금도 피가 뜨거워진다.


다 자라지도 못한 아이들을 일터로 보내 한 푼이라도 더 우려내려는 부모들은 그 아이들이 미래에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을 날려버리는 셈이며,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미래에 향유해야 할 건강, 안락, 좋은 품행 등도 모두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로버트 오언)



6. 한비자1,2


6. 아이를 가르치기 전에 충족해야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를 위한 <한비자>


한비자는 라포 형성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라포(rapport)'라는 말은 최근에야 불린 이름이지만, 2천여년 전에도 유세가들은 설득을 위해서 반드시 길러야 하는 기술이었다. 상담자와 내담자의 호의적인 분위기를 뜻하는 이 단어는, 아버지와 자녀, 스승과 제자, 상사와 부하, 정치인과 유권자 등 관계 전반에 적용할 수 있다. 정작 한비자는 진나라 왕과 라포 형성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바쳤기에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물론 라포 형성이 한비자의 핵심은 아니다. 한비자는 법가 사상가로서 합리적인 행정 시스템으로는 전국 통일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강력한 법 집행을 통해 국가를 최고로 효율적으로 하는 전체주의 정책을 제안했고, 전체주의와 어울리는 분위기를 가진 중국 서쪽 변방의 진나라에 의해 채택되었다. 아이와 관련해서는 '권위'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서 배울 수 있다.



7. 생각에 관한 생각

7. 내가 아이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를 위한 <생각에 관한 생각>


예전에 나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심리학 책을 읽으려고 했다. 심리학이 그런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심리학 책을 읽어본 결과 사람의 마음을 알기는 개뿔? 하지만 나의 마음은 알 수 있었다. 마치 안 쓰는 근육처럼 미처 살피지 못했던 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명백한 것조차 못 볼 수 있고, 자신이 못 본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는 다니얼 카너먼의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어른은 세상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익숙한 방식으로 보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조차도 그런 식으로 바라보려고 할 때 항상 문제가 생긴다. 아이들은 '편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이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편향'을 걷어내야 한다. 다만 주의할 것은 '편향'이 '제거'의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편향 없이 1초라도 운전을 할 수 있겠는가? 편향을 '이해'하기만 해도 아이와 소통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책 안에 등장하는 두 가지 비유인 시스템1(직관)은 아이와 어울리고, 시스템2(이성)은 부모에게 어울린다. 얼핏 보면 이성이 옳을 것 같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성이 옳을 때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아이의 직관을 충분히 믿고 존중하며, 그 의미를 해석하려고 한다면 아이와의 소통의 문이 열릴 것이다.


직관을 고치다가 인생이 복잡해질 수 있다 (생각에 관한 생각)



8. 리어왕


8. 아이와의 의견차이를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는 아버지를 위한 <리어왕>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스토리는 주변에서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다. 부모의 그릇된 선택이 가장 불행한 결과를 낳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예컨대 아끼고 사랑하는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아버지를 상상해 보라. 그 재산 때문에 형제들은 원수가 되었다. 안 준만 못한 결과가 된 것이다. 재산을 받은 자식에게 부모가 홀대당하는 것은 어떤가? <리어왕>은 문학 작품에만 있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무한반복 일어나는 일이다. <리어왕>에는 두 명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리어왕과 글로스터 백작. 이들의 실패를 잘 살피면 똑같은 실패는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역시 영국 작가인 조지 오웰이 만든 낱말이지만 '이중 사고(double think)'에 대한 성찰도 인상적이다. 리어의 첫째 딸 리간과 둘째 딸 고너릴은 전형적인 이중 사고를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내가 본 아이들 중에서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생각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이를 이중 사고에 가두지 말지어다.


권력자가 아첨에게 절할 때 신하가 두려워서 말 못 할 줄 아시오? 주상이 우둔할 땐 직언이 명예로운 법이오. (켄트 백작)


9. 에티카


9. 아이의 감정적인 고통을 이해하고 줄여주고 싶은 아버지를 위한 <에티카>


심리학에 대한 본격적인 탐색이 시작된 것은 르네상스 전후이다. 파스칼의 <팡세>, 라 로슈푸코의 <잠언과 성찰>도 이 시기에 쓰였다. 인간성과 인간에 대해서 탐색한 사람들을 일컬어 모럴리스트(moralist)라고 부른다. 스피노자 역시 인간의 감정을 48가지로 분류했다. 이 중에서는 마치 주역의 음괘와 양괘처럼 큰 감정이 세 가지 있다. 욕망, 기쁨, 슬픔이다. '욕망'은 감정 그 자체를 말하니 사실상 '기쁨'이라는 +값과 슬픔이라는 -값의 비율에 따라서 감정이 결정되는 것이다. 마치 화학공식처럼 감정을 분석하듯, 스피노자는 마치 도형을 다루듯 인간을 분석하고 있다. 아이들을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오랫동안 관찰할 기회를 얻었던 나는 감정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아이들의 감정적 고통이 내 상상을 가볍게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그걸 알고 나서는 아이들의 감정적 고통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에티카>는 여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들이 원인을 인식하는 한에서 슬픔은 슬픔이기를 멈춘다. (에티카)



10. 존재의 심리학


10. 아이를 아이가 아니라 인생의 파트너로 대하고 싶은 아버지를 위한 <존재의 심리학>


욕구 단계론으로 유명한 A.매슬로의 관점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아이를 성숙한 대상으로 보고 대화를 한다. 아이가 미숙하고 멍청하고 항상 간섭을 필요로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던 관점을 많이 씻을 수 있었다. 순전히 매슬로의 공덕이다. 매슬로가 미국인들에게 '어른의 종말'을 이야기한 부분이 나는 몹시 뜨끔하다. 당시 극장가에서는 '서부영화'나 '갱스터 무비'가 유행했다. 매슬로는 이 현상을 두고 어른이 사라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성인들의 가치가 아니라 청소년들의 가치에 근거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미국을 본받으려고 하는 한국에도 통하는 이야기다. 오히려 어른보다는 아이들이 더 어른스러운 모습들이 나오고 있으니까. <존재의 심리학>의 목표는 분명하다. 자기실현자를 만드는 것이다. 욕구이론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자기실현 욕구'에 실제로 도달했던 사람들에 대한 연구가 <존재의 심리학>의 주된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자기실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자질을 다른 사람에게서 끄집어낼 필요도 없고, 남들을 도구로 보지도 않는다. (존재의 심리학)



11. 어린 왕자


11. 점점 많아지고 깊어지는 아이들의 질문이 버거운 아버지를 위한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를 아이들에게 헌사하지 않고 어른에게 했다. 그리고 그걸을 아이들에게 사죄했다. <어린 왕자>가 어른을 위한 책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부모가 굳이 상징을 해석할 것도 없이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는 한 번 질문을 하면 멈추지 않는다. 부모가 어린 왕자처럼 한다면. 아이의 질문을 놓치는 법이 없고, 계속 생각을 이어나간다면. 부모는 피곤하겠지만 아이는 행복하지 않을까? 나는 어린왕자와 장미의 이야기를 주목하라고 말하고 싶다. 이 때의 어린 왕자는 '부모'에 비유할 수 있고, 장미는 '아이'에 비유할 수 있다. 장미는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말할 수도 없고, 말하는 방법도 모른다. 어린 왕자는 그런 아이 때문에 지쳐버렸다. 하지만 시가니 지난 후에 어린 왕자는 후회했다. 장미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한 사랑을 듣지 못한 것이다. 문학작품을 읽을 때는 이렇게 역할이나 상징을 대입하면서 생각할 수 있어서 생각하기 좋다.


어느 날 아침 조그만 양이 뭣도 모르고 이렇게 단숨에 없애버릴지도 모르는 그 꽃을 내가 사랑한다고 해봐. 그런데 그게 중요한 일이 아니란 말이야?(어린 왕자)


12. 나는 왜 쓰는가


12. 아이에게 제대로 된 자유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은 아버지를 위한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은 행동하는 지성, 행동하는 양심이다. 겉과 속이 다른 문인들, 그리고 그 문인들이 최근에 일으킨 일련의 추문들을 보면 글과 생활이 일치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실감한다. 조지 오웰은 아내를 사랑했지만 아이를 낳을 수 없어서 리처드를 입양했다. 하지만 리처드가 미처 자라지 못했을 때 아내가 세상을 떴다. 모두들 그가 아이를 고아원에 보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웰은 리처드를 끝까지 키웠다. "어린 시절을 완전히 다시 겪는 기분"이라는 말은 오랜 육아를 하고 나서야 할 수 있는 말이다. 오웰의 주제는 자유다. 우리 사회에서 '자유'는 위험한 물건쯤으로 다뤄진다. 내 아이에게도 그렇게 되길 바라는가. 아이의 자유를 위해서는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의 자유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부모가 제거해줘야 한다. 부모가 가만히 있어도 아이의 자유는 위협당한다. 좀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상상력이란 야생동물과 비슷해서 가둬두면 번식하지 못한다. (나는 왜 쓰는가)


13. 서유기1~10

13. 어떤 게 진짜 아이의 모습인지 헷갈리는 아버지를 위한 <서유기>


내가 40이 되도록 서유기를 여태 읽지 않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서유기>는 아주 오랫동안 중국에서 연극으로 상연되었고, 이야기꾼들의 이야기로 공연되었다. 그러다가 '정본'(正本) 쟁탈전이 벌어졌다. 만약 삼장법사를 주인공으로 삼은 본이 승리했다면 서유기는 그저 그런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명나라의 별볼일 없는 퇴직 관리 오승은이 손오공을 주인공으로 삼은 서유기를 혼신을 다해 집필했고, 그것이 정본이 되었다. 손오공은 '여의봉'이란 걸 들고 다닌다. 스스로도 무엇이든 변신할 수 있고, 여의봉 또한 마음먹기에 따라서 크기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 용이 물고 있는 구슬 '여의주'와 이름이 비슷하다. '여의(如意)'라는 말은 '자신의 생각과 같이'라는 뜻이다. 아이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신하다. 그리고 못하는 이야기가 없다. 우리 집에도 두 명의 손오공이 있다. 아이들을 캐릭터로 한다면 손오공만큼 적절한 선택이 또 있을까? 그래서 <마법천자문>이 이렇게 잘 팔리는 거 아닐까? 81가지 재난을 처한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그리고 백마까지 포함해서 다섯 일행은 성장한다. 아이도 성장하고 부모도 성장하고, 아이와 부모의 관계도 성장한다. 부모가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서유기>를 한번쯤을 읽어봐야 한다. 맞다. 10권짜리 책이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완역본이 출간되었으니 그걸 추천한다.


도道가 한 자 높아지면, 마魔는 열 자나 높아지는 법


14. 암흑의 핵심


14. 아이 마음의 어두운 부분이 궁금한 아버지를 위한 <암흑의 핵심>


아이는 마냥 밝지 않다. 감정의 고통을 많이 받듯, 내면은 어두운 부분이 상당하다. 여기에는 부모들도 기여한 점이 크다. 왜냐하면 아이의 영혼에서 어두운 부분을 볼 때마다 밀어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로 간 유럽인들은 별 생각도 하지 않고 "수백만에 달하는 무지한 원주민들을 그네들의 그 무시무시한 풍습으로부터 떼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원주민들이 어떻다는 얘긴가? 아이의 어둠을 함부로 제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어둠을 주시하고 관찰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부모가 아이의 어둠을 봐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그 끔찍한 어둠이 뭔지도 모르고 고통을 받게 된다. <암흑의 핵심>은 암흑의 이중성이다. 부모가 보자마자 제거하려고 한 '어둠'이 있지만, 부모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두 번째 어둠이 진짜다. 진실은 실제 작품에서 확인하라. 더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곳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광경이나 소리나 냄새를 접하면서 참고 견뎌야 하지. (암흑의 핵심)



15.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5. 아이가 하는 사랑의 속도에 적응이 안 되는 아버지를 위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부모 세대의 사랑은 아이 세대에 비해 유치찬란했다. 사랑도 나이를 먹기에 부모의 사랑과 아이의 사랑이 같을 수는 없다. 낯설고 당황스럽지만 '존중' 외에는 답이 없다. 다른 남자의 약혼녀를 사랑한 예술가가 유부녀가 되어버린 애인을 잊지 못해 이성을 잃고 헤매다가 상대의 절교 선언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이야기. 그리스신화로부터 시작한 유럽의 사랑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사랑의 척화비'를 세웠는지 부끄러워진다. 대문호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을 당시 독일과 유럽의 많은 젊은이들이 줄지어 자살하자 한때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지만, 지금 이 책을 읽고 자살할 사람은 없다. 사랑은 근원적인 힘이다. 아이의 유치하고 철 없는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이 그 자체다.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어른이 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을까? 베르테르의 마음을 이해하고, 사랑을 시작한 아이의 감정을 왜곡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미리 예방접종을 받는 의미로 일독을 권한다.


나의 상상력을 채우는 것은 오로지 그녀의 모습(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6.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16.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이가 부담되는 아버지를 위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아이와 부모는 같이 늙어가는 관계다. 왠만한 부모들은 자기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만 늙는 줄 안다. 아이에 대해서 의식적으로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 독자들이 흘린 눈물의 양만 모아놔도 댐 몇 개는 건설할 정도의 작품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울고 싶을 때 읽는 책이다. 제제는 자기만의 환상 세계를 만들어 놓고 산다. 때로는 악마의 얼굴로, 때로는 천사의 얼굴로. 나는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심한 눈으로 보고 있을 수도 있고, 이해하는 모습으로 보고 있을 수도 있다. 최소한 부모인 나보다 더 진지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을 것이다. 아이가 어른스러워서 고민이라면 아이처럼 진지하게 다가가면 된다. 뽀르뚜까 아저씨가, 쎄실리아 선생님이 제제에게 다가간 것처럼.


(아버지를) 제 마음속에서 죽이는 거예요. 사랑하기를 그만두는 거죠. 그러면 그 사람은 언젠가 죽어요. (제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위 책들은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에 담겨 있는 31권의 인문고전 중에서 16권을 소개한 것입니다. 스크롤의 압박을 견딜 수 없어서 불가피하게 '상-하'로 나눠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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