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학교 근처에 있는 공원에 잠시 들렀다. 걸어서 대략 10분 거리에 있는 곳이다. 특별히 어떤 이유가 있어서 들른 건 아니었다. 모처럼만에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나 할까? 이 무자비한 폭염에 사색이라니, 엉뚱해도 이보다 더 엉뚱할 수는 없지 싶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등골을 타고 연신 땀이 흘러내렸다. 끈적한 팔뚝에 내리 꽂히는 햇살은 금세라도 얇은 살갗을 태워버릴 기세였다.
최악에 가까운 날씨라도 언제나 그러했듯 나 혼자 생각에 빠져드는 시간은 반갑기 그지없다. 근처 편의점에 들러 시원한 음료수부터 하나 샀다. 용기의 표면을 타고 물방울이 몽글몽글 맺혀 있다. 이내 손바닥에 들러붙은 습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곧장 펼쳐 글을 쓸 수는 없지만, 손에 휘감고 싶은 냉기 덕분에 열기마저 식어간다. 갈증도 나고 허기가 져 마음 같아선 당장 한 모금 마시고 싶지만, 뚜껑을 따면 사라질 냉기를 더 오래 붙들어 두고 싶어 조금만 더 견뎌보기로 한다.
이런 날씨에 공원 벤치에 나와 있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역시 날씨가 어떻건 아랑곳하지 않고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십여 명의 아이들이 눈에 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몇 번은 속을 뒤집어 놓을 듯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도 그들은 꿋꿋이 놀고 있었다. 아이들은 발바닥에 땀이 많아 뛰는 게 일상이라고 누군가가 그랬다. 마치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불볕더위에도 가만히 있는 녀석이 없었다.
주변 소음도 나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간간이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정도의 부산스러움이라도 있는 것이 절간처럼 조용한 것보다는 낫다고 여겼는데, 이젠 귀에 익숙해진 탓에 어느새 자장가처럼 들렸다. 잔뜩 달궈진 벤치에 앉아 뜨거운 햇빛을 받고 있다. 이곳 역시 태양광선을 피할 데는 없다. 어디에나 양지뿐이었고, 몇몇 나무가 드리운 그늘 밑으로 옮겨 봐도 열기를 식혀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근처 커피숍에서 틀어놓았는지 아니면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나온 어떤 엄마가 재생한 건지는 몰라도 느린 템포의 노래까지 들려왔다.
햇빛 때문인지, 아이들의 목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음악 때문인지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스르르 눈이 감기려 했다. 별로 한 일은 없지만, 하루 일과를 끝낸 탓이라 생각했다. 요즘 들어 부쩍 그랬다. 지금처럼 이렇게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한자리에 앉아 있다 보면 곧잘 잠이 밀려오곤 했다. 친구가 우스갯소리로 그게 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라고 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건 아니지만, 그리 많지도 않은 나이가 내겐 버겁게 느껴졌다. 명상을 하려다 잠에 빠져들고 말 듯 사색을 위해 시간을 낸 자리가 무색해지려 했다.
어쨌거나 모처럼만에 여유를 즐겨 본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리는 없다. 또 어느새 생각은 글쓰기의 언저리에 닿아 있다. 마치 귀소본능을 지닌 조류처럼 그 어떤 생각을 하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은 그 자리로 들어서고 만다. 왜 글을 써야 하는지,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글쓰기를 통해 이루려고 하는 목표는 무엇인지, 그리고 언제까지 글을 쓸 계획을 갖고 있는지 등등, 결론도 없는 생각에 또다시 빠져들고 만다.
생각도 체력이 있어야 가능하고 글쓰기도 엉덩이의 근육으로 버틴다고 하더니 더는 앉아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참에 보약이라도 한 첩 지어먹는 게 좋겠다며 생뚱맞은 생각을 해 본다. 그러고 보니 결혼한 이후 그 흔한 한약 한 번 먹어본 기억이 없다. 버스운행정보시스템 앱을 확인하니 역으로 가는 버스가 10분 안에 올 듯했다. 이 버스를 놓치면 다시 40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미련 없이 공원을 나섰다. 정류장까지는 도보로 5분 거리, 숨 한 번 크게 쉬고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