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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이유

39일 차

by 다작이

가끔씩 내게 왜 글을 쓰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재미있고 할 만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널려 있는데, 하필이면 그 따분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글쓰기여야 하냐고 그들은 힘주어 말하곤 한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글쓰기는 참 재미없는 일이지 않냐는 듯 내 동의를 구한다. 엄밀히 말해서 그들의 말이 틀렸다고 보기도 힘들다. 말초신경을 자극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는 일들이 요즘과 같은 때에 얼마나 많은가?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게 목적이라면 글쓰기 따위는 애초에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아 보지 않은 이들은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가 보지도 못한 길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최소한 그건 직접 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테다. 물론 지금 내가 하는 말은 글쓰기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다. 가령 낚시든 골프든 이치는 매한가지다. 심지어 아무 짝에도 쓸데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SNS 중독도 삶에 특별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누군가에겐 신세계를 선사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꽤 오래전의 일이다. 잠깐 바둑에 빠져 본 적이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난 바둑이라는 건 천하의 할 일 없는 한량들이나 일삼는 신선놀음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바둑을 접하고 보니 내가 몰랐던 색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 무궁무진한 수에서 나오는 오묘함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 되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사람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같이 바둑을 둬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건 아마도 앞에서 말한 낚시나 골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그 말은 무엇이든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주 잠깐 동안이라도 빠져 지낼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글쓰기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활동임이 틀림없다. 어느 정도의 재능이나 소질이 뒤따라야 재미를 느낄 수 있고, 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소질 부족이 작지 않은 스트레스를 가져오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도 있다. 즉 아무리 글을 쓰고 싶어도 혹은 아무리 글을 쓰려해도 단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는 날이 오기도 한다.


일전에 얘기했듯 내게는 틈만 나면 골프를 치러 다니자고 하는 사람이 있다. 또 어떤 분은 등산을 다니자고 한다. 그 두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골프나 등산만큼 유익하고 재미있는 일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느냐며 말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굳이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굳이 그러려는 일말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필드에 나가거나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깎아내리려는 뜻은 없다. 그 세계에 맛을 들이지 못한 나로서는 하필이면 그 많은 것 중에서 왜 등산이냐 혹은 골프냐.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이치기 때문이다.


내게 왜 글을 쓰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좋으니까'라는 한 마디면 족하다. 그 외에 무슨 다른 말이 필요할까? 좋은 건 그저 좋은 것이다. 그 말은 곧, 좋아하는 데에는 굳이 별도의 이유가 필요 없다는 뜻이겠다. 글쓰기의 가치나 효용은 그 차후의 문제이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빠져들어 즐길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으로 좋아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난 그 많은 것들 중에서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혹시 당신은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많은 것들 중에서 하필이면 글쓰기에 빠져 있는 이유를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는가? 적어도 내게는 그런 이유가 없는 것 같다. 그건 지금껏 등단해 본 적이 없고, 어쩌면 요즘 시대에 지극히 당연한지도 모를 그 흔한 단행본 하나 출간한 적 없는 내게 말이다. 누군가는 그래서 내가 등단도 혹은 출간도 못한 것이라고 하지만, 뭐 아무려면 어떻겠는가? 그저 내겐 '좋으니까'라는 한 단어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한 일이 바로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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