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끔씩 오는 그날

by 다작이

오늘 어쩌면 또 그날이 온 게 아닌가 싶다. 한 달에 많아 봤자 두세 번도 안 되는 그날 말이다. 그날이 되면 어김없이 글쓰기가 싫어진다. 그전까지 아무 문제 없이 글을 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루아침에 글이 싫어지는 것이다. 휴대전화를 하루 온종일 끼고 있으면서도 브런치 앱에 접속할 결심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커피전문점을 스쳐 지나가고 가방에는 노트북까지 짊어지고 있지만, 꺼내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책이라도 꺼내어 읽으면 그나마 다행일 테다. 그런데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기 일쑤다.


사실 내게 있어서 삶의 유일한 낙이 글쓰기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오늘 같은 날이 반복되는 건 그리 좋은 신호가 아니다. 그 유일했던 낙이 일시적으로 사라지면 이내 나는 온갖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생각이 이미 그런 궤도에 오르면 어떤 것을 해도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또 뭘 해도 제대로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부터 든다. 그래서인지 평소 같으면 1시간 내외로 쓸 수 있는 글을 두세 시간씩 만지작거리게 된다. 글쓰기의 효율은 당연히 바닥을 치고 만다.


무료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글쓰기다. 일상에 지쳐 돌아볼 틈이 없던 나 자신을 만나는 시간이 바로 글을 쓰는 시간이다. 또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사는 것 같이 보여도 뭔가를 계획하고 지속적으로 해 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얻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그나마 주말에 이런 생각에 젖는 게 다행인지도 모른다. 만약 평일이라면 기본적인 일 외에는 아예 손을 붙들어 매고 있어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스러울 정도로 손에서 글을 못 놓는 이유가 있다. 글쓰기는 나 자신과 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누가 지켜 보건 말건 간에 매일 빠뜨리지 않고 글을 쓰는지, 매의 눈으로 주시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다. 다른 사람은 내 글쓰기에 하등의 관심이 없다. 굳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도 없다. 각자의 삶을 사는 데에 바쁘기 때문이겠다.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것도 모를 테다. 가끔은 늘어지고 싶고, 하루이틀쯤은 건너뛰고 싶어도 내 글쓰기는 이어진다. 질적으로 떨어지는 글을 쓰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왕 시작했다면 기어이 끝을 맺고야 만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글쓰기이다 보니 이 첫 관문을 잘 넘어가야 하루가 순탄히 진행된다. 설령 하루의 끝을 앞두고 있다고 해도 사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쓰고 있던 글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야 하루가 매끄럽게 마무리된다. 그래서 쉬지 않고 손을 움직인다. 글을 쓰기 싫은 마음이 커도 지하철 좌석에 앉은 채 온 머리를 쥐어짜 내며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자꾸 버벅대는 느낌이 든다. 손은 계속 움직이고 있는데, 끝도 없이 나타나는 과속방지턱 앞에 속도를 줄인 자동차처럼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평소와 비교했을 때 글 쓰는 속도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원래 나는 글을 쓸 때 이미 쓴 앞부분을 읽어보지 않는다. 문장을 더 매끄럽게 하겠다는 이유로 이미 완료한 부분을 읽다 보면,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자꾸만 앞 문장을 읽어 보게 된다.


글을 잘 쓰는 특효약이나 비책이 따로 없듯 글 쓰기 싫은 날을 대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둘 중의 하나다. 하루쯤은 글쓰기를 쉬거나 혹은 글이 쓰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려 보는 방법이 있다. 물론 이 선택지는 이미 나와는 인연이 없다. 죽이 되건 밥이 되건 간에 매일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다. 그냥 닥치고 쓰는 것뿐이다. 닥치고 쓴다고 해서 글이 더 좋아진다거나 뭔가가 해결되는 건 분명 아니지만, 최소한 한 편의 글은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간혹 살아가다 보면 끝없이 펼쳐진 직선길 앞에서 난감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도대체 이 먼 거리를 언제 다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곤 한다.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거나 아니면 막막해도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길의 끝에 도착한 나 자신을 만나게 되듯, 쓰기 싫은 날에도 쓰는 것 외엔 그 어떤 방법도 없는 것이겠다. 그것이 바로 글쓰기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메타, 나를 로봇으로 오해해 줘서 오히려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