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어디로?

by 다작이

어젯밤에 잠시 산책을 다녀왔다. 산책이라고 해 봤자 따로 정해진 코스는 없다. 늘 그랬듯 동네를 크게 도는 게 전부다. 신호등이나 오고 가는 차량만 없다면 제법 운동이 될 텐데, 가다 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는 형편이니 운동 삼아서 할 일은 못 된다. 마지막 행선지는 집 앞에 있는 편의점이다. 동네에 있는 꽤 많은 편의점 중에 나는 대체로 그곳만 간다. 원래 성격 자체가 숫기가 없는 편이라 새로운 가게는 잘 안 가는 편이다. 따뜻한 캔커피 하나를 사들고 나오려는데 주인이 말을 꺼냈다.

"날씨가 꽤 많이 쌀쌀해졌죠?"

"네, 그렇네요. 이제 반팔 티 입고 나오기가 좀 그럴 정도네요."

"더울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이러니, 가을이 사라진 것 같네요."


주인과는 안면이 있어서 가끔씩 이렇게 한담을 주고받곤 한다. 글쎄, 나이는 나보다 서너 살 정도 많을까? 일전에 같은 피트니스 센터를 다닌 적도 있어서 그런지 말 그대로 점점 지인에 가까운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의 말 때문일까, 오라는 가을은 온 데 간 데 없고 어느새 겨울이 성큼 다가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엔가 어떤 작가님이 가을이 아예 안 오는 거 아니냐는 말을 했다. 아무래도 너무도 잦았던 비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을까? 정말 이러다가는 벤치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긴 글렀다. 이제 겨우 10월 하순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11월, 무려 그 한 달의 시간이 지나가야 엄연히 겨울이 된다. 이건 시간이 빨리 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이상기후 때문이 아닐까?


이젠 어느새 우리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더는 우리나라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가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각각 세 달씩이라는 건 벽에 걸린 달력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기껏 해 봤자 내 어린 기억에 남아있는 꿈같은 소리일 수도 있다. 아마도 요즘은 이렇게 구분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봄 1개월, 여름 5개월, 가을 1개월, 그리고 겨울 5개월 등으로 말이다. 막상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봄과 가을이 지나칠 만큼 짧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가을의 초입이나 완연한 가을이라는 말 따위도 더는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을인가 싶더니 어느새 겨울이구나,라는 말이 가장 정확할 듯하다.


모르겠다. 아직 그럴 시간이 안 되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사는 곳이 관광지가 아닌 도심 한복판이기 때문일까? 예전처럼 화려한 색깔을 자랑하는 나뭇잎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학창 시절엔 꽤 쓸 만한 낙엽이 많아 주워다 코팅해서 책갈피로 쓰곤 했다. 심지어 더 예쁜 건 친구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었다. 요즘 누가 촌스럽게 그런 짓을 하겠냐는 말도 하지만, 사소한 추억거리조차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기 짝이 없다. 애물단지가 되어 곧 길바닥을 굴러다닐 몇 안 되는 낙엽들이 그리워졌다.


몇 년 전에 갔던 양산 통도사의 정경이 문득 눈에 그려진다. 터미널에 내린 후 버스로 갈아탄다. 아마 15분쯤 달렸던 것 같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펼쳐지는 풍광들이 신세계 같았다. 길게 뻗은 길을 따라가는 동안 예쁘고 아기자기한 나뭇잎들이 어찌나 많던지, 가을은 사찰에만 머무는구나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도심에서 가을이 사라지려 한다. 계절이야 어떻게 되었든 우리는 끝내 적응하고 말겠지만, 눈에 비치는 모습이 죄다 그래서인지 안 그래도 짧기만 한 이 가을이 영 모양이 나지 않는다. 분명 자연은 사계절을 뚜렷하게 나눠 놓았다. 그걸 억지로 자르고 잘라 여름과 겨울에 가져다 붙인 건 우리의 소행일 테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아쉬운 마음이, 또 안타까운 마음이 커져 간다. 그 완연하고 선선했던 가을을 이젠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마음 같아선 스쳐 지나가는 가을의 소맷자락이라도 잡고 싶지만, 문득 잡고 보니 겨울일까 봐 손조차 내밀 수 없을 듯하다.


조만간 통도사라도 한 번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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