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걸 빌멍이라고 해야 하나?

by 다작이

무슨 나그네처럼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무작정 움직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반월당 1호선 역 메트로 센터였다. 한 블록 내에 동성로 번화가가 있고, 두 블록만 더 가면 철도역 대구역이 있다. 넓은 네 거리가 있어서 오고 가는 차량도 굉장히 많은 곳이다. 물론 왕래하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많다. 수 천, 아니 수 만 명은 족히 오고 간다. 만약 누군가와 만날 약속을 했다고 하더라도 과연 저 많은 인파 속에서 상대방을 찾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럴 때면 아무런 약속 없이 혼자 나와 있는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건 아니다. 휴일에 도서관을 가지 않으면 으레 이곳에 들르는 게 하나의 루틴이 되어 버린 탓이 아닐까? 맞다. 이곳은 시쳇말로 내게는 글쓰기의 핫플레이스다.

"반월당에 꿀 발라놨어? 거긴 왜 그렇게 자주 가?"

진심으로 궁금하게 여기는 아내의 질문에 딱히 할 말이 없어 고개를 푹 숙이고 막상 집을 나서 보면 도착하는 곳이 이곳이다. 수 천 명의 행인들이 내게 글감을 던져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근처 카페라도 들어가 시간을 소일하지도 않는다. 늘 올 때마다 보는 저 많은 노인들처럼 나 역시 한쪽 구석으로 가 철제 벤치에 앉아 있을 뿐이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기껏 이러려고 왔어?"

아마 아내가 우연히 지나가다 나를 봤다면 그렇게 말하고도 남았으리라. 추레한 행색과 꾀죄죄한 몰골로 고개를 숙인 채 휴대전화의 키패드를 두드리고 있는 날 본다면 기겁했을 테다. 마치 한 열흘은 씻지도 않고 집을 나선 듯 꼴이 형편없다. 물론 아침에도 깨끗이 씻고 나왔다. 때 빼고 광을 낸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꼼꼼히 씻은 흔적은 온데간데없다. 한창 글을 쓰다 모처럼 만에 얼굴을 들었을 때 공교롭게도 아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것만큼 끔찍한 일도 없을 것 같다. 나이가 지긋한 남자들이 왜 집을 나설 때면 야구 모자를 쓰고 나오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


'모자가 어디 있었더라?'

그러고 보니 집에 내 소유의 모자는 없다. 아무리 바빠도, 설령 출근길에 지각하는 한이 있어도 내가 모자를 눌러쓰고 나올 수 없는 이유다. 내친김에 모자나 하나 사 갈까 싶어 지갑을 열어본다. 그리 넉넉하진 않아도 모자 정도는 살 여력이 있다. 게다가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수 십여 개의 상점이 있는 상가다. 그 흔한 모자 하나 파는 곳이 없을까? 그래도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정수리에 있다는 숨통이 눌리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덕분에 나는 좋건 싫건 간에 매일 머리를 감고 나오게 된다.

메트로 센터 내의 벤치에 앉아 있다 보면 가끔 숨이 막힐 때가 있다. 아마 저 많은 인파들이 뿜어내는 입김 때문이 아닐까? 그럴 때면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간다. 지하 공간은 사람 때문에 눈이 돌아갈 지경이라면 지상은 사방에 높이 솟은 빌딩들과 자동차들 때문에 눈이 쉴 곳이 없다.

'이런 곳이 뭐가 그리 좋다고?'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않듯 습관처럼 이곳에 오는 나조차도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정말이지 어딘가에 꿀이라도 발라 둔 데가 있나 싶을 정도다.


마치 시골에서 대도시에 갓 올라와 휘둥그레진 눈으로 사방을 둘러본다. 가장 낮은 건물도 5층 이상이고, 이십여 층 이상의 빌딩들도 셀 수 없이 많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라 그런지 이 좋은 길목을 차지하고 들어선 건 대부분이 병원 아니면 은행이다. 난데없이 우뚝 솟은 빌딩들을 보고 있다. 밤에 야외에서 운치 있게 둘러앉아 불을 바라보는 걸 불멍이라고 한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건 '빌멍'쯤이 되려나? 바람이나 쐬겠다며 지상으로 올라온 나는 팔자에도 없는 빌멍을 하고 있다.


슬슬 다시 지하로 내려가야겠다. 공기가 좋은 줄 알고 올라왔더니 어딘지 모르게 목이 매캐하고 눈까지 더 건조해지는 것 같다. 갑자기 공기가 좋은 곳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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