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난 돌이 정 맞는다.

by 다작이

우리나라의 속담 중에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이 있다. 바로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내 처지를 가장 단적으로 나타낸 말이 아닌가 싶어 제일 좋아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럴 때 속담의 위대함은 드러난다. 어쩌면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표현을 생각했을까? 곱씹어보면 볼수록 기가 막힌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정을 쥐고 돌을 두드리는 석공들은 자신이 구상하는 작품에 불필요한 부분을 가차 없이 두드려댈 것이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보기 싫게 튀어나온 부분을 제일 먼저 깎아내야 할 테다. 물론 돌을 다듬어 뭔가를 만들려면 때로는 평평한 부분도 모가 나게 만들 때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튀어나온 곳은 다듬을 수밖에 없고 언젠가는 다듬어야 할 부분인지도 모를 일이다.


한 자리에서 직장생활을 한 지 어느새 26년의 시간이 지나고 있다. 어느 한순간도 순순히 넘어간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평탄하게 지낸 기억조차 없다.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별나게 굴었을까 싶었다. 그건 꼭 내가 무슨 일에서든 기이한 생각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만 적지 않은 경우에 다른 사람들과 의견이 부딪칠 때가 많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심지어 다른 사람은 다 괜찮다고 하는 일에 나 혼자만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가 곤경에 빠졌던 경험도 꽤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게 특별히 모난 부분은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어디를 가든지 내가 선 곳이 모난 지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럴 때마다 이쯤이면 괜찮겠지 싶어 무리 속에 섞여 들어도 유독 나만 뾰족이 솟아오른 걸 보곤 한다. 나와 친분이 있거나 그나마 나를 좋은 방향으로 해석해 주는 사람들은 내게 주관이 뚜렷하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자기주장이 강한 내 모습이 부럽다는 말도 한다. 물론 나도 어느 정도의 눈치는 있다. 그런 호의적인 말이 결과적으로는 내가 고집이 세다는 걸 에둘러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모를 리 없다.


돌이켜 보니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는 그 정도가 극에 달할 만한 수준이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이 굴었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산 것에 대해 후회는 하지 않더라도 따지고 보면 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도 결국은 그 모난 부분 때문일 것이다. 아내는 종종 내게 그 모난 데를 정으로 때린다고 해서 평평해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말까지 한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도 아마 아내가 내게 가장 많이 한 말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적어도 그 부분에 대해선 구제불능이라는 뜻으로 하는 말인 셈이다. 그렇게 말할 때마다 섭섭하긴 해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체득한 진리가 있다. 아내의 말은 틀린 데가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봤을 때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다고 해도 할 수 없다. 사실이 그렇다. 이만큼이나 살아온 이상 노력한다고 해서 과연 얼마나 바뀌게 될까? 나 또한 달가워하지 않는 내 일면이 존재한다고 해도 어쩌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마음에 들건 안 들건 간에 지금의 나는 오랜 세월 다져진 하나의 결과물이니까. 아내의 말을 잠시 빌리자면 사람은 고쳐서 사는 게 아니지 않겠는가?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존재한다. 내게는 이처럼 관대한 태도를 보이면서 타인의 모난 구석은 용납할 수 없다는 오만함이 종종 엿보인다는 점이다. 그건 아마도 수없이 정을 맞으며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살아온 그 세월이 억울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 아량 내에서는 타인의 모난 부분까지 기꺼이 감싸 안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 모난 채 살아가게 마련이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자신에게는 둥글게 보이는 것도 타인이 봤을 때는 분명 모난 부분으로 여겨질 테다. 굳이 그게 나는 몇 개이고 너는 몇 개라는 식으로 단정 지을 필요는 없으리라. 모난 인간이 또 다른 모난 인간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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