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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Nov 25. 2021

적어도 2주는 있어야 하는 사람

이탈리아 남부 여행: 아말피 해안

아말피 해안에서의 운전은 아찔한 해안절벽 위 좁은 도로를 대형버스와 수많은 차가 함께 사용하다 보니 가히 살인적이라는 소문은 들었다. 하지만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곳’에 언제 또 오겠느냐는 생각이 없던 용기도 만들어 주었다. 사실 운전은 남편이 했던 거라 내가 용기를 낼 필요가 뭐 있을까 싶지만, 아무리 태연한 척해도 벌벌 떠는 게 다 티 나고 마는 그의 옆에서 더 태연히 앉아 있어야 하는 건 분명히 용기가 필요했다.     

     


리가 빌린 아담한 차를 타고 처음 아말피 해안을 달릴 때, 태어나 본 적 없던 수준의 장관 앞에서 잔뜩 힘이 들어가고 말았다. 2주의 시간이 있다는 사실도 순간 망각했다. 신이 만든 드넓은 바다와 인간이 절벽 위에 만든 색색의 도시가 서로 어우러지는 모습이 놀라웠다. 지중해의 깊은 푸름과 바다 위 쾌청한 하늘이 서로 그러데이션을 이루고, 절벽 위 겹겹이 수 놓인 건물들의 오색찬란함, 절벽의 틈새를 채우는 나무들의 싱그러운 초록까지, 내가 본 가장 완벽한 색감의 향연이었다. 마주한 모든 아름다움을 한 조각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먹는 음식처럼 눈앞의 장관을 내 안으로 마구 집어넣었다. 너무도 황홀했고, 동시에 불안했다. 마주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보다 놓쳤을 무언가(뭔지도 모르면서)에 대한 아쉬움이 커지려 했다. 이렇게 욕심이 많다.


다행히 하루하루 지나가며 아말피 해안을 달리는 횟수가 늘수록, 카메라를 내려놓고 눈으로 담는 시간이 늘었다. 놓칠 것에 대한 불안함이 잔잔해졌다는 뜻이었다. 불안이 증발한 자리에는 이 아름다움 앞에 사랑하는 이와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함이 스몄다. 




아말피 해안 도시 중 라벨로에서의 시간은 달콤한 향으로 남아있다. 라벨로의 침브로네 정원을 천천히 산책했다. 정원 안에는 정성을 들인 것 같으면서도 오랜 세월 자연스럽게 살아온 식물들과 높은 곳에서 바다와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테라스가 있었다. 시선이 향하는 모든 곳이 찬란해서, 부푼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여러 번 심장 위에 손을 올렸다. 자기만의 색으로 꽃 피운 꽃들에서, 테라스에서 마주한 무한한 바다 앞에서 나는 분명 달콤한 향기를 느꼈다.      



이대로 달콤한 시간이 멈추길 바랐지만 어림도 없는 바람인 걸 알았다. 동시에 내 체력은 어김없이 지쳐갔다.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덥고 피로했다. 우리에게 시간이 하루밖에 없었다면 더위와 피로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을 거다. 온 힘 짜내서 샅샅이 다 봤을 거다. 하지만 우린 해가 아직 중천일 때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다시 오려면 올 수 있는 거리였고, 그럴 시간도 있었다. 피곤하다는 이유만으로 숙소로 향할 수 있는 여유가 그전까지 빡빡하게 여행을 다니던 가난한 백수 여행자에게는 무척 달콤했다. 안 그래도 달콤했던 라벨로가 더욱더 달큰하게 새겨진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아말피 해안에 있는 포지타노는 이곳으로의 여행을 계획하면서부터 가장 가고 싶은 도시였다. 그래서 2주 동안 머물며 자주 눈에 담고, 발로 걸었다. 이 건물들을 색색이 색칠했던 사람은 분명 행복했을 것 같다고 짐작했고, 괜히 나까지 즐거워졌다. 햇빛 조각과 바다 내음을 주우며 걷다 보면,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청청한 바다가 그 영화의 클라이맥스였다. 

    


이곳이 일상의 배경인 사람들이 부러웠다. 이 여행이 끝나면 어디에서 뭘 하며 살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기에 더욱 그랬다. 떠나기 싫은 마음을 달랠 겸 기념 마그넷을 사러 작은 가게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잔뜩 짜증이 나 앉아있는 가게 주인을 보았다. 혹시라도 그의 화가 나에게 튈까 봐 눈치 보며 급히 마그넷을 사서 나왔다. 내겐 너무 눈부셨던 이 동네에서 처음 본 그늘이었다. 그때 꿈에서 살짝 깼다. 아말피 해안에 온 뒤로 내내 붕 떠다니다가 처음으로 발이 땅에 닿은 순간이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도, 그곳에서도 사람은 지치고, 아프고, 화날 수 있다. 어디서 사느냐가 인생의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영롱히 빛나던 포지타노에서 ‘어디에 사느냐가 전부는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나의 여행 메이트이자 인생 메이트인 한 사람이 보였다. 내게 가장 아름다운 건 죽기 전 꼭 가봐야 하는 이 도시보다도 나와 함께하는 이 사람이었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그 어디든 아름다울 수 있을 거라는, 대책 없이 달달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무려 포지타노의 작은 가게 사장님의 짜증을 보고 나서 말이다. 아무래도 아말피 해안의 아름다움에 여전히 취해 있었나 보다.     


사실 종종 그 가게 주인과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도착한 일상에서 살고 있다. 짜증 난 얼굴로 날이 서 있는 내게 자주 돌아오는 조언 중 하나는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는 말이었다. 취지는 알겠으나 내게는 좀 버거운 말이다. 내게 남은 날이 하루밖에 없으면, 아말피 해안에서의 첫날처럼 모든 소중한 것을 움켜쥐느라 불안하기만 할 거 같다. 그러니 내게는 ‘2주 정도 남은 것처럼 살라’가 적절한 조언일듯싶다. 2주 동안 아말피 해안을 거닐며 찾았던 적당한 속도를, 그렇게 내가 소화할 수 있는 강도로 스미는 아름다움을 지금 있는 이곳에서도 충분히 누려보자는 다짐을 또 해본다.


[KEPCO-ENC Family 9·10월 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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