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였다가 돌고래가 아니었다가
언니와 2박 3일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주요한 계획은 서점, 돌고래, 전시 딱 3개였다. 늘 상대가 하고 싶은 게 먼저인 언니라 돌고래를 보고 싶다고 말했을 때, 무조건 보러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한 번도 제주도와 돌고래를 연관 지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생각해 보니 돌고래를 볼 수 있는 곳이었고 본다면 너무 신기하고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돌고래를 보는 장소로 '노을해안로'를 찍었고, 여행 첫째 날에 돌염전을 거쳐 느슨하게 노을해안로로 향했다.
노을해안로에 들어서니 정차 공간이 드문드문 보였다. 마치 뉴질랜드에 갔을 때, 멋진 풍경을 놓치지 말라는 의미로 정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아름다운 노을을 놓치지 말라는 의미로 마련해 둔 것 같았다. 노을을 보기 위해 간 곳은 아니지만 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상상하며, 돌고래를 보기 위해 멈춰 섰다. 남방큰돌고래를 소개하는 안내판을 읽으며 여기서 돌고래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찬찬히 읽어보니 제주 앞바다에 120마리 정도가 산다고 한다. 바다라는 넓은 공간에 사는 돌고래가 지금 이 시간에, 이 바다 앞까지 올 지는 완전 미지수였다. 언니는 오페라글라스까지 가져올 정도로 진심이었는데, 내 마음속 한편에는 플랜 B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 못 본다면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와야겠다, 오늘이 안된다면 내일 다시 와야지 하는 생각이 이어졌다.
그렇지만 우선 바다를 찬찬히 살펴보는 게 우선이었다. 돌고래가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고,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그저 바다를 바라만 봤다. 섬 출신 인간이라 바다와는 참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목적을 띄고 바다를 본 적은 처음이라 참 낯선 순간이었다. 와중에 사람 마음은 참 얄궂어 보고 싶은 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온 세상이 돌고래였다. 갑자기 튀어 오르는 물고기도 돌고래의 꼬리로 보였고, 윤슬은 돌고래 떼처럼, 심지어 파도에 가려졌다 나오는 돌마저도 돌고래로 보였다. 한평생 바다를 봐왔는데, 이렇게나 돌고래로 보이는 바다는 처음이었다.
아닐 걸 알면서도 돌고래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어 내내 바라보며 기다렸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바닷바람이 차서 목을 녹이려 차에 잠깐 들어왔는데 저 멀리서 배가 보였다. 그리고 무언가 보였다. 온 세상이 돌고래로 보였던 게 무색할 정도로 분명한 돌고래였다. 살짝 올라왔다가 사라지는 등지느러미가 또렷하게 보였다. 무리 지어 다닌다더니 한 마리 옆에 다른 돌고래 그리고 또 다른 돌고래가 보였다. 여기서 보이다가 저기서도 보였다. 너무 감동이었다. 너른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돌고래가 지금 이 순간, 우리 눈앞에 보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비가 온다고 했는데 오지 않은 날씨, 돌고래를 보러 오자고 말한 언니, 지금 이 시간에 이곳에 와준 돌고래까지 우연에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순간이기에 더욱 신기하고 감사했다.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헤엄치는 돌고래를 보면서 나도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이 행운 덕분에 이번 여행이 벌써 완벽해진 기분이었다. 언니는 오늘이 너무 행복해서 내일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나는 오늘이 완벽했으니 내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오늘 예상치 못한 행운이 찾아왔으니 내일은 폭풍우가 찾아오더라도 충분히 견딜 수 있다. 실제로 다음 날에 비가 왔지만 맛있는 것을 먹고 보고 싶은 것을 보면서 일정을 무사히 소화했고, 이번 제주 여행은 내내 맑은 기분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