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ileen Mar 17. 2017

기억소환



그 시간을 소환하는 장치들,

일기장을 보다보니 음악, 영화, 장소, 사람

다양한 것들이 나를 그 때로 인도한다.



입학, 졸업, 이별, 취업, 개봉 등

각각의 일년을 기억하는

메인 키워드가 있지만

그런 큼지막한 사건들은

때론 더 추상적이기 마련이다.


한 동안 영화티켓을 모으곤 했었다.

티켓을 넣어둔 상자를 열어봤다.

열기 전엔 쓰레기에 불과했던 종이조각이

기억을 소환하는 소중한 장치가 되는 순간,

안봤다면 잊고 있었을 시간들이

생각보다 선명하게 떠올랐다.






10년 전 대한극장에서 <색,계>를 보고나서 가슴이 먹먹했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른 관객의 겨드랑이 발언에 산통이 깨진 기억부터

9년 전 <추격자>를 보고 연쇄살인이

무서워 이민을 가야겠다며

일주일 밤을 각국의 치안률과 연쇄살인의 역사를 검색하며 지새운 기억들,

8년 전 <업>을 보고서 너무 흥분해서

극장을 나오자마자 폰 배경화면부터

풍선씬으로 바꾸고 픽사를 꿈꾸던 기억

5년 전 <건축학개론>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남자친구를 보고 지금 내옆에서

첫사랑을 추억하나 싶었던 기억 등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떠오르는

시간의 조각들

티켓들을 한장 한장 넘겨가며 음미했다.






누군가 함께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준 적이 있다.

잘나오지는 않은 사진이어서

일기장에 끼워뒀는데

우연히 일기장을 넘기다 눈에 띈 사진에

그 시간을 걷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되었다.


요즘은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다보니

기억소환장치가 점차 줄어드는 것만 같다.

사진도 음악도 실물보단 파일로 갖게 되고,

영화나 공연도 스마트티켓으로 변하다보니


우연히 눈에 띄어

기억을 소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쉽고 편한만큼 갯수는 늘어났지만

늘어난만큼 덜 소중해진 기분이랄까,

정리되지 않은 사진첩과

별 수고없이 다운로드받은 음악파일들은

다시 열게 되거나 쉽게 들어지지 않는다.

 





요새 가끔 누가 틀어주는 음악을 들으려

라디오를 켤 때가 있다.

우연한 반가움이란 골라듣는 것과는

다른 묘미가 있다.


올해는 누군가를 만날 때

그날을 담아, 인화해

뒷편에 편지를 써봐야겠다.

어느 날 무심코 사진 한장이

그날의 기억을 소환하는

우연한 반가움을 선물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인공스럽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