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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ileen Apr 10. 2022

세상에 "순산"은 없다.

모두의 출산을 경험할 수 없다면 쉬이 "순산"을 입에 담지 말 것!

출산 후 7개월이 지나자 그날의 기억이 흐릿해져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그날의 고통을 미화하지 않기 위해 나는 육아일기를 써보려 한다.


밀려오는 걱정과 두려움부터가 진통의 시작 아닐까?


지금 생각해보면 37주가 넘어가고부터는 본격적으로 "출산"에 대한 걱정이 시작됐던 것 같다.

요즘 선택제왕이라는 옵션도 있지만, 회복이 빠르다는 주변의 의견과 켈로이드성 피부인 나는 쉽게 제왕으로 마음이 기울지는 않았다. 별다른 이슈가 없다면 자연분만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막상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아기를 만날 생각에 기대가 되기는 커녕 얼마나 아플지에 대한 두려움 증폭되었다.


배가  많이 나와 잠을 자기도 불편했던터라 밤만 되면 맘카페를 들여다보며 나의 담당 의사선생님의 후기를 빠짐없이 찾아보기 바빴다. 다양한 출산후기를 보며 혼자 상상으로는 이미 100 넘게 출산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던  같다. 물론 그럴 때마다 옆에서 편하게 누워 코골고 자고 있는 남편이 어찌나 얄밉던지. 10달동안 나의 배불러가는 모습만 지켜봤더니 아기가 태어나는 경험을 하게  그가 진심으로 부러웠고,  과정이 다 끝난 지금도 여전히 부러운 부분이다.


40주동안 생기는 다양한 신체변화들도 충분히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지만(살이 트면 어떡하지? 뱃살이 영원히 안빠지면 어떡하지? 임신선이 안지워지면 어떡하지? 왜 군데군데 착색이 되는걸까? 손발바닥 저린게 계속되면 어떡하지? 등등... 초산모는 혼자 생각할 시간이 너무 많아서 별 걱정에 다 사로잡히곤 한다) 출산에 대한 걱정은 정말 말도 안되게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고통의 서막(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출산예정일 이틀 전날 밤, 여느 때처럼 출산가방으로 정한 캐리어를 펼쳐놓고는 짐을 싸는 일을 미루고 잠자리에 들려고 침대에 누웠다. (아기가 좀 작은 편이기도 했고, 이틀 전 진료에서도 아직은 아기가 내려올 기미가 없고 자궁문도 안열렸다고 들어서 당연히 출산예정일을 넘길 것이라 생각했었다)


여느 날처럼 새벽까지 잠에 쉽사리 들지 못하고 뒤척이는데 갑자기 싸한 느낌이 아랫배쪽에 들기 시작했다. 무언가 살짝 배를 쥐어짜는 느낌이랄까? 이 느낌이 몇번 반복되니까 쉽게 지나치기엔 너무 출산예정일과 가까웠기 때문에 급하게 진통어플을 깔아서 체크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는 별로 아프진 않아서 출산가방리스트를 보면서 출산가방을 싸는 일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은 딱히 병원에서의 역할이 없고, 출산 당일에는 생각보다 필요한 물건이 없기 때문에 출산가방을 미리 싸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일은 아니다)


새벽 다섯시까지 계속되는 수축감에 병원에 가서 빠꾸를 당하더라도 남편 출근 전에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출산가방을 들고 산부인과로 향했다. 병원에서도 자궁문이 2cm도 안열렸지만 출산예정일 하루 전 날인터라 바로 입원을 시켜줬다. 입원을 하고나니 극도의 공포감이 밀려옴과 동시에 한숨도 자지 못해 피곤함도 같이 몰려왔다. 새벽 여섯시부터 아홉시 반정도까지는 참을만한 수축감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는 아픔에 10을 더하고..거기에 10을 곱해보자!


담당 교수님이 왔다가신 다음에는 계속 아픔의 최대치가 경신됐다. 아홉시 반부터는 정말 '헉' 소리가 나는 수축감이 시작됐는데 이게 진통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게하는 고통이었다.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계속 증폭되는 고통은 텀을 두고 찾아오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웠다. 4cm까지 열려야 무통주사를 놔준다는데 정말 너무 아픈데 계속 내진은 하면서 안열렸다고 하는 의료진들이 너무 야속했다. 참고로 분만을 앞둔 상태에서의 내진은 진료 때 받았던 내진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분들도 직업이기 때문에 하는 일이고, 나도 분만을 해야하니 의료행위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야겠지만 솔직한 말로 '인간답지 못한' 행위인 것은 분명하다.


출산 당시의 "아픔"에 대한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겠지만, 그날 겪은 일들에 대한 "기억"은 꽤나 오래갈 것 같다. 특히 내진, 힘주기연습, 분만, 후처치, 돌아온 병실에서의 기억들은 단1초도 괜찮은 구석이 없다.


지금이 최대로 아픈거라고 해도 죽겠는 시간이 2시간 반이 흐르고 나서야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었다. 2시간 반동안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살려줘"였다. 진통은 사람마다 다양하게 오는 것 같은데 나의 경우는 내장을 쥐어짜는듯한 통증이었다. "아! 나의 자궁은 여기있구나!"라고 느낄 정도로 아랫배 안쪽에서 쥐어짜는 느낌이 계속되는데 난생 처음 겪어보는 부위의 고통이 난생 처음 겪어보는 강도로 찾아오니 정신이 혼미했다. 그렇게 싫었던 내진을 해야 얼만큼 자궁문이 열렸는지 알 수 있으니 빨리 간호사선생님한테 내진하고 무통주사 놔달라고 하라고 남편에게 1분 단위로 얘기했던 것 같다.  



무통천국? 천국이라면 이런 아픔이 없었어야지!


무통주사의 효과는 확실하고 강렬했다. 무통주사를 맞고나서는 잠깐 졸기까지 했다. 밤새 계속됐던 가진통에 24시간 이상 깨어있던 터라 하반신의 통증이 사라지자 가장 먼저 졸음이 쏟아졌다. 그것도 잠시 그렇게 안열리던 자궁문이 무통주사를 맞은지 얼마 안되어 10cm가 다 열려버렸다. 함정은 나의 골반.. 진료 때부터 그렇게 넓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던 속골반 덕분에 자궁문이 열려도 아기는 쉽게 밑으로 내려오지 못했다.


무통주사 약빨이 떨어지기 전에 출산을 하기 위해 힘주기 연습을 시작했는데.. 이 또한 대 굴 욕!

힘주기자세는 정말이지..왜 이런 자세를 내가 취해야하지? 싶은 모양새(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인데.. 이미 얼굴도 만신창이, 거의 실신 일보직전의 정신상태인데다가 침대시트는 이미 피로 가득 물들어있는데 힘주기연습을 남편과 같이 하라고 하니 정말 그냥 짐승계로 진입한 느낌이었다.


정말 정신도 하나도 없고, 계속되는 내진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느낌이었는데 자꾸 힘까지 주라고 하니까 휴.. 하늘이시여.. 왜 거룩한 잉태와 출산의 모습을 이렇게 만들었나이까...?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럴 여유 따위 없지, 빨리 안끝내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가장 강렬하게 들기 때문.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내가 분만한 병원은 모든 분만대기실이 가족대기실이어서 분만실로 이동하기 전에 힘주기연습을 끝내고 분만 직전에 분만실로 이동을 하는 모양이다. 정작 죽을 것 같은 순간을 넘기고 분만실로 이동해서는 힘주기 한 번만에 아기가 태어났다. 나는 회음부를 절개한 줄도, 아기가 태어난 지도 몰랐다...그저 빨리 힘을 줘서 이 아기를 밀어내지 않으면 나도 아기도 죽겠다 싶어서 죽을 힘을 다해 시키는 대로 힘을 줬을 뿐.


아기를 처음 마주한 순간은 환희 보다는 안도감으로 기억된다.

이 모든 고통이 끝났구나! 라는 안도감과 너도 무사히 세상에 나왔구나! 라는 안도감..

하지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함정.. 남편이 분만실 한켠에서 감격스럽게 아이의 탯줄을 자르는 동안 나의 후처치가 시작됐다. 아기만 나오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태반도 나와야하고, 절개한 부위와 안쪽의 출혈부위까지 다 잡아야 끝나는 것이었다. 후처치만 30분에서 1시간이 걸린 것 같은데 그때는 이미 무통주사의 약빨도 끝났고 나도 긴장이 풀린 상태라 정말 너어어무 고통스러웠다.


나의 고통의 척도를 돌이켜보면 진통>후처치>힘주기>분만이라고 기억될 정도로 진통은 시간이 길어서 아프고, 후처치는 너무 맨정신이어서 생생하게 아프고, 힘주기는 죽을만큼 아프고, 분만은 그냥 제정신이 아닌채로 겪게 되는 "고통만 계속"인 과정이었다. 정말 출산 당일에 좋은 기억은 아기가 건강히 태어났다는 사실 빼고는 없는 것 같다.



순산. 산모가 "아무 탈 없이 순조롭게" 아이를 낳음


보통 초산인데 진통시작하고 5시간만에 아기를 낳았다고 하면 "그정도면 순산이지"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물론 정말 극심하게 위험한 상황이거나 진통 다하고 제왕하를 하는 상황이 아닌 것은 맞지만 산모가 아무 탈 없이 순조롭게 아이를 낳음의 기준은 무엇일까? 누가 대체 나의 순조로움을 대신 평가해도 되는걸까?

나는 순조로웠던 기억이 없다. 그리고 정말 아픈 고통의 시간을 보냈고, 꼬맨 회음부 부위가 아파 일주일을 제대로 앉지도 눕지도 못하고 보냈는데 왜 "아무 탈 없이"라는 표현이 나의 출산 앞을 수식하는 말이 된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난산을 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른 누군가가 나의 출산을 너무 가볍게 "순산했네"라고 결론지어주는 것이 참 괴랄맞다는 얘기. 이 세상의 남자 뿐만 아니라 어떤 여자도 모두의 출산을 전부 경험하지 않고서는 타인의 출산을 "순산"이라고 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순산하세요!"라는 미래형은 얼마든 환영이지만, "순산이네"의 과거형은 함부로 내뱉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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