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레이션 바깥에 서서

#1 바깥에 서 있는 자

by 호우




이 글은

시스템을 벗어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안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보게 된 순간들을 기록한 연작이다.






1. 바깥에 서 있는 자



나는 언제부터 숨 쉬듯 살지 않게 되었을까?


백화점에서 일한다는 것은, 멈추지 않는 시스템 속에 나를 오래 세워 두는 일이다. 여기에는 끝이 없다. 늘 이렇게 말한다.

“조금만 더.”

“이번만 넘기자.”

“작년보다 더 해야 한다.”

숫자와 수치가 기준이 되고, 몸이 망가졌는지 마음이 부서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관심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결과다.


이곳에서 사람은 관리 대상이 아니라 교체 대상이다. 보호나 배려는 없다. 대신 가능한지, 더 투입할 수 있는지, 대체 가능한지만 확인된다.

이 시스템은 스스로 멈추지 않는다. 충분하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래 버텼다. 떠나지 못한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며, 역할을 더 잘 수행하려 애썼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이 구조 안에서는 떠나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는 것을. 버틴다는 미덕은 질문을 늦추는 방식이었고, 질문이 늦어질수록 소진은 깊어졌다.


어느 날, 나는 선택을 바꾸었다.

“힘을 빼자.”

이 말은 포기가 아니라 권한의 회수였다.

나를 부품으로 소모시키던 정교한 시뮬레이션에서 접속을 끊기로 한 것이다.


몸은 여전히 매장 조명 아래 서 있지만, 나의 진짜 의식은 이미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는 더 이상 이 시스템이 정해준 '판매원'이라는 이름표에 나를 가두지 않기로 했다. 아직 몸은 그 자리에 있어도, 존재의 중심은 이미 빠져나왔다.


이제 나는 이렇게 말한다.

전부를 바치지 않겠다.

가능한 만큼만 하겠다.

내 몸과 감각을 기준으로 삼겠다.

이건 게으름이 아니다. 자기 생의 관리권을 되찾는 행위다.


현실은 바뀐 게 없을지 모른다. 여전히 나는 알바를 구해야 하고 돈을 걱정한다. 하지만 나는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이제 시스템의 부품이 아니라, 그 바깥에 서서 나만의 길을 걷는 여행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이 자리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낄지 스스로 결정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