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하나가 방학식을 하루 앞두고 코로나19 밀접접촉자로 격리됐다. 학급 친구가 확진되어 반 아이들 전원이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가족 중에 격리 중인 사람이 있으면 등교할 수 없어서 다른 딸도 덩달아 학교에 가지 않았다. 격리 대상이 아니기에 학원은 다닐 수 있었다.
집에 격리 가족이 있어 등교하지 못하는 사정을 알려야 하기에 오랜만에 건강상태 자가진단 앱을 열어 문항에 체크했다. 담임교사에게 별도 연락도 했다. 격리된 딸은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었지만, 격리된 자매가 있어 등교하지 못한 딸은 학교에 가지 못한 채 오전 시간을 빈둥거렸다. 그렇게 방학 전 마지막 등교일을 보냈다.
밀접접촉자가 된 딸은 코로나 검사 결과 음성이었고 격리 해제 전 검사에서도 음성이었다. 격리 기간 하루 전 음성 확인을 받고도 지정된 격리 시간까지 외출할 수 없었다. 덕분에 12월 말에 가려던 여수 여행을 포기했다. 숙박을 취소하고 다른 날로 옮겨보려 했지만 이미 예약이 꽉 차 있어서 계획에 없던 다른 곳으로 숙박을 잡았다. 격리 해제된 뒤 주말마다 경기, 강원권으로 여행을 갔다.
4주의 방학에서 1주는 격리기간이었고 2주가 흘렀다. 이번 주가 마지막 주다. 다음 주 월요일엔 개학이다. 그런데 애들이 학교 자가진단 앱에 개학 일주일 전부터 기록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전에도 그러한 내용으로 알림을 받긴 했으니 새로울 것은 없다. 다만, 이젠 지쳤다. 더는 매일 아침 바쁜 등교시간에 일어나자마자 자가진단 앱을 켜서 기록하는 것도, 학교 보내 놓고 한 숨 쉬려 할 때조차도 아뿔싸 입력 안 했지 하고는 호들갑을 떨며 스마트폰을 찾기 싫다.
처음부터 학교 자가진단 앱 시행을 환영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매일 아침 바쁜 등교시간에 자가 진단 앱을 열어 건강상태를 기록하는 것이 귀찮다.
다음으로, 자가 진단이 학교 방역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어 거부감이 든다.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모든 학생들이 매일 아침 등교를 위해 자가 진단 앱에 보고를 하는 이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상이 있는 경우 담임교사에게 연락하고 학교를 안 가면 되는데 굳이 매일 아침 전국의 학생들 또는 학부모가 자가 진단을 보고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든, 양성 판정을 받든, 고열이 나거나 격리 가족이 있는 경우든 그 사실을 학교에 알리고 방역 방침대로 등교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나? 왜 다수의 멀쩡한 학생들이 아침마다 멀쩡함을 인증하고 등교를 하는 불편함을 겪어야 하나? 팬데믹 이전에도 법정 감염병에 걸리면 학교에 알리고 등교를 하지 않고 집에서 쉬어야 했다. 독감이 그렇다. 코로나 19가 신종플루나 다른 감염병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전파 속도가 빠르고 광범위하더라도 아직 학생 절대다수는 감염자가 아니고 밀접 접촉자도 아니다. 그들을 매일 아침 건강상태를 보고하게 하는 것이 옳은가. 다수가 감염자라서 비감염자를 분리 조치하기 위해 건강상태가 멀쩡함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면 건강상태 자가진단 시행이 이해가 된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식당이나 마트를 이용하는 불특정 다수가 아니다. 신원이 명확하다. 교내 감염자가 발생하면 신원 파악과 격리가 신속히 이루어진다. 그런데도 매일 아침 정상임을 보고할 필요가 있을까? 건강상태 자가진단 보고가 학교 방역에 무슨 도움이 되었는지 합리적인 설명을 듣고 싶다. 자가진단 보고를 강권하면서 방역에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는지는 설명 들은 바 없다.
마지막으로, 지금과 같은 건강상태 보고가 전체주의 통제 방식에 학생 및 학부모를 길들이는 것 같아 반발심이 생긴다. 팬데믹으로 인해 정부는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사람들의 모임을 제한하는 등 방역 규칙을 정했다. 이와 같은 규제는 펜데믹이 종식되면 없어질 것들이다. 일시적인 것이기에 사람들은 코로나 확산이 저지되길 바라며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더라도 정부 방침에 따랐다. 그러나 건강상태 자가진단 앱은 다르다. 다수의 멀쩡한 학생들이 멀쩡함을 보고하고 등원이나 등교하는 것이 팬데믹 종료 후에도 계속된다면 어떨까? 어쩌면 잠깐 시간을 내어 문항에 체크하는 것이 크게 불편하거나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어서 다들 번거로움을 인내할 수도 있다. 학교에 부당하다고 건의하여 굳이 담임교사와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보다 참고 입력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그러나 사소한 불편이라도 개인의 자유가 정부 편의를 위해 희생되는 것이 당연시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정부가 개인에게 가하는 사소한 통제에 익숙해진다면 그것이 문제가 되더라도 문제로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다. 사소하기에 그렇다. 모임 제한이나 영업시간 제한과 같이 눈에 띄게 불편한 일에 대해서는 다들 불편을 애써 참으며, 때로 문제 제기를 하지만, 사소한 통제에 대해서 지나치기 쉽다. 그러다 보면 개인의 사소한 권익은 전체를 위해 언제든 통제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보편화될 수 있다.
히틀러의 나치즘이든 스탈린의 사회주의든 개인의 이익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언제든지 희생될 수 있다고 보며, 전체주의 교육기관은 그러한 사상에 동조하는 이들을 길러낸다.
"나는 제국 시민으로서 제국 시민정신에 부합하는 멀쩡한 사람임을 증명합니다. "
"나는 사회주의 국가의 인민으로서 사회주의 사상에 부합하는 멀쩡한 사람임을 증명합니다."
등교 준비하기 바쁜 아이들을 대신하여 내가 자가진단 앱에 기록을 하려고 내 폰에 자가진단 앱을 설치했다. 아이들이 일찍 일어나 준비한다 하더라도 아이들 폰에 앱을 설치해서 스스로 교육부에 보고하는 일은 막을 것이다. 나는 내 기준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학교에서 담임교사가 시킨 일을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혁신 교육을 주창하면서 통제에 익숙해지도록 길들이는 모순이 발생한다. 개인의 자유와 이익이 언제든지 전체의 이익보다 앞선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이들이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이 되길 희망하지, 아이들이 국가 권력에 언제든 통제되거나 개인의 권익을 포기하는 무기물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자가진단 보고에 불평이 많다. 자가진단 보고를 꺼리는 세 가지 이유 중, 첫 번째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싫다. 싫은 것을 강제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