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6 개월 걸렸다. 사기 사건을 인지하고 고소 후 경찰 심문을 받고, 재판에 증인 출석 후 원금을 받기까지의 기간이다. 최종 선고를 앞둔 피고는 유죄가 확실해지고 징역형을 받을 위기에 놓이자 비로소 원금을 다 갚았다. 2억이 넘는 금액이었다.
처음 마련한 집 입주 조건이 맞지 않아 전세를 두었더니 임차인이 계약 만료를 1년 정도 남긴 시점에 집을 뺀다고 보증금을 요구했다. 부동산에 전세를 내놓고 새로 임차인을 구했다. 새로운 임차인과 계약을 하고, 기존 임차인에게 전세자금 대출이 포함된 전세금 전액을 보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일반 전세대출이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겠지만, 질권이 설정된 전세대출이었기에 임대인은 반드시 임차인이 아닌 은행에 상환해야 했다. 남편은 질권을 잊었고 남편 대신 계약 해지를 하러 간 나는 질권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기존 임차인은 전세대출금을 은행에 상환한다고 하고는 돈을 따로 썼다. 은행은 계약이 해지된 것을 모르다가 계약 만료 시점에 기존 임차인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자 임대인인 우리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은행 직원의 연락을 받고 비로소 사기당한 것을 알았다.
기존 임차인은 돈 없으니 고소할 테면 하란 태도였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어쩌겠냐며 배 째라는 그의 뻔뻔함에 기막혔다. 그가 대출금을 갚지 않아, 그의 채무가 고스란히 우리 몫이 되었다. 자고 일어나면 연체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가족에게 돈을 꾸어 채무를 변제했다. 10년을 아등바등 모은 돈이 한순간에 날아가고 빚과 이자의 굴레를 쓰게 됐다.
당혹스럽고 분통했지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유사 사건에서 승소한 변호사를 소개받아 상담을 했다. 사건 당일의 구체적인 기억을 떠올리며 사건 개요를 정리했다. 녹취 자료를 모으고, 피해 사실을 입증할 자료를 준비해서 제출했다. 변호사는 사건 관련 법리를 따져 고소장을 작성하였다.
분명한 피해 사실이 있으나, 사기 입증에 관해서는 상담하는 변호사마다 승률을 다르게 잡았다. 우선, 적극적 기망이냐, 부작위 기망이냐를 따져야 했다. 부작위 기망은 우리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가 충족될 거라고 했다. 혼미한 기억을 구체화하면서 따져보니 적극적 기망이 인정될 거 같았다. 피고는 최종 판결일까지 전세금을 주어서 받았을 뿐이라며 범죄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의 통화 녹취 자료, 나의 증언 등이 모두 인정되었다. 그 결과, 검사는 2년형을 구형했다. 증인 출석 바로 전 날, 사기 피해 원금의 반 이상을 갚은 그는 재판이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남은 금액을 2주 내로 갚겠다고 맹세했다. 그는 우리에게 피해 원금을 모두 갚았고, 그 조건으로 처벌불원서를 요구했다.
사기 사건으로 우리 가족의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따지자니, 사기꾼에게 처벌 불원서를 써 주기 싫었다. 변호사 수임료, 은행 이자, 시기에 맞지 않는 주택 매도 등으로 인한 금전적 손해는 고스란히 우리가 감당할 몫이었다. 그런데도 변호사는 사기 사건에서 피해 원금을 모두 받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 일이라며 처벌불원서를 써 줄 것을 권했다. 다시 볼 일 없더라도 원금을 받고서 어린 자녀가 있는 그를 감옥에 가두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사기꾼에게 처벌불원서를 써주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진심이 담긴 사과는 받지 못했다. 그는 끝까지 뻔뻔했다. 그런 태도가 결국은 그에게 숨겨진 벌이 될 것이다. 이후라도 그가 참회하고 새롭게 산다면 다르겠지만 말이다.
위의 1년 6개월 동안, 나와 남편은 기존 집을 매도하고 살던 전셋집을 내놓고 새집을 매수했다. 부동산 정책이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곤혹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팔고, 사고.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남편과 다툼이 잦았다. 부부 모두 몸이 상했다. 정신적인 긴장과 스트레스가 컸다. 그러나 그와 나는 인내했고 오늘에 이르렀다. 비록 욕심에 차지 않는 작은집이지만, 여기에서 안분지족 하며 살련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사기 사건이 해결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시아버지는 지난봄, 병원에서 수술받으신 것이 잘못되어 한 달을 앓다가 돌아가셨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 동갑인 남편과 나의 마흔 앓이는 이것으로 끝이길 바란다.
사기 사건 기간에 몇 가지 마음에 새겼던 것이 있다.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행동하기.
신중하되 불신하지 않기.
노여워하지 않기.
감정의 격랑이 수시로 일어나면 산책을 하거나 독서를 했다. 그마저도 안 될 때는 "나 좀 울겠소." 하고는 가족과 지인의 위로를 받았다. 구질구질해도 어쩔 수 없었다. 살아야 했다. 그들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