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신변잡기

잠 못 자는 까닭

-잠에서 깨어 뒤척이다가

by 백수아줌마

내 글은 편하지 않다.

내가 편하지 않아서다.

그럼 나는 어떻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서 몇 년 일하다 결혼하고 바로 출산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와 살림을 하는 전업 주부.


문장을 나누지 않고 연결 어미 '-고'를 붙여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몇 초만에 읽힌다. 생각의 여지없이, 감정의 동화 없이 무심히 읽힌다.


쉴 새 없이 읽어 내린 문장 사이사이 연결 어미 대신 종결 어미 '-다'를 쓰면 사연들이 문장이 되어 머리를 비집고 끼어든다. 몇 개의 문장이 모여 사연 하나가 되고, 때로 넋두리가 되어 곡을 한다. 푹 쉰 콩나물처럼 맥없이 쳐진 문장으로 쉰 내 나는 이야기를 쓰기가 고되다.


아이들을 키우는 전업주부의 글이 때론 비장하다. 그늘진 중에 가느다란 빛 한 조각 섬겼다고 푸른 대가리를 뻣뻣이 들었다가 목이 따이고 마는 콩나물의 절규. 망은 이내 식는다.


잠에서 깨어 화장실에 들렀다가 아이들 이불을 덮어 주고는 자리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보니 6시가 넘었다. 다시 잠이 든다 해도 남편 출근 시간에 맞춰 일어나 조촐한 아침을 준비하자면 아니 자는 만 못하다.


일어나 노트북을 펼쳤는데 방전됐다. 충전기를 찾아봤으나 없다. 남편이 자기 것인 줄 알고 회사에 갖고 가서 안 가져온 듯하다. 핸드폰을 꺼내 들고 브런치 앱을 오랜만에 열었다.

밤새 지난 일에 대한 회한으로 부대꼈다. 나는 왜 좀 더 영리하지 못했을까. 나는 왜 그때 그런 선택을 했을까. 나는 왜 어리석게 굴었을까.


어느덧, 나이는 40 중반을 향한다.

나이 들어 보이는 것들. 나이 들며 조금은 성숙했다는 데 안도하면서도 나이 들어 더는 가능성이 없다는 데 한숨짓는다.


40대의 나는 20대의 내게 충고하고 20대의 나는 고작 이따위로 사냐고 한심해한다. 30대의 나는 그들에게 어쩔 수 없었노라고 부디 잊어달라 한다. 30대의 나는 희망과 좌절을 반복하고 마침내 우울의 수렁에 빠져 헤어나질 못했다. 40대의 나는 20, 30대의 나를 보며 "그때 그랬어야지."라며 나름의 통찰한 바를 얘기해도 과거를 되돌릴 순 없다. 이미 늦은 때는 너무 늦었다. 기회는 아무 때나 오지 않는다.


피부가 벗겨지고 장기가 쑤셔지며 해부되는 개구리처럼 나는 때로 해부되고 상처를 받는다. 회한은 자학이다. 낱낱이 조각나고 부서지고 나면 다시 꿰매어도 온전하지 않다. 애써 봉합하고 알코올을 채운 뒤 뚜껑을 덮고 그늘진 곳에 밀어둔다.


오래전부터 외로웠던 자의식이 일어나 뭣이 또 버겁냐고 40대의 나를 타박한다. 네 태어나길 본디 그러했노라고. 글이나 쓰라 한다.


재작년에 3편의 단편소설을 썼고 신춘문예 예선에도 들지 못했다. 작년엔 1편의 단편소설을 쓰고 최종 수정을 남겨두고 몇 편의 에세이를 썼다. 자기만족에 그치는 어설프고 부족한 글.


글쓰기는 남편이 생계를 부담하기에 누릴 수 있는 호사이다. 만일에 남편이 잘못된다면 변변찮은 일자리라도 구할 수 있을까 걱정해야 하는 무능력자가 현재 내 사회적 위치이며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오래전부터 나의 변하지 않는 속성이 내게 말한다. 글을 써. 아집이다.

시답잖은 일에 대한 넋두리를 누가 지루함을 참아가며 읽는다고 구구절절이 쓴다.


요즘 다시 시작한 소설은 시작부터 지루하다.

인간관계는 극히 좁아 가족 외에 연락하는 지인이 2~3. 1년 넘도록 이어온 독서모임이 유일한 사회 활동. 매우 매우 지루하고 별 볼일 없는 삶. 현실의 삶이 빈약하니 글도 빈약하다.


지루하고 지루한 이야기를 그래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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