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위에 사는 생물의 생애는 흙에서 시작하여 흙으로 끝난다. 흙에서 난 것을 먹고 흙을 밟고 살다가 흙 속에 묻힌다. 초식 동물은 땅에서 자란 풀을 뜯고, 육식 동물은 초식 동물을 잡아먹으니, 초식 동물이든 육식 동물이든 일생 땅에 빚을 지고 산다. 나도 흙에서 나고 자랐다. 부모님이 농사지은 것을 먹고, 땅바닥에 앉아 흙으로 소꿉놀이를 했다. 젖은 흙냄새와 마른 흙냄새, 한여름 성성한 풀냄새와 가을 햇살에 바싹 마른 풀냄새를 맡으며 자랐다.
성인이 되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인 도시로 오면서 후각이 둔해졌다. 종일 흙을 밟지 않고 사는 날이 많았다. 공원이나 아파트에서 조경수를 관리하며 풀을 깎는 날, 진한 풀 냄새와 흙내를 맡을 수 있다. 갈증을 해소하듯이 냄새를 들이켜고 허기를 채운다. 냄새에 대한 민감성은 떨어졌어도 옛 기억이 아늑함을 떠올린다. 결혼하고서는 아파트 고층에서 살았다. 풍경은 멋있었지만, 자연의 냄새나 감촉을 누릴 순 없었다. 시각만 풍요로웠다.
새로 구한 집은 아파트 3층이다. 집을 구할 때 채광이 어둡고 사생활이 노출될 우려가 있어서 5층 이상을 원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3층을 구하고 말았다. 저층은 놀이터의 소음이 고스란히 들리고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도록 커튼을 쳐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빛은 한낮에 고양이 발톱만큼 들어온다. 일조량과 풍경을 잃은 대신에 안정감을 얻었다. 고층에 살면서는 땅 위에 둥실 떠 있는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바닥이 가까이 보이는 저층에서는 창밖을 내다봐도 오금이 저리지 않다.
새집에서 안정감은 얻었지만 갇혀있는 듯한 아파트의 답답함은 어쩔 수 없다. 내 마음에 온전히 흡족한 집은 너른 마당이 딸린 집이다. 도시에서 그런 집을 구하기는 어려워 부득이 아파트에서 산다. 남편의 일자리와 아이들의 학교가 있는 도시를 떠나 살 수 없다. 아이들이 제 몫의 일을 하고 자신을 돌볼 수 있을 때 서울 집은 아이들에게 내어 주고 나와 남편은 지방에 가려한다.
해가 잘 들고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터를 잡을 것이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냇물이 흐르는 곳이어야 한다. 이런 자리를 잡으려면 발품을 팔아 돌아다녀야 할 듯하다. 발이 닿는 대로 다니다가 멈추어 쉬고 싶은 곳이 있으면 그곳에 자리를 잡을 테다. 그곳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변화를 만끽하고 싶다. 냇물이 있어 가뭄에도 과실이 풍요롭고 나무가 울창한 곳. 볕이 잘 들어 작물이 잘 자라는 곳에서 자연에 깃들어 살고 싶다.
자연을 만끽하더라도 산중에, 들판에 홀로 불 밝히고 처량히 앉은 외딴집은 싫다. 서로에게 안전을 기대할 수 있는 이웃이 있어야 한다. 멧돼지, 고라니, 들개로부터 서로 지켜주고 자연 재난의 위기가 있을 때 힘을 모아야 한다. 자동차로 병원까지 30분 이내 거리에 자리 잡은 곳이면 딱 좋을 듯하다. 응급상황이 생겼을 때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진 않다.
집은 자연에서 난 것으로 짓고 싶다. 나무, 흙, 돌로 지은 집. 숨이 편한 집을 만들 테다. 각종 약품 처리된 자재로 지어진 집에 들어서면 눈이 따갑고 코가 맵다. 입에선 쓴맛이 난다. 새집의 냄새를 빼고, 먼지를 떨어내려고 법석을 떨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선, 나무로 살림채로 쓸 목조주택을 짓겠다. 규모는 웅장하지 않아도 된다. 부엌 하나, 욕실 하나, 거실 하나, 침실 2개면 충분하다. 흙과 돌로는 사랑채로 쓸 흙집을 짓겠다. 흙집엔 방 하나, 화장실 하나를 두겠다. 흙집 바닥에 온돌을 깔고 아궁이에 불을 때겠다. 타닥타닥 타는 불을 보며 하루의 피로와 일생의 미련을 함께 태우련다.
너른 마당에 각종 과실수를 심고, 작은 텃밭을 일구면 노부부 먹거리 정도는 얻으리라고 본다. 밭에서 일하여 얻은 것으로 건강을 유지하며 옹색하지는 않게 사는 것이 내 바람이다. 낮에는 밭일하고 밤에는 책을 읽으며 살고 싶다. 이따금 찾아오는 손이 있으면 흙집에서 차 한 잔 내어 주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촌노가 되고 싶다.
더 늙어 병원 신세를 지게 되고 저세상 갈 적엔 화장 후 흙집 아래 묻히고 싶다. 풀과 나무는 제멋대로 자랄 것이고 흙집은 무너져 무덤이 될 것이다. 내 시간은 멎어도 자연의 시간은 여전히 흐를 테니까, 살다 간 줄 모르게 겸손히 흙의 품으로 돌아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