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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남 Aug 07. 2023

#015화 @강제로 흡연해야 합니까

  강제흡연(強制吸煙). 애석하게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이에 대한 정의가 나온다. ‘비흡연자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강제적으로 흡연자의 담배 연기를 마시게 됨.’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비흡연자는 당연히 담배를 싫어하기 때문에 비흡연자다. ‘좋아하든’이라는 말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진다. 좋아해서 담배 연기를 마시는 사람이 비흡연자일 리가 있는가.     


  군 복무 시절, 아마 내가 일병을 달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가는 강제로 흡연하게 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부대 내 부조리가 만연했던 시대였다. 선임이 후임을 괴롭히는 방식 역시 기상천외했다. 훈련을 나가서 강아지풀 따위를 꺾어서 코를 간지럽히고 재채기를 참게 하는 행위, 자기 전투화를 대신 닦게 하는 행위, 공용으로 사용하는 세탁기가 비었는지 대신 확인하게 하는 행위 등.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장 악질 중의 하나였던 부조리는 ‘강제흡연’이 아니었나 싶다.     


  뙤약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작업을 하던 어느 날 오후였다. 복귀를 앞두고 마지막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당시 작업은 잘하지만, 인성에 문제가 있었던 A 선임이 있었다. 입이 거칠고 막무가내라 대부분의 후임도 그를 싫어했었다. 그런 그가 나의 분대 선임이었고, 나는 주로 그의 분풀이 또는 공격 대상이 되었다. A가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서 물어봤다.

  “야, 너 담배 펴본 적 있냐?”

  “없습니다.” 나는 당연하게도 없다고 대답했다.

  “진짜 한 번도 없냐? 남자가 담배 한 번 안 펴봤냐?” 그는 ‘고작’ 이런 일로 나를 깎아내리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갑자기 묘한 오기가 생겼다.

  “사실 고등학생 때 한 번 펴본 적은 있습니다.” 사실이었다. 그저 호기심에 친구가 피는 담배를 빌려 한 모금 빨아보고 콜록콜록 기침했던 적은 있었다. 이렇게 맛없는 것을 도대체 왜 피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던 기억. 이 말을 들은 A의 눈이 뱀처럼 날카롭게 변했다.

  “야, 그럼 내가 특별히 한 대 줄 테니까 펴.” A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나는 당연히 거절. 하지만 A는 집요했다.

  “야, 선임이 주는데 거절해? 담배가 얼마나 귀한 건지 몰라?!” 그렇다. 나는 담배가 얼마나 귀한 건지 몰랐다. 그리고 모르고 싶었다. 원래 흡연자라면 몰라도, 굳이 담배를 피지 않는 나에게 담배가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나는 한 번 더 거절했다.

  “진짜 괜찮습니다.” 이 말을 듣고도 A는 집요하게 권유했다.

  “야, 그럼 딱 하나만 펴. 그럼 그다음부터는 피라고 안 할게. 아, 진짜야.” 질 나쁜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그는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계속 나에게 담배를 권했다. 순간 나는 ‘오기’가 가슴 속에서 끓어 올랐다.

  ‘계속 권하면 내가 끝까지 거부하고, 나약한 모습이라도 보일 줄 알았어? 좋아, 그럼 내가 한 번 펴줄게.’ 이런 생각으로 그의 담배를 받아들였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담배를 빨아들였다. 그런데 ‘당연히’ 비흡연자였던 나는 속까지 연기를 빨아들이는 ‘속담’을 할 줄 몰랐고, 입에서만 연기를 빨아들였다 내뱉는 ‘겉담’으로 담배를 몇 번 폈다. 그 모습을 본 A 상병이 내 담배를 빼앗았다.

  “야, 그렇게 피는 건 겉담이잖아. 내가 시범 보여줄게.” 이렇게 말하더니 그는 내가 피던 담배를 입에 물고 쭉 빨아들였다가 연기를 내뿜었다.

  “다시 제대로 한 대 펴봐.” 이렇게 말하더니 그는 또 다른 담배를 꺼냈다. 처음 얘기와는 달랐다. 한 대 피고 나면 더 이상 권하지 않겠다고 하더니, 그는 연달아 두 번째 담배를 권했다. 나는 오기로 가득 찬 상태였기 때문에, 두 번째 담배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가 알려준 대로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가 내뿜었다. 두 번, 세 번 정도 그렇게 했을까. 갑자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어지러웠다. A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는 황급히 물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권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겼다. 자기 때문에 내가 잘못되면 큰 타격을 입을 것이었기 때문에, 다급하게 나를 챙긴 것이었다. 그는 말했다.

  “야, 내가 담배 줬다고 말하면 안 된다.” 삼류 소설에나 나올법한 대사를 남기고 그는 먼저 육공(육군 트럭)에 탑승했다.     


  복귀하는 차량에 탑승해서 나는 흔들리는 차 때문에 멀미가 더 심해졌던 것 같다. 말이 없어졌고, 몸이 급격히 안 좋아지는 걸 느꼈다. 가끔 나를 흘끔거리는 A와 눈이 마주쳤다. 그도 내심 큰일이 난 건 아닌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부대에 복귀해서 저녁 시간이 되었다. 그날 저녁은 ‘빵식’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군대에서의 빵식은 일종의 특식이었는데, 햄버거 빵과 빵 사이에 돼지고기, 또는 닭고기 패티를 넣고 그 위에 딸기잼이나 포도잼, 샐러드 소스 등을 얹어서 먹는 식이었다. 속은 좋지 않았지만, 저녁을 거르면 다음 날까지 얼마나 힘들지 알았기 때문에 나는 빵을 두 개나 먹었다. 그리고 청소 시간 전에 잠깐 쉴 시간이 생겨서 누웠다. 평소 같으면 이 시간에 누워 있는 건 꽤 ‘건방진’ 모습으로 보일 수 있었지만, 속이 계속 안 좋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머리가 핑핑 돌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구토감’이 올라왔다. 나는 화장실까지 뛰어갈 여유도 없이, 생활관 바닥에 그대로 토를 해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선임들이 뛰어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군대란 꽤 정이 많은 집단이었던 것 같다. 다들 무슨 일이냐고, 일단 의무대부터 가자고 했다. 한 명이 나를 부축해서 의무대로 향했고, 그동안 다른 선임 또는 후임들이 내가 토한 걸 치워줬던 걸로 기억한다. 이 글을 통해 한 번 더 고마움을 전한다.     


  그때 내가 의무대에 누워 있다는 걸 알고 내가 아끼는 후임인 김○진 일병이 찾아왔다. “아이고 행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의 구수한 사투리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다. 그는 설명했다. 지금 소대에 난리가 났다고. 여러 후임의 증언을 통해 ‘비흡연자’인 내가 오늘 흡연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돌았다. 그리고 이 소식은 간부들 귀에까지 들어가서, ‘누가’ 나에게 담배를 권했는지를 찾고 있다는 거였다. 나는 속으로 쌤통이구나 싶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A 상병을 찌르고, 다른 부대로 보내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란 생각까지 들었다. 김○진 일병도 말했다. 그냥 이번 일로 간부들한테 말하고, 아예 다른 부대로 보내버리자고. 하지만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가 권하든 권하지 않았든, 결국 그 담배를 받아들인 건 ‘나’였다. 나는 관심병사 취급을 받던 군인이기 이전에, 한 명의 성인이었다. 내 행동에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일로 그를 타 부대로 보내버리지 않게 된다면, 그는 앞으로도 나에게 ‘빚’을 지게 되어 내 눈치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간부들의 질문에도 입을 닫게 되었다. 군 생활이 힘들어서 내가 그냥 선임들의 담배를 얻어 폈다고. 그리고 누구도 나에게 담배를 권하지 않았다고. 간부들은 의아해했지만, 약간 결의에 찬 내 눈빛을 보고 넘어갔다. 다만 앞으로 몸에 맞지도 않는 담배를 피지 말라고 경고하고 갔다. 나는 청소 시간을 훌쩍 넘기고 생활관에 도착했다. 그때 불안한 눈빛으로 나에게 다가왔던 A가 아직도 생각난다. “그냥 제가 원해서 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안도하는 그의 눈빛. 생각해보면 이날을 기점으로 그의 갈굼이 현저히 줄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그 시절을 다시 회상해본다. 당시 나의 행동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인간은 누구나 ‘오기’를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하곤 한다. 하지만 ‘오기’와 ‘용기’는 그 의미가 다르다. 내가 나를 망칠 수도 있는 약물을 접하게 되었을 때, 또는 심하게 다칠 수도 있는 어떤 도전을 직면했을 때는 당당하게 ‘못 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진짜 용기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 나의 선택을 돌이킬 수 있는 방도는 없지만, 비슷한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나는 끝까지 나의 ‘신념’을 지키는 선택을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용기이고, 나 자신을 지키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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