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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남 Aug 07. 2023

#018화 @총기함 열쇠, 잃어버리신 적 있습니까

  다음은 내 군 생활 중 가장 아찔했던 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군대에는 ‘총기함’이 있다. 총기함은 말 그대로 총기를 보관하는 캐비닛 같은 개념이다. 군인에게 있어서 총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고, 또한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기에 안전한 보관이 필수적이다. 누구나 아무 때고 자유롭게 총을 빼낼 수 있다면 인재(人災)가 발생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내가 일병 때의 일이다. 내가 불침번 부사수였을 때의 일. 사실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미심쩍은 사건이긴 하다. 그날도 평소처럼 근무를 마치고 ‘총기함 열쇠’로 총기함을 열어, 총을 집어넣고 잠갔다. 그리고 누워서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한 선임이 나를 깨우며 다짜고짜 욕을 했다. “미친놈아, 총키(총기함 열쇠) 어딨어?!” 이때부터 악몽이었으면 좋았을 지옥 같은 현실이 시작되었다.     


  분명히 행정실에 걸려 있어야 할 소대의 총기함 열쇠가 사라진 것이었다. 다음 근무자들은 총기함에서 총을 빼지 못하고 있었고, 마지막으로 열쇠를 관리했던 내가 범인으로 지목됐다. 나는 잠도 덜 깬 상태로 “찾아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중대 곳곳을 찾아다녔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술을 진탕 마셔서 기억에 ‘블랙아웃’이 온 것도 아니었는데, 도무지 내가 열쇠를 어디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습관처럼, 행정실에 열쇠를 걸어두고 온 것 같은데 도대체 열쇠 ‘하나’가 어디 갔단 말인가.    

 

  혹시 화장실에 소변을 보고 놓고 온 게 아닐까. 화장실을 찾아봤다. 없었다. 혹시라도 샤워장에 떨어진 게 아닐까. 샤워장도 찾아봤다. 역시나 없었다. 생활화를 비치하는 신발장, 총기함 근처, 생활관, 내 자리, 내 전투복, 내 전투화, 전투 조끼, 방탄 헬멧 속까지 샅샅이 뒤졌다. 그 어디에서도 총기함 열쇠는 보이지 않았다.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났다. 어느새 새벽이 찾아오고 있었고, 내 속은 타들어 갔다. 말번초 근무자였던 윤○모 일병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두 손으로 내 머리를 꽉 잡고 소리를 질렀다. “정신 차려!!! 너 이거 잃어버리면 영창이야. 알아? 기억해 내라고! 네가 마지막으로 어디 뒀을 거 아니야. 진짜로 기억 안 나?!” 나중에 그에게서 들은 얘기지만, 그렇게 다그치면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 나리라 믿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내가 한심하고 안타까웠다고 한다. “...죄송합니다. 정말 기억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제 겨우 ‘군쪽이’를 벗어나나 했는데, 이 사건으로 나는 중대 최악의 ‘관심병사’로 자리매김하는 듯했다.     


  그때였다. “총키 찾았습니다!!!” 나를 대신해서 총기함 열쇠를 찾아준 건 다름 아닌 오○성 일병이었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선임이고 나발이고, “어, 어디서 찾으셨습니까?” 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오 일병은 ‘샤워장’ 바닥에서 열쇠를 발견했다고 했다. 그저 감사한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백 번은 넘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 분명 샤워장과 화장실도 여러 번 샅샅이 뒤졌었는데, 그땐 보이지 않던 열쇠가 왜 그의 눈에만 보였을까.     


  가능성은 두 가지. 첫 번째 가능성은 내가 ‘너무도 긴장한 탓에’ 떨어져 있던 열쇠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 사람이 뭐에 홀리면 주의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바로 앞에 떨어져 있던 열쇠도 식별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두 번째 가능성은, 애초에 그가 가지고 있었던 것. 당시 나와 함께 불침번 근무를 섰던 것도 오○성 일병이었다. 어쩌면 잠에 취한 내가 그에게 열쇠를 맡겼고, 그가 깜빡하고 반납하지 않고 전투복에 넣어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범인으로 몰리고, 여러 선임한테 온갖 욕을 먹는 모습을 보고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미 나는 관심병사로 낙인이 찍힌 상태였고,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말도 더듬거리면서 열쇠를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더 쉽사리 말을 꺼내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이런 의심을 두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라는 표현이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실이야 어떻든, 오 일병이 열쇠를 찾아준 건 사실이다. 덕분에 나는 십 년을 감수할 수 있었고, 정말 지금도 눈물 나게 고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 건, 왜 내가 근무 중에 들리지도 않았던 ‘샤워장’ 바닥에 총기함 열쇠가 떨어져 있었냐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13년이 지난 지금도, 도무지 답이 나오질 않는다. 어쩌면 오 일병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실수로 열쇠를 가지고 있다가 사태가 심각해지자 샤워장 바닥에 던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진실은 그 사람만 알겠지. 어쨌든 한 번 군쪽이로 낙인찍히고 나니, 이런 사건이 있을 때 더 강력하게 비판받는구나 싶었다. 온갖 선임들한테 욕을 먹는 중에는 잠시나마 ‘죽고 싶다’라는 생각까지 들었었던 것 같다. 아마 군 생활을 통틀어 가장 힘든 순간 중 하나였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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