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다이어리 in Thailand #18

#Epilogue. 치앙마이

by J임스

Days after.


일상의 사전적 정의는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라고 한다. 치앙마이로 복귀한 지 단지 하루 만에 나는 자연스레 일상으로 돌아왔다. 지친 몸을 마음껏 누이고 별다른 의무가 없었으므로 눈이 떠지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가 고프면 밥집을 찾았고 시간이 비는 오후 대게의 시간에는 커피숍을 전전했다.


도시로 돌아온 로시난테도 가벼움 그 자체였다. 시동을 걸고 목적지에 다다르는 일이 마치 집 앞 편의점을 가는 듯했다. 비가 한 번 세차게 내리는 날이 있어 바이크를 도로변에 잠시 내두었더니 엔진과 통풍구 근처를 덮고 있던 흙먼지가 조용히 씻겨나갔다.


단골집들을 순회하고 유난을 떨며 출발을 했으나 주인장들과 점원들은 여느 오고 가는 여행자들이 익숙한 듯 크게 반가워하면서도 그들 역시 금세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일상은 다른 일상들을 만나 지극히 평범한 모습으로 시간에 정박(碇泊)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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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8


외국인 포럼(Forum)을 뒤져보니 곤히 잠들어 있는 맥북(Macbook)을 맡길 만한 곳이 있어 찾아갔다. 단순한 증상이길 바랬으나 진단은 하드디스크의 고장으로 통째로 새로운 저장장치를 교환했다. 덕분에 집착하던 자료와 데이터들을 한순간에 날려버리고는 꽤나 허탈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다행히도 주행 중에 따로 카메라의 메모리 카드를 백업해두지 않은 것이 오히려 행운이 되었다. 이번 여행의 기록만큼은 고스란히 남아 있던 것이다. 씁쓸한 마음을 굳이 생면부지의 수리공에게 전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잠시 자리를 벗어나 커피를 직원 수만큼 사들고 돌아왔다. 쓰고 달달한 냉커피를 낯선 이와 함께 나눠마시는 것으로 다소 복잡한 생각을 정리했다. 마음이 비어버렸을 때는 이유 없이 나눔으로써 되려 마음을 채우는 것이 나의 몇 안 되는 지혜라면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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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8


지난 일들의 기록을 때로는 주기적으로 대체로는 비정기적으로 하다 보니 못다 한 생각과 감상들이 쌓여가는 것을 느끼며 오래된 노트북이 새 심장을 찾는 대로 좀 더 열정을 더하리라- 고 곱씹었다.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하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항상 어렵고 두렵기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여행인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in Thailand'의 마무리는 시간을 두고 차차 하기로 한다. 어떤 술과 차는 시간을 두고 담가 놓으면 더 맛이 나는 것처럼, 괜히 그런 이야기들이 되기를 바라면서.


치앙마이에서 다시 방콕으로 내려가기 전까지의 일상은 출발 전과 마찬가지로 반복과 재탕의 연속이었다. 다만 지루함이 없었다. 그 자리에 괜한 아련한 마음이 들어와 있었다. 익숙한 곳을 가도 언젠가, 곧 다시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니 사소한 것들과 작은 인테리어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공간에 들어차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심심할 때가 되면 로시를 타고 로시! 요시! 하면서 도이 수텝(Doi Suthep) 산의 커브를 올랐다. 사원에서는 그저 앉아서 풍경(風磬) 소리를 듣는 일이 좋았다.


방콕으로 가기 딱 하루 전에 바이크를 반납했다. 정이 든 녀석을 해 줄 필요도 없는 청소로 말끔히 하고 대여소로 데려갔다. 몇 번이고 안장을 쓰다듬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았다. 고마웠다. 또 누군가를 태워 바람같이 질주하고 안전하게 보듬어주기를.


집으로 돌아오면서 가장 좋아하는 커피 가게와 국숫집을 지나쳤다. 마지막- 이라는 생각으로 한 번씩 더 들를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언제고 다시 와서 이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한 감정을 말끔히 지울 그런 인사를 나누기로 하고. 그리고 또 떠날 때면 이 감정이 다시 나를 찾아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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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끝 혹은 만남과 헤어짐을 잇는 그 아련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 이번 여행은 존재했던 것일까? 치앙마이를 떠나는 마지막 날, 어느새 더욱 가벼워진 배낭을 훌쩍 매고 골목에 잠시 서서 남은 마음을 포장했다. 방콕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 낡은 좌석에 몸을 기대니 비로소 연체(延滯)되었던 여행의 만족감이 밀려왔다.


출발하는 차창 밖에 내놓은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다시금 익숙한 미풍(微風)이 분다.


총 주행거리 1,963.2KM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in Thailand를 끝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