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다이어리 in Thailand #17

Day 17. 매 체디, 매 타크라이, 치앙마이

by J임스

Day 17.


풀벌레들은 어둠을 좋아하는지 아침이 되니 간밤의 합창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잦아들었다. 주행에 지친 몸은 피로감을 호소했지만 나무집으로 스며드는 햇살 때문인지 눈은 저절로 떠졌다. 그래도 무료로 업그레이드(Upgrade)된 이 독채의 호사로움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기 위해서 몸을 침구류에 부비며 다시 옆으로 돌아누웠다. 문 틈으로 스며든 미풍이 계속해서 나의 코를 간질이며 아침잠을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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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치앙마이까지는 100KM 남짓한 거리만을 남겨두고 있다. 어차피 치앙마이로 복귀하면 다시 전부 풀어서 정리해야 할 짐이라고 생각하니 늘어놓았던 옷가지와 수건, 빨랫감들을 아무렇게나 배낭에 욱여넣게 되었다. 기대하지 않은 커피숍이 숙소 바로 옆에 붙어 있어 아침식사와 커피를 챙겨 먹었다. 내게 여느 여행의 종반이 그러하듯 크게 기쁘지도 슬프지도 아니했다. 알 수 없는 감정들은 꼭 숙성된 술처럼 일련의 시간을 지낸 후 내게 다시 진하게 돌아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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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이라고 특별히 행운이나 여유가 주어지진 않는 것 같았다. 주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방으로 잔뜩 공사 중인 도로가 연속으로 나를 맞이했다. 날도 비가 한 번쯤은 쏟아질 법 한 정도로 다소 어두운 잿구름들이 계속됐다. 한 시간을 조금 넘게 달리니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때마침 매 타크라이(Mae Takhrai) 국립공원 지역이 나타나 이번 여정의 마지막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주차된 차량들 사이로 배낭을 단단히 여며둔 로시난테의 모습에 괜히 계속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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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7


국립공원의 초입에 간이식당이 있어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비가 짧게 스치고 간 도로로 다시 복귀한다. 국립공원 지역을 벗어나면서 어느새 도로의 폭이 몇 차선이나 더 넓어져 있었다. 눈 앞에 커다란 간판이 보이니 익숙하고 친숙한 이름이 쓰여있다. 헬멧 안에서 미소가 났다.


'Welcome to Chiang Mai'


차들이 순식간에 늘어났고 도로의 소음도 그만큼 증가했다. 노면의 상태도 확연히 좋아졌기 때문에 속도계는 어느새 100KM에 가까이 올라가고 있었다. 한번 찾아온 미소는 나의 입꼬리를 계속해서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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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7


여행의 도중에 치앙마이 이후의 일정을 방콕으로의 복귀로 정했는데 가장 저렴하면서도 가성비가 좋은 버스 대신에 개인적으로 제일 선호하는 기차여행을 통해서 이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치앙마이 역은 도시의 외곽에 있었기 때문에 올드 타운(Old Town Chiang Mai)으로 돌아가기 전에 기차역에 들러서 미리 표를 예매하기로 한다.


두 도시 간의 이동에는 저가항공(LCC)의 노선이 워낙 많아서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지만, 장기간을 여행하는 배낭여행자에게는 특별히 일정을 서두를 일이 없기 때문에 이동에 하룻밤을 소요하는 나이트 버스나 슬리핑 기차를 활용하면 숙소비를 줄일 수 있는 큰 이점이 있다. 그리고 비슷한 연유로 함께 탑승하는 여행자들 간의 소통이나 교류도 잦아, 후일의 여행 일정을 설계하는데도 예상외의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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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7


아침 일찍 출발하여 당일에 도착하는 급행열차도 있었지만 역시 목적에 맞게 오후에 출발하여 다음 날 새벽쯤에 방콕에 도착하는 슬리핑 기차로 예매했다. 열흘 정도의 시간을 다시 치앙마이에서 충분히 쉬고 내려가는 것으로.


참고로 기차는 1등석과 2등석, 다시 2등석은 에어컨(Air-conditioning)과 선풍기(Fan)로 나뉜다. 통상적으로 여행자들이 항공권과 맞먹는 높은 가격의 1등석을 고민할 필요는 없을 듯하고, 2등석의 두 가지 중에서는 에어컨 칸을 추천하고 싶다. 야간기차의 특성상 창문을 열고 달리는 선풍기 칸은 때에 따라 날벌레들이 열차 칸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원치 않은 경험을 만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격 차이도 크지 않았으므로 나 역시 매표원도 동일한 이유로 추천해 준 2등석 기차표를 손에 들고 역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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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7


얼마 달리지 않아서 금방 익숙한 해자(垓子)가 눈에 들어왔다. 해자를 따라 다시 조금 나아가니 익숙한 성벽과 유적이 보인다. 올드 타운 동쪽의 타페 문(Tha Phae Gate)은 여전한 모습으로 단골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일부러 구 시가지를 둘러싼 못을 따라서 한 바퀴를 온전하게 다 돌았다. 수 분만에 두 번째로 눈에 들어온 타페 문에는 친근한 감정이 돌아왔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와서 내가 치앙마이에서 가장 즐겨 찾는 가게 중 하나인 커피 텔링(Coffee Telling)을 일부러 지나쳐본다. 아니나 다를까, 사장님이 여전한 미소로 계산대에 서서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잠시 바이크를 세우고 복귀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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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최상의 커피를 선물해주는 아저씨께는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신기하게도 도시에 돌아오자마자 맛을 찾기보다는 무언가 소비를 하고픈 마음의 욕구가 컸다. 딱 어울릴 만한 곳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곳은 내일 다시 찾기로 하고 바이크를 골목으로 몰았다. 구 시가의 한적한 골목에 자리한 그라프 카페(Graph Cafe)를 찾았다. 나는 이 곳의 커피맛을 높이 평가하지는 않지만, 예쁜 사진을 남기기 좋은 카페이면서 동시에 실험적인 음료들로 가득한 메뉴로 사람들에게는 매우 인기가 많은 곳이다. 그러나 태국의 물가를 고려하면 커피 한 잔의 가격이 전혀 저렴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잘 찾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오랜 장거리 여행에 지친 마음 때문일까,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이 곳이었다는 사실이 카페를 들어서 비좁은 의자에 앉아서 주문을 하는 와중에도 신기하기만 했다. 여행의 끝에서조차 소비를 갈망하는 여행자라니. 지극히 솔직한 건지 속물적인 건지 스스로에게 거듭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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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행색 또는 몰골을 한 여행자의 등장이 기존의 공간을 점유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몹시나 이질감을 주는 것 같았다. 호기심이 많은 서양 여행자가 유리문 밖에 세워진 바이크를 보면서 이런저런 질문들을 했다. 가벼운 답변들로 몇 차례의 질문을 넘기니 다소간의 고요가 찾아왔다. 한껏 멋을 낸 음료의 맛을 느끼면서 이곳부터 들르게 된 까닭에 어렴풋이 답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그리웠던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그들의 관심이-


어떤 곳에서는 몇 끼의 식사값이 되었던 돈을 한 잔의 커피값으로 지불하고 공간을 나왔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역시 소비의 위력이란 새삼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숙소에 관해서는 익숙했던 몇 곳이 있었기 때문에 따로 예약을 하지 않았다. 현재의 가격을 물어 적당한 비용에 합의를 해 볼 요량이었다. 독실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방콕으로 내려가기 전에 얼마만큼의 돈을 쓸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는데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이 되었다. 이전에 찾았던 곳 중에 한 곳의 도미토리가 아무도 머물지 않고 있는 상태였고, 내부의 인테리어를 바꾸는 중이라 여러 사람을 받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빠른 흥정으로 싼 값에 도미토리를 점령하기로 했다. 그리고 생각한 대로 체크아웃을 할 때까지 다른 여행자는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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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들어오자마자 거울에 비친 자화상을 한 컷 찍었다. 어깨에 올라타고 있던 것 같은 어떤 무게감이 가벼워졌다. 짐을 풀어 꼼꼼히 정리를 하고, 샤워를 하고 나니 무언가가 금세 스쳐간 기분이 되었다. 수단과 거리로 보면 꽤나 길다고 생각한 이번 여정은 이렇게 순식간에 마무리되었다.


숙소 앞에 세워둔 로시난테도 어디를 얼마나 달렸는지 개의치 않는다는 모습으로 태연하게 느껴졌다. 그런 바이크의 안장을 괜히 쓰다듬으며 잠시간 감상적인 기분에 젖었다. 두 발로 익숙한 치앙마이의 구 시가지를 조금 걷기로 하고 숙소를 나섰다. 골목을 채우는 생활(生活)들이며 생업(生業)들, 여행자들과 이따금씩 들려오는 골목 사찰의 풍경소리까지 변한 것은 없었다. 지는 해가 도시에 선물하는 석양의 색마저도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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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미각과 포만감 모두 만족스러운 저녁식사를 하고 보니 오늘이 일요일이다. 그동안 딱히 날짜 감각이 없었다. 일요일은 치앙마이에서 유명한 일요시장(Sunday Market)이 서는 날이다. 도시로 돌아오자마자 이런 여행운이 따르는가- 하면서 소화도 시킬 겸 시장 산책을 나섰다. 일요시장은 오후에 봤던 동문인 타페 문에서부터 서쪽으로 1.2KM에 이르는 직선로에 가득하게 상점이 늘어서는데 이 곳에서 찾지 못하는 기념품들은 태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찾을 수가 없을 정도로 그 수량이 엄청나다. 매번 시장을 찾아 매번 같은 물건을 보는 것 같으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물건들의 디테일을 살피고 가격을 묻는다. 어쩌면 시장을 구경하는 그 재미 자체 때문에 이 길고 번잡한 행렬에 자꾸만 발을 들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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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시장의 활기가 잠시간 이곳을 떠나 고요를 찾았던 여행자의 마음을 금세 파고들었다. 간식거리를 몇 개나 사 먹고, 시장 골목을 여러 차례나 왕복했으면서도 쉽게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다. 숙소로 들어가지 않고 발걸음을 북쪽으로 옮겼다. 노스게이트 재즈바(The North Gate Jazz Co-Op)는 내가 치앙마이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치앙마이 여행의 이유와 기준에 5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으로, 이번 숙소 역시 이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한주를 마감하는 일요일, 그리고 시장까지 마감하는 늦은 시간임에도 이 곳의 열기는 여전했다. 관객들은 평소보다 많지 않았지만 연주자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연주 혼을 불태웠다. 익숙한 맥주를 주문하고 한가로운 덕분에 앞자리에서 음악을 감상했다. 연주가 고조될수록 미처 다 채우지 못한 만족감이 점점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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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주 한 병을 다 비우고 다시 숙소를 지나서 반대방향으로 걸음을 좀 더 옮겼다. 본능은 연유를 스스로 묻기도 전에 몸을 움직이게 했다. 시작되는 새로운 주의 기대감보다는 당장의 본능에 이끌린 듯,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유야 제각각이겠지만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는 일은 같았다.


치앙마이의 밤을 대표하는 Zoe In Yellow Bar는 마감시간을 불과 몇 십분 앞두고도 뜨겁게 음악과 열정을 뿜었다. 따따로의 일행들이 어느새 한 덩이가 되었으며 낯선 열정은 주변으로 쉽사리 전염되었다. 고작 맥주 한 병에 취기가 올라버린 얼굴로 사람들의 사이를 비집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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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손이 불편해 새로 받은 칵테일을 단숨에 들이켰다. 두리번거리며 사람들을 살피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조금 들어 젖혔다. 소리의 질(Quality)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볼륨을 한껏 높인 스피커의 음악소리가 몸을 때렸다. 말을 걸거나 걸어오는 이는 없었지만 군중 속에 있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줬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렇게 홀로 사람들과 음악, 열기와 공간에 묻혀 씻어 내렸다. 가슴속에 조금 쌓인 감정들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몸을 어색하게 흔들었다. 그러다가 이내 몸을 억지로 흔드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대로 괜찮았다. 다시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마다의 순간을 산다.


나는 그냥 그것으로 좋다고 생각했다.


총 주행거리: 163.7KM

숙소 정보: 9 Hostel (Walk-in)



+) 치앙마이로의 무사귀환. 오는 날이 알고 보니 장 날.

-) 단골집을 두고 헛돈을 쓰러 감. 역시 맛은 별로.

=) 마음을 채우는 일은 여행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있을까?


&) 오늘의 OST-

https://youtu.be/e_YvqX-2yOI

Gregory Porter - Liquid Spirit (Claptone Rem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