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다이어리 in Thailand #16

Day 16. 치앙라이, 매 쑤아이, 도이 창, 매 체디

by J임스

Day 16.


아침에 계단을 내려오면서 식기(食器) 소리와 함께 여러 말소리(言)가 들려왔다. 오늘은 비바(숙소 주인) 말고도 다른 두 명의 여행자, 그리고 비바의 동네 친구가 몇 명이나 함께 있다. 애론(Aaron)과 케리(Kerry)는 미국에서 온 남매인데 각각 서로 다른 루트로 여행을 하다가 이곳 치앙라이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애론이 오빠였는데 그는 여느 자상한 오빠가 그러할 것처럼 사소한 것도 연신 케리에게 질문을 던졌고, 케리는 상큼하고 밝은 목소리로 성실하게 답하는 식의 대화가 이어졌다. 가벼이 서로 인사를 나눈 우리는 비바의 고민거리인 '호스텔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꽤나 심도 있게 대화를 나눴다. SNS를 통한 마케팅을 강력하게 주장한 케리의 의견에 살을 덧대어 비바에게 정리해 전해주니,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환한 미소로 감사를 표시했다.


아침을 먹기에는 다소 늦은 시간이었는데 비바가 다 같이 태국 음식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에, 세 명의 여행자는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모두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으로 이동했다. 호기심이 많은 애론이 비바의 옆에서 직접 요리 재료를 손질하고, 마케팅(X2)을 줄기차게 주장하던 케리가 조리과정의 콘텐츠화(?)를 돕는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추억화하기로 했다.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6


오늘이 이 곳 치앙라이를 떠나는 날이었기 때문에 이런 인연들이 있으면 하루를 더 머물 것을- 하고 아쉬워했다. 비바도 못내 아쉬운지 식사로 차린 파인애플 밥을 더욱 푸짐하게 내 접시에 담아내었다. 새로 만난 두 여행자와도 아쉽기는 매 한 가지였다. 특히 애론과는 오전의 짧은 시간 동안에도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동서양 여행자 사이의 묘한 접점을 나눴으므로, 더 깊은 생각들을 천천히 나누어 갈 수 없음에 안타까움이 들었다. "See you on the road." 라며 내 트레이트 마크와도 같은 작별인사를 남기고 배낭을 멨다. 비바와는 두 손을 서로 꼭 잡고 흔들며 다시 찾아올 것을 약속했다.


"Be safe na kaaa."


안전을 기원하는 그녀의 미소를 보고는 산뜻한 기분으로 길을 나섰다. 다시 1번 고속도로를 타야 하므로 국도를 따라서 큰 도로를 찾아 달렸다. 뜨거운 햇살의 온기와 미풍이 순간을 감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이제 치앙마이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인데 오늘 달리면 내일 밤이나 늦어도 모레쯤에는 다시 출발점으로 원상 복귀할 수 있을 듯하다. 이번 여정의 거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이다. 기껏해야 48시간쯤이니 피곤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6


1번 고속도로를 만나서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최고속도로 110KM 가까이 달렸다. 치앙라이와 치앙마이 두 도시 간의 도로는 여느 지방도로와는 달리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치앙마이로 바로 내려가기 전에 동선을 한 번 꺾어서 매 쑤아이(Mae Suai)를 탐방하기로 한다. 매 쑤아이에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도이 창 커피(Doi Chang Coffee)의 농장이 있다. 커피 애호가로 치면 둘째를 줘도 서러울 사람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직접 농장과 본사를 방문해보기로 했다. 산속 도이 창 마을을 중심으로 도이 창 브랜드의 커피를 제외하고도 다른 대형 커피 농가들이 있는 것 같았다. 산속을 달리며 커피 모험을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입이 귀에 걸렸다.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6


도이 창 산은 산세가 복잡하지는 않지만 오르는 길이 꽤 가파르고 높이가 2,000미터에 육박한다. 2천 미터가 넘는 고산은 이번 여행에서 몇 번이나 달려왔으므로 이제는 꽤나 복장이나 주행에 능숙함이 생겼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국도, 그리고 다시 산길로 접어들었지만 기세를 주욱 몰아서 한 번에 빠르게 치고 올라갔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 한잔이라도 더 많은 커피를 마셔보기 위함이었다.


산세가 재미있었다. 완만하고 가파른 능선이 잘 섞인 카드 마냥 순차적으로 패를 보이며 스릴을 줬다. 기다랗게 늘어진 능선을 주행할 때면 좌우로 초록의 아름다움이 눈 앞에 펼쳐졌다. 쉴 새 없는 주행에 어느덧 정상 가까이에 올랐다고 생각하고는 바이크를 잠시 세워두고 숨을 고른다. 기가 막힌 풍광이다. 커피에 대한 간절함이 다소 덧없게 느껴질 정도.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6


마침내 도이 창 커피의 간판을 찾았다. 산을 오르는 길이 점점 좁아져서 이런 외진 곳에 도이 창 공장이 있나- 싶을 정도의 고민이 들자마자 정상 부근에 위치한 도이 창 커피 플랜트(Plant)를 만났다. 설비의 규모는 꽤 컸지만 외부의 풍경은 기대와는 달리 조용했다. 입구에 위치한 도이 창 카페를 둘러본다.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찾아오는 이들이 종종 있는지, 공간과 구색을 잘 갖춰 놓았다. 이 날도 직접 차량을 끌고서 찾아온 태국인 커플이 한 쌍 있었다. 산지의 홀빈(Whole Bean)이 담긴 원두팩의 신선한 생산일을 보면서 괜히 만족스러운 미소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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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도이 창 커피(라떼)를 한 잔 들이켜고 이 지역의 싱글 오리진(Origin) 커피맛을 좀 더 느끼기 위해 직원에게 물었더니 근처에 좋은 곳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직관적인 이름의 도이 창 커피 팜(Doi Chang Coffee Farm)은 부지에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공간을 만들어 대형의 체인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신선한 매력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영업시간 종료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자리에서 편하게 쉬고 가도 좋다고 일러준 바리스타가 주문과 함께 금방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6


과일향과 신맛, 적당히 탄맛이 어우러진 훌륭한 커피. 바리스타에게 일부러 과장된 몸짓으로 엄치를 척- 하고 들어 올리니 부끄러운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몇 모금을 더 마시며 고개를 연식 끄덕였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태국 북부 산지의 커피는 처음 맛이 신선한 대신에 끝 맛이 부족하고 아쉬운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커피는 마무리까지 충분한 만족감을 주었다. 이 곳까지 찾아온 보람이 있구나- 하고 다시 헬멧과 미리 바리스타에게 추가로 주문해 둔 라떼를 들고서 오토바이를 세워둔 마을 어귀로 돌아갔다.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6


기수를 돌려 산을 내려가려는데 도이 창 공장 쪽이 한바탕 시끌벅적하다. 바이크를 다시 멈추고 보니 금일(今日)의 일과를 모두 마친 듯 한 근로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풋살과 배구를 하고 있다. 커피를 내리 세 잔이나 마시고서 헛배도 부르고 아직 해가 꽤 남아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도 구경할 겸 해서 잠시 시간을 두고 쉬기로 했다. 풋살팀 쪽에서 같이 뛰기를 두 차례나 유혹했지만 열심히 손사래를 쳤다. 매일 치르는 경기 같은데도 양보가 없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아쉽지만 나는 몸을 사리기로 했다. 사람들의 고성과 웃음소리가 섞여서 평화로움을 줬다. 바람에 나부끼는 커다란 국기(Flag of Thailand)가 몇 차례나 눈길을 뺐었다.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6


내려가는 길에 알맞게 석양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점점 더 경기에 몰입하여 이방인의 존재를 잊어버린 그들에게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시동소리가 괜히 방해가 될까 해서 손으로 직접 오토바이를 끌고 입구 바깥으로 나온 다음에야 시동을 건다.


바람이 차다. 산이 깊은 만큼 해가 다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순식간에 기온이 떨어졌다. 외투를 꺼내 입고 다시 달려본다. 올라올 때 등 뒤로 지나쳐 보지 못했던 능선들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해가 내려옴과 동시에 멀리서부터 구름 떼가 몰려왔다. 빛이 구름 사이를 관통할 것 같아 적당한 곳에 바이크를 세우고 석양을 감상하기로 한다. 오늘의 석양 감상관은 버려진 공사장으로 낙점.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6


해가 세상의 끄트머리 즈음 남았을 때 다시 서둘러 산을 내려갔다. 오늘의 예상 동선과는 속도가 다소 틀어져서 산을 내려오자마자 지도 앱(App)을 다시 켜고 거리와 숙소를 계산했다. 1번 고속도로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118번 국도를 타고 치앙라이, 람빵(Lampang), 치앙마이의 세 지역이 만나는 매 체디(Mae Chedi) 지역까지 진행하기로 한다. 야간에 꽤나 장거리를 달려야 하는 동선이었지만 내일의 일정을 생각하면 오늘 무리를 해서 좀 더 치앙마이에 가까이로 움직여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계산상으로는 내일이면 치앙마이에 무리 없이 도착할 수 있는 일정.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6


어둠 속을 달리는 일이 익숙할 법도 하건만 긴장감은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사실 약간의 야맹증이 있어서 피로감은 두 배에서 다시 곱절로 급격하게 증가한다. 국립공원을 통과하기 때문에 의지할 가로등조차 드문 구간이 많았다. 덕분에 집중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외로움 등은 느낄 새도 없었던 듯하다. 기나긴 주행에 잠시간 나타난 마을에서 대충 저녁식사를 해결하고 또 달렸다. 어둠 속에서는 도로 사정이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아 속도를 내기가 어려웠다.


목표로 한 숙소에는 열 시가 다 돼서야 도착을 했다. 막판에 길을 조금 헤매기도 했고. 마을과 마을 사이의 도로변에 숙소가 있어 한번 지나치고 나니 다시 유턴(U-Turn)을 하기 위해서는 한참을 더 달려야 했다. 어쨌든 무사히 숙소에 도착- 이라고 생각하고 카운터를 찾으니 직원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간신히 잠겨버린 사무실의 문 앞에 적힌 메모에서 숫자를 발견하고 전화하니 숙소를 지키는 관리인 아저씨가 나타났다. 짧은 태국어와 태국식으로 완전히 세탁된 영어를 섞어 설명하니 아저씨가 숙소 주인인 듯한 사람과 통화를 하고 나를 바꿔준다. 예약한 객실(텐트)은 없으니 별채를 내어주겠다고 한다. 잘 쉬고 가라고-


처음의 짜증이 감사로 순식간에 바뀌는 나의 간사한 마음을 느끼며 반성하기도 잠시, 관리인이 내어준 독채에 안전하게 로시(난테)를 주차하고 방으로 지친 몸을 던졌다. 샤워를 30분이나 했다. 물이 가까이에 있는지 물소리가 났고 공기가 찼다. 풀벌레 소리와 귀뚜라미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익숙해질 즈음이면 들짐승인지 개인지 모를 소리가 났다.


나무로 지어진 공간의 문을 잠그고 재차 확인했다. 문을 잠그니 실내에 커다란 거미가 있었다. 숨이 다소 막혔지만 커다란 타월(Towel)을 던져서 잡았다. 아니, 잡았는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그 수건은 그대로 그 자리에 두기로 했다. 서늘한 온도에 온수로 기껏 데운 몸의 온기가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한숨을 크게 쉬었다. 몸을 침구류 안에 넣으니 내 온기가 스스로를 반겼다. 혼자 팔베개를 하고 시선을 천장에 두었다. 몸을 흔들거나 웅크릴 때면 나뭇 판자 사이에서 소리가 났다.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6


이윽고 눈을 감으니 마음에 고요가 왔다. 다양한 감정들이 가슴에서 다소 요동치는 것 같았지만 서늘한 공기가, 아니면 침착한 이성이 그들을 잘 다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일이면 치앙마이에 돌아간다.


총 주행거리: 169.3KM

숙소 정보: Phufatara Resort (부킹닷컴)



+) 치앙라이 커피란 이런 것이다.

-) 커피를 많이 마시면 속이 쓰리다.

=)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니 남는 것은 사람들과 풍경이더라.


&) 오늘의 OST-

https://youtu.be/ecAWcqTO3No

Ahmet Kilic & Stoto feat. Adeba - Stumblin' 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