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5. 치앙라이, 타 숫, 매 파
Day 15.
어제 치앙라이로 돌아오는 길에 반대편 차로로 카렌(Karen)족의 마을이 있다는 표지판을 봤다. 바이크를 잠시 멈추고 지도에 따로 저장을 해두었는데 숙소에 돌아와 검색해보니 타 숫(Tha Sut)이라는 지역에 카렌족의 마을이 있다. 도시에서의 거리와 검색을 통한 정보를 취합해보니 아무래도 투어나 관광을 목적으로 형성된 마을인 것 같았지만, 직접 보기 전에는 단언할 수 없었으므로 길을 나서기로 했다.
카렌족의 여러 갈래 중 레드 카렌족은 이번 여행의 초반부(모터사이클 다이어리 #3 참고)에 만난 적이 있고, 이번 목적지에는 카얀(Kayan)족이라고 하여 여성들이 긴 목에 장신구를 하는 부족이 있다. 고산족의 독특한 의상과 문화 덕(?)인지 외부세계의 많은 관심을 받는다.
호스텔에서 조식을 주는지도 몰랐는데 아침에 1층으로 내려오니 주인장인 Viva가 키친으로 오라며 손짓한다. 이 커다란 호스텔에 혼자 머물러 있는 것도 괜히 미안했는데 조식까지 직접 차려주니 괜한 미안함에 아침식사를 마치고 세븐(7-Eleven: 태국 편의점)에 가서 나도 밀크티와 초콜릿을 하나씩 사다가 전해줬다. 기대하거나 예상하지 않은 서로의 친절 덕분에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한다. 그녀의 점잖은 미소가 내게 평온함을 줬다. 지내는 동안에 굳이 미안함을 가지기보다는 서로 소소한 행복들을 더 나누기로 마음을 정했다.
날이 오늘따라 정말 뜨거웠다. 화창하게 개인 하늘에 구름이 단어 그대로 뭉게뭉게 피었다. 평소 선크림을 거의 바르지 않는 타입인데 오늘만큼은 다시 핸들을 돌려서 숙소에 들어갔다 나와야 하나- 하고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자주 쉬기로 했다. 그늘이 나오면 쉬고, 달리면서 또 비타민D 광합성도 하고. 그게 스타일이 아닐는지.
한창 속도를 내다가 도로 앞으로 서행 구간이 있어 무슨 일인가 내다보았더니 크게 사고가 났다. 오토바이와 차량이 같이 사고가 난 듯한데, 오토바이 운전자의 경우 심한 정도로 크게 다쳐서 구급차가 왔는데도 섣불리 부상자를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처지의 나도 잠시 멈추었다가 괜히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라서 시동을 끄고 한동안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거듭 그의 회복을 기원하며 멀어져 가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 거의 반 시간 가량이 지나서야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로시란테의 시동을 걸었다.
위축된 마음에 주행은 매우 더뎌졌지만 안전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멘탈(Mental)을 회복할 때까지는 함부로 스로틀(Throttle)을 감지 못했다. 차근히 가는 대신에 지나는 풍경들을 좀 더 눈에 넣기로 하니 자연과 자연색이 눈에 들어오면서 점차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줬다.
어제 지나면서 봤던 간판이 나왔다. 롱 넥 카렌(Long Neck Karen)이라고 쓰인 표지판을 따라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마을의 어귀로 나아갔다. 지나는 사람들이나 차량들이 많지는 않았는데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태국에서 보통 투어로 쓰이는 미니밴 차량 몇 대가 먼지바람을 내며 나를 앞질러 가는 것으로 보아, 기존에 내가 생각한 대로 관광으로 많이 활용되는 장소구나- 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입구에는 이미 나를 지나친 차량 이외에도 몇 대의 승합차가 더 있었다. 주차공간의 구분이 어느 정도 명확할 정도로 정돈된 마을을 보며 씁쓸한 마음을 숨기기가 어려웠지만, 그런 나조차도 이 곳에 호기심을 가지고 이렇게나 달려오지 않았던가. 적당히 둘러볼 요량으로 차량들과 좀 떨어진 곳에 바이크를 세워두고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그룹으로 온 사람들의 가이드가 해주는 설명에 귀를 기울여보니 태국의 기존 사회에서 고유의 문화유산을 지켜가며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카렌족들이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서 집단으로 모여 마을을 형성하고,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제한적으로 관광객들에게 개방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진실은 알 길이 없으니 호기심이 많은 관광객들은 그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흥미로운 눈빛으로 마을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싶어 할 뿐이었다.
그런 그들을 따라서 조금 더 나아가니 마을 초입에서는 보지 못한 매표소와 입구가 나타나 표검사를 시작했다. 당연히 그 이상의 마을 안쪽을 둘러보고 나아가 기다란 목 장신구를 단 여인들과의 기념샷을 찍기 위해서는 별도의 입장료가 필요했다. 고민할 것도 없이 웃는 얼굴로 사양하고 다시 왔던 길을 그대로 걸어서 돌아 나왔다.
아마도 투어의 마지막 출구인 것 같은 쪽으로 기념품점들이 늘어서 있어서 그쪽으로 마저 걸음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나왔다. 사실 본인 스스로도 그저 관광객에 지나지 않으므로 굳이 깊게 생각하고 씁쓸함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불편한 사실은 '이것이 카렌이다', '저것은 그것이다' 식의 프레임에 갇혀서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현실이었다. 부의 축적을 위해서 의식적/의도적으로 그러한 삶을 선택한다면 그대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사회와 자본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박탈된 자유를 바라보는 일이 나에게는 너무나 슬픈 일이 된다. 수년간 여행을 핑계로 방황하지만 동시에 그 방황을 가능케하는 주어진 자유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인식하는 개인으로서 보면 괜한 미안함을 느끼게 된다. 길 위에서 쓸데없는 친절을 흩뿌리고 다니는 까닭도 아마 그런 연유가 아닐까 싶지만. 이런 마음의 여유를 느끼는 것조차 어쩌면 사치이거나 오만함일 수 있겠지. 그럼에도 인식과 의식을 쉬이 떠나보내지 못하는 게 나의 이기심 이리라.
결국 역시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인가- 하며 나의 부족한 수양을 탓하며 잡생각은 나중에 정리하기로 한다. 이 마을을 넘어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들의 실거주지가 있을까? 하는 괜한 호기심이 잠시 올라왔는데 꾸욱 눌러버렸다. 내버려 둘 것. Let them be.
맑은 날씨가 있으니 주행에서 즐거움을 더 느끼기로 하고 방향을 다시 치앙라이로 잡았다. 시야가 수백 미터 앞으로도 전혀 방해가 없는 시원한 고속도로를 타고 너무 빠르지도, 너무 더디지도 않은 속도로 얌전히 나아갔다. 어제 타이어가 펑크 나는 바람에 시장 말고는 살펴보지 못 한 매 파(Mae Fah)에 들러보기로 한다.
매 파에는 큰 대학교가 하나 있다. 때마침 MFU(Mae Fah University)가 20주년이라고 하여 캠퍼스를 들러 구경과 함께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대학 생활에의 추억과 동시에 아쉬움이 많기 때문인지 나는 어느 나라를 여행하던 유독 대학가를 탐방하는 일이 잦은 편이다. 하기사 대학 재학 시절에도 호기심이 폭주하여 타대학의 수업을 도강하는 일이 잦았다. 본교의 수업을 빵꾸(D와 F학점을 다량 보유) 내고서 잘도 남의 대학에서 수업을 듣고 질문을 했다. 그것도 전공수업까지 따라가 소수 그룹의 토론 수업에까지 끼어들었으니, 돌아보면 정말 진상은 타고난다- 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MFU의 캠퍼스는 무척이나 컸는데 대학의 주변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중심이 되는 건물에서는 저 멀리 근사한 산세까지 한눈에 볼 수 있어서 학생들에게 너른 마음을 키워주기에 좋은 환경 같았다. 로시(란테)를 적당히 주차해두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가며 마치 교환학생이라도 온 것 마냥 캠퍼스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예전에는 내가 졸업한 학과나 학생들에게 말을 거는 일도 많았는데, 이제는 꽤나 학생들과의 연령적 거리감이 생겼기 때문에 삼가게 된다.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아는 지혜를 가짐으로써, 아재(Mister) 임을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편이 좋은 줄로 생각한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치앙라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백색사원(Wat Rong Khun)을 보고 들어가기 위해서 다시 주행을 시작한다. 치앙라이에서 카렌족 마을을 찾아온 반대 반향인 남쪽으로 15KM 정도를 내려가면 치앙라이 투어의 중심이 되는 순백(White)의 사원이 하나 있다. 흰색은 부처의 순수성과 지혜를 상징하며 건축에는 많은 양의 유리를 사용하여 부처님의 지혜가 온 세상을 비추는 것을 의미했다고 한다. 하나의 작품 같은 사원은 아직까지도 그 건축이 모두 끝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외국인을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사원을 보기 위해 몰려든다.
다만 사원을 보고 난 감상은 호불호가 다소 갈리는 편인데 순백의 색상과 사원의 구조가 날씨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고, 치장이 과하다 보니 일반적인 태국 사원의 매력은 오히려 퇴색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 역시 후자의 감상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큰 매력은 느끼지 못했으나, 정성과 마음을 들여 짓는 사원임을 감안하여 이리저리 다니며 다양한 각도에서 건축물을 바라보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급히 비를 피할 길이 없어 순식간에 몸이 절반쯤 다 젖어버렸다. 예정에 없던 센트럴 플라자(Central Plaza)에 들러서 비를 피하고 얇은 지갑을 대신해 눈으로 쇼핑을 했다. 이벤트 홀에서 때마침 커피 축제가 열리고 있어 치앙라이의 다양한 원두를 맛보는 호사를 누렸다. 여전히 덜 마른 옷과 종일의 주행으로 차림은 남루했지만 직원분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친절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원두에 관한 질문과 이야기를 나누고 명함을 몇 장 받아두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젖은 몸에 체온이 상당히 떨어졌기 때문에 특별히 에어컨을 틀 필요가 없었다. 대신 따뜻한 온수 샤워로 몸을 녹인 후 침대에 누웠다. 몸을 옆으로 뉘었다. 도미토리 내 침대 칸에 붙은 콘센트에 충전기를 꼽아 놓은 채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한참이나 쌓인 연락들을 하나둘씩 둘러보고는 답장을 해나갔다.
외롭지 않냐는 오랜 친구의 질문에 '언제는 외롭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라고 되물었다. 친구와 사사로운 톡(Messages)을 주고받는 얼굴에 아마도, 잔잔한 미소가 났던 것 같다.
총 주행거리: 109.8KM
숙소 정보: Grace Hostel Chiang Rai (부킹닷컴)
+) 호기심 해결. 남의 나라, 남의 동네 대학가 탐방.
-) 호기심 해결이 꼭 신나는 일만은 아니라는 것.
=) 여행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 평범한 하루.
&) 오늘의 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