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다이어리 in Thailand #14

#Day 14. 팡, 톤 두, 매 파, 치앙라이

by J임스

Day 14.


지난날, 사고(오토바이 나자빠짐)의 현장에서는 놀람 반&쿨병 반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이 털고 일어났지만 긴장이 풀린 탓인지 오늘날의 나는 침대 위에서 마치 온몸을 두드려 맞은 듯한 피로감에 쉽사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하루밖에 숙박을 하지 않는 탓에 체크아웃 시간이 계속 신경 쓰였지만 그래도 일단 육신(肉身)이 간절히 원하는 바를 들어주기로 하였다. 이러나저러나 나와 함께 한 평생을 살다 갈 녀석이지 않은가-


체크아웃의 아슬한 경계선에서 지퍼 하나 열지 않은 배낭을 그대로 다시 들쳐 매고 방을 나왔다. 이층 복도에서 왼쪽 귀(사이드 미러)를 잃은 로시난테를 내려보니 괜스레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미안하다, 미안해.


DSCF8287.JPG
DSCF8286.JPG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4


조식이 포함된 숙박이었지만 지각(遲刻)자 주제에 다시 상차림을 요구할 권리나 혹은 마음도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원래 조식이 있던 자리로 가서 조용히 남은 커피와 물 하나를 챙겨 감사한 마음으로 리셉션(Reception) 공간에 머물렀다. 잔비(가랑비)가 멈추질 않아 짐을 내려두고 기다리기로 한다. 스태프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낯선 여행자에게 한 두 번씩 시선과 미소를 건네고 간다.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음으로 화답했더니 열심히 들어 올린 입꼬리만큼 기분도 금세 한층 업(Up)이 되었다.


DSCF8288.JPG
DSCF8289.JPG
DSCF8292.JPG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4


비가 좀처럼 멈추지는 않았다. 가랑비에도 옷은 젖는다- 고 주행의 시작부터 몸을 비로 적시는 일은 달갑지 않았기 때문에 기다림은 계속되었다. 비가 잦아들 때 즈음 직원 한 분께 잠시 짐을 봐줄 것을 부탁하고 시내(아마도 읍내)로 잽싸게 바이크를 몰았다. 고개를 좌우로 휙휙 돌려가며 온 마을을 살핀다. 길을 나서기 전에 로시난테의 다친 귀를 치료해주는 것이 나의 신상(身上)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다행히도 태국에는 오토바이가 주 교통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에, 마을마다 수리점이나 부품가게가 몇 있다.


팡 역시 작은 도시이기는 해도 몇몇 가게가 보였다. 묻고 물어 여행자에게 가장 저렴하면서도 원래의 부품과 꼭 같은 녀석으로 낱개를 사다가 달았다. 정비공 청년이 나의 난처해하는 표정과 오토바이를 번갈아 보더니 가격도 얼마 부르지 않았다. 흥정할 이유도 없이 기분 좋게 그에게 고개를 끄덕하니, 채 안장에서 내릴 필요도 없이 가게 안에서 가져온 두어 개의 미러를 대어 보더니 빠르게 풀고 다시 조립해 나갔다. '오께(Okay)-'라는 말과 함께 기름때가 조금 뭍은 그의 손에 공손히 금액을 건네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DSCF8293.JPG
DSCF8296.JPG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4


나도 로시(난테)도, 날씨도, 모두 출발하기에 완벽한 컨디션이 되었다. 근처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출발. 오늘은 어제 하산한 도이 홈 폭(Hom Pok) 국립공원 지대를 옆으로 끼고돌아 다시 미얀마까지의 국경선까지 접근해서 달린 후 인근에 있는 국경의 마을을 살핀 다음에, 저녁 전에는 방향을 치앙라이(Chiang Rai)로 틀어서 도시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정했다.


톤 두(Ton Du)라는 지역에 와이너리와 카페가 같이 있다고 하여 일단의 목표지를 그쪽으로 설정(Google Maps)하고 주행을 시작했다. 소도시인 팡(Fang)을 벗어나 더 북쪽으로 바이크를 몰아가니 눈으로 보이는 길보다 지도에서 보여주는 지도가 더 단순했기 때문에, 이동방향의 큰 줄기를 이루는 도로만 기억해두고 수시로 작은 샛길을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도로를 달리고 키로수를 늘리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사람들을 마주하고 만나는 여행을 하기를 원했으므로 의미 없는 황야로의 진입과 탈출을 계속 반복했지만 딱히 피곤함은 없었다.


이번 길에서 사람을 보지 못하면 조용한 자연을 감상하고, 다음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먼저 살갑게 인사를 건네어 보고, 가옥과 마을이 있으면 오토바이를 잠시 세워두고 동네를 거닐고. 여행이라는 단어보다는 유랑이라는 단어가 좀 더 어울렸을까? 바이크의 거침없는 속도전과 나의 휘적거리듯 다소 느릿한 걸음걸이가 절묘하게 결합된 템포(Tempo)였다. 편했다.


DSCF8309.JPG
DSCF8310.JPG
DSCF8314.JPG
DSCF8315.JPG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4


마음에 꼭 드는 마을을 찾아 한 시간 정도를 보냈다. 직물을 직접 짜내는 가내수공업 가구가 있어 발걸음을 멈추고 조금 구경하다가 아예 자리를 펴고 앉았다. 그늘에 바람도 선선하니 불고 좋았다. 집 안에서 쉬고 계시던 아저씨가 나오셔서 이것저것을 물어보시더니 사진을 찍어보라며 직접 자리를 잡아주신다. 아저씨의 시선에서 사진을 몇 장 찍어 아주머니께 보여드리니 부끄러우신 듯 손사래를 치시며 웃는다.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부부는 살가운 대화를 한참이나 나눴다. 간간히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큰 웃음이 났다. 미션(Mission)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듯이, 아저씨는 꽤나 비장하면서도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다시 나를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바이크를 다시 몰아 동네 어귀에서 음료수를 몇 개 사서 내가 앉았던 자리에 내 대신 내려두고 다시 길을 떠났다. 아주머니도 나도 서로 고개를 끄덕하고.


톤 두(Ton Du)라는 마을에 목적지로 찍어둔 와이너리 겸 카페에 도착했다. 태국을 여행하다 보면 외딴 지역에 이렇게 크게 와이너리 농장이나 카페 사업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나라의 일반적인 경제적 이미지와는 다르게 부자가 굉장히 많은 나라(상위 극소수에 집중)인데, 태국 재벌들의 특징은 식품과 음료를 기반으로 한 사업을 많이 한다. 농업은 태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종사하는 산업으로 부자들의 상당 수가 대형 농가를 소유하고 있다. 국경에 인접해 있지만 꽤나 적막한 마을의 분위기와 규모에 비할 때 고개를 잠시 갸우뚱하며 역시 주인장이 꽤나 부자이겠거니- 라고 생각했다.


DSCF8317.JPG
DSCF8320.JPG
DSCF8318.JPG
DSCF8323.JPG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4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들이켜고 국경을 찾아 나선다. 지루하다면 지루한 주행이 계속되건만, 여행하고 있는 구간이 구간이니만큼 차량이 많이 없어 크게 피곤하진 않았다. 국경으로 가는 길은 지도에 나타나는 여느 정보가 없는 국경선과 마찬가지로 어느 선에서부터 도로가 끊기고 산길(흙길)이 나왔다. 조금 진입해보다가 바닥이 자꾸 물러지는 게 느껴져서 난처해지기 전에 바이크를 돌려 다시 아스팔트 도로로 돌아 나왔다.


DSCF8324.JPG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4


치앙라이까지는 거리가 상당히 많이 남았기 때문에 한눈을 팔지 않고 곧장 주행해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도로 자체는 급경사나 커브가 많지 않아서 고속주행을 하기 좋았는데, 다만 도로의 사정(事情)이라는 것이 군데군데 파여있거나 흠이 많아서 라이딩(Riding)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추천하기는 힘들다. (Road 1089)


바른 예는 아니지만 주행감이 워낙 좋고 날씨와 모든 여건에 큰 무리가 없었으므로 도시 인근에 도착하기 전까지 잠시 헬멧을 탈착하고 달려봤다. 바람이 나를 어루만지는 이 느낌은 언제라도 좋다. 이따금씩 한적한 도로변을 걸어서 이동하는 현지인들을 보면서 낯선 땅 위에서의 이질감을 느끼고, 또다시 빠르게 지나는 풍경 속에 그들을 함께 지우며 그렇게 계속해서 달려 나갔다.


DSCF8326.JPG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4


태국을 남북으로 크게 가로지르는 1번 도로에 이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북부 산간(山間) 지방의 여행을 어느 정도 마치고 다시 치앙마이에 준하는 도시로의 첫 복귀다. 치앙라이로 곧장 들어가기 직전에 주행의 피로도 좀 풀고 위성 도시도 살필 겸 해서 매 파(Mae Fah)에 잠시 들렀다.


DSCF8340.JPG
DSCF8343.JPG
DSCF8348.JPG
DSCF8350.JPG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4


마침 장이 섰다. 우리네 재래시장도 그렇지만, 태국에서는 시장에서만 풍기는 독특한 정취가 있다. 뜨거운 오후를 피해 해가 떨어지기 시작할 때 즈음이면 장터에 샵들이 하나둘씩 들어온다. 학생들의 하굣길과 직장인들의 퇴근길, 발달한 외식문화가 맞물려 시장은 대게 매일 차분하면서도 활기를 띤다. 현지인들의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 돋보기 같기도 하다.


DSCF8369.JPG
DSCF8361.JPG
DSCF8356.JPG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4


잠깐 쉬겠다고 섰다가 한참을 주워 먹고 가득 찬 배를 소화시키기 위해 걸었다가 또 주워 먹고를 반복했다. 결국 소화가 더 이상 잘 되지 않을 때가 돼서야 손과 지갑을 멈추고는 다시 바이크를 주차해 둔 곳으로 갔다. 도로변에 주차해 둔 바이크는 물론 뒷좌석에 묶인 채로 내버려 둔 배낭까지 그대로 있다. 태국과 사람들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돌아와서 보니 아무래도 운이 좋았다- 라고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나는 태국에서 안전불감증이 조금 있다.


다시 시동을 걸고 로시(난테)를 몬 지 채 100미터가 되지 않아 이상함을 감지한다. 직선도로를 따라 앞으로만 가는데도 주행에 이질감이 들었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점검해본다. 뒤쪽(Rear) 타이어가 잔뜩 가라앉았다. 이런. 타이어 펑크를 처음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짐이 많아서 어떻게 끌고 이동해야 할지 매우 곤란해졌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터졌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난 몇 시간 세차게 달려온 것을 생각하니 등줄기에 식은땀이 났다. 어쨌거나 다행이다. 여기는 도시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지-


히치하이킹을 하듯이 엄지를 하늘로 들어 올려 도로변에 서있은지 채 오분이 되지 않아, 자전거로 길을 지나던 아저씨가 나를 보고 섰다. 사정을 알리니 잠시 통화를 하고서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셨다. 최대한 바이크 앞쪽으로 무게를 기울여 조심스럽게 자전거를 따라갔다. 지척에 작은 정비소가 있었다. 역시나 운이 정말 좋았다.


친절한 아저씨는 내 대신 샵 주인장에게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렇게 로시는 오늘만 두 번이나 정비소에 들어와다.


DSCF8375.JPG
DSCF8379.JPG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4


사장님 내외가 운영하시는 듯, 가게 안에서 사모님이 나오셔서 사장님이 작업하는 내내 오토바이를 잡고 들었다 기울였다 하신다. 몇 마디 말이 오가지는 않았지만 대단한 팀웍이었다. 풀어놓은 나사를 다시 조일 때 즈음엔 사모님이 발로 밀어둔 볼트와 나사들이 어느새 사장님의 눈 앞에 있었다. 오후에 산골에서 만난 어르신들하고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여행자는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이제 진짜 치앙라이(Chiang Rai)로의 입성이다. 타이어를 교체하면서 앞축까지 점검했더니 오토바이가 한결 더 가벼워진 것 같다. 숙소는 아무래도 주차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기 때문에 시내 중심부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곳으로 정했다. 그래도 차가 있기 때문에 다시 어디든 나오기에도 사실 어려움은 없었다. 미끄러지듯이 나아가는 로시를 몰고 곧장 숙소로 이동했다.


DSCF8382.JPG
DSCF8384.JPG
DSCF8386.JPG
DSCF8388.JPG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4


16인실을 가지고 호기롭게 오픈한 새 호스텔에 홀로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니 주인에게 왠지 모를 미안함이 들었다. 에어컨을 틀기를 잠시 망설였지만 애써 고생할 필요는 또 없다고 생각하고 텅 빈 방에 놓인 커다란 에어컨을 잠시 켜 두었다. 늦었지만 저녁을 챙겨 먹기로 하고 나이트 바자(Night Bazaar)로 나갔다.


DSCF8396.JPG
DSCF8408.JPG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4


마지막으로 치앙라이를 방문했을 때보다 전체적으로 조금 더 마켓의 규모가 커졌다. 그렇지만 시간을 고려해보면 발전의 속도는 다소 더딘 편인 것 같았다. 과거에는 치앙라이를 따로 찾아서 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독립된 관광도시의 매력을 어필했었는데, 최근에는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집중된 여행의 트렌드로 라오스 국경을 넘나들 때 잠시 들러가거나 치앙마이에서 단발성의 투어로 찾아오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역시 사람이 모여 이루어가는 것이므로 도시에도 명운이 있다고 생각하고 감상에 너무 젖지 않기로 했다. 식사를 하고 따로 시간을 보낼 것 없이 바로 숙소로 복귀했다.


DSCF8435.JPG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4


텅 빈 방안(1/16) 침대에 누워서 하루를 복기하니 다치지 않고 도시로 돌아온 것에 감사함이 들었다. 운이 좋았다. 운칠기삼이라던가. 바이크도 나도 무사히 이 여정을 마무리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도 아닌 기도를 읊조리고 잠을 청했다.


총 주행거리: 183.3KM

숙소 정보: Grace Hostel Chiang Rai (부킹닷컴)



+) 산골 마을의 사람들과 정취. 바람 같은 질주감.

-) 바이크의 응급실행 2회. 소화불량을 부르는 식탐.

=) 잘 수리된 로시난테. 도시로의 무사 귀환.


&) 오늘의 OST-

https://youtu.be/kdGW2HGOyWM

WONDERFRAME - กลั้นใจ (Breath) Feat. ฟักกลิ้ง ฮีโร่
이전 14화모터사이클 다이어리 in Thailand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