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다이어리 in Thailand #13

#Day 13. 치앙다오, 아루노타이, 도이 앙캉, 팡

by J임스

Day 13.


헤어짐이 있는 아침 치고는 무난한 감정이었다. 아마도 다시 돌아올 것을 알고, 또 오히려 그것을 더욱 기다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커다란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워 테라스로 나갔다. 도이 루앙은 오늘도 여전히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있다.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3


오래간만에 장거리 주행을 다시 해야 하기 때문에 출발 전에 기름을 가득 채워 넣기로 하고 시내로 나갔다. 숙소에서 시내로 나가는 길도 여전하다. 아마 다시 돌아오는 그 날에도 여전할 것이다. 그 기일이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혹시나 하여 치앙다오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자랑한다는 'Hoklhong' 카페를 다시 들렀다. 어제의 방문에 소득이 없었던 까닭이었다. 그간 커피에 쏟아부은 정성과 (대부분의) 돈 때문인지 커피 신(God)이 내게 기회를 줬다. 지난날 붙임성 좋은 고양이 한 마리만이 날 반기던 카페는 입구에 도달하기 전부터 나무와 초가로 지어진 공간 곳곳에서 진한 원두향을 내고 있었다.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3


주인장은 과연 공간의 명성대로 진지하면서도 익숙한 손길로 커피를 뽑아내었다. 가격도 매우 저렴했는데, 유명세를 타거나 공간에 많은 사람이 찾기 시작하면 쉽게 가격이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는 우리네 주변의 여느 가게들하고는 달라서 마음에 들었다.


특별히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퉁명스럽지는 않은 점잖은 목소리로 귀찮을 법한 이방인의 질문에 답하며 5분 여를 기다리니 근래에는 보기 드물었던 깊고 진한 색의 커피를 내게 내밀어주었다. 한 모금 먹자마자 과연- 하고 고개가 끄덕여졌고 다시 이어지는 몇 분간은 일절의 질문도 하지 않았다.


바 테이블에 앉아서 동네 주민인 듯한 중년의 남성과 함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커피 이야기로 돌아왔다. 매일 세 잔씩을 이곳에서 마신다는 아저씨께 좋은 것도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좋지 않은 것과 오래 살아봤자 별 볼 일 없다는 식의 대답을 해주신다. 대가(大家)의 가게에는 손님도 범상치가 않은가 보다.


묵묵히 잔을 씻던 주인장이 길을 떠난다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본인의 레시피로 한잔을 더 권했다. 커피값은 필요 없다고 하시면서. 첫 주문의 커피보다 확실히 더욱 진하고 강렬한 맛이 혀를 지나 순식간에 위장까지 쏟아졌다. 마치 쓴 위스키를 한 번에 털어 넣은 것처럼. 함께 주신 냉수까지 연이어 벌컥 들이키고 커피값의 4배가 되는 정도의 돈을 지불하고서, 서둘러 가게를 나왔다. 쓰린 속과는 무관하게 입이 귀에 걸렸다.


'다시 만납시다.'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3


긴 여정을 떠나는 사람 치고는 아침부터 늑장을 많이 부려 정오가 다 돼서야 출발을 하게 되었다. 오랜만이라 조금 어색하고 삐뚤게 가방을 바이크에 동여매고, 괜한 불안감에 연신 뒤를 힐끗거리다 더는 지체할 수가 없을 때쯤 서둘러 길을 떠났다.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3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채 십 분이 되지 않아 백미러 뒤로 점점이 작아지는 도이 루앙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택한 길은 뒤가 아닌 앞이었으므로 가속을 높여 쭉 뻗은 왕복 이차로를 따라서 달리기 시작했다. 지도에서 한두 시간의 거리에 가까운 국경이 있어서 해당 마을을 확인하고 계속 국경과 마주한 산맥의 줄기를 타고 달릴 예정이었다.


아루노타이(Arunothai)는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인근 도시와의 거리감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활발한 느낌의 마을이었다. 아마도 도착시간 대가 학생들의 귀가시간과 장이 서는 시간의 가장 피크(Peak) 타임이었는지 낯선 이방인을 보면서 저들마다 웃음으로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 관심이 부담스럽다면 아마 이 깊은 곳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므로, 그저 그들의 관심을 즐기고 비록 찰나지만 서로의 그 순간을 애정으로 바꿀 수 있도록 나도 부단하게 미소로 화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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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둘러본 후, 국경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 음료 집에 잠시 맡겨둔 로시난테를 몰고 나와 지도와는 조금 상이한 도로를 따라 인기척이 없는 흙길을 따라간다. 이런 경우 대게 지도보다는 눈으로 확인하며 나아가는 편이 낫기 때문에 어느 선에서부터 자꾸만 오작동을 하는 휴대폰의 내비게이션을 꺼두고 나아갔다.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3


인적도 인가도 없는 길을 10분 정도 조심스럽게 따라가니 길게 가로 놓인 바리케이드(Barricade)와 소총으로 무장을 한 군인이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는 어귀를 지키고 서있다. 말을 붙이기가 조금 어려운 표정이었기 때문에 아주 세심한 속도로 멈춰 세운 바이크 위에서 역시 아주 느릿한 동작으로 양손을 앞으로 X 표시를 하니, 군인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짧게 눈인사로 이 곳까지 멀리 들어와 버린 것에 대한 사과를 하고 다시 조심스럽게 로시(난테)를 180도 돌려 마을 방향으로 벗어났다.


시간을 계산하니 서둘러 다음의 목적지로 이동하는 것이 필요했다. 초행인 길, 그것도 꽤나 고립되어 GPS가 자꾸만 이탈하는 산악의 정상부에서 해가 떨어지는 상황을 맞지 않기 위해서, 바이크는 운전자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구불함이 이어지는 산길을 질주했다.


금일의 방향과 목적은 태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인 도이 파 홈 폭(Doi Pha Hom Pok)의 정상 등정을 위한 캠프 그라운드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미 여행의 초반에 태국에서의 최정상인 도이 인타논(링크 참고)을 지나서 왔기 때문에 이왕이면 첫 번째와 두 번째를 모두 가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것이 단순한 목표였다. 사실 바로 떠나온 치앙 다오의 도이 루앙이 세 번째의 높이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름 최고의 3봉을 모두 경험한다는 나름의 의의도 붙여볼 수 있었다.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3


다만 도이 인타논과는 다르게 산악 지형의 전체적인 규모가 훨씬 크고 태국 북부의 상당한 외곽 지역에 속하고 있어서 도로 정비라던지 시설적인 문제가 매우 열악했다. 조금만 달리면 커브가 불규칙하게 이어지고 또 바닥이 깨지거나 크게 파인 곳이 많았다. 이륜차인 오토바이는 도로의 노면이 고르지 못할 경우, 주행에 큰 위험성이 따른다. 특히나 고속주행을 지속할 때는 자칫 바이크 전체가 운전자와 함께 튕겨져 날아간다.


이런 외곽까지는 정비를 하러 나오는 일은 비단 수고뿐만 아니라, 비용의 효율성 문제일 수 있을 것이라고 이해심을 한껏 발휘하면서도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욕지기를 참기 위해서 애썼다. 중학교부터 어른들과 순찰차의 눈을 피해 바이크를 몰던 짬밥(?)이 여기에서 십분 발휘되었다.


다른 것이 딱 하나 있었다면 그 시절에는 그 실력으로 스스로를 자위하기 바빴는데, 지금은 그 실력으로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으니 인생의 경험은 지나고 보면 다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굳이 이런 곳에서)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3


스릴 넘치는 상황도 반복이 되면 사람의 뇌와 인식이라는 것이 지루함과 다투게 된다. 출발부터 약 5시간에 가까이 굽이굽이 산길을 질러오다 보니 피로한 몸과 더불어 마음이 자꾸만 가벼워졌다. 내리막을 달릴 때면 브레이크를 얼마나 안 잡을 수 있는지 스스로 멍청한 내기를 하고, 오르막을 만날 때면 아무도 듣지 않는 고주파의 괴성을 지르며 몸을 뒤로 뉘었다.


마침 그때였다. 끼욧- 하는 괴성은 드디어 그 본연의 목적을 찾은 듯, 안개가 자욱한 고갯길을 펴져나갔다. 2천 미터에 가까운 고지대에 놓인 구름 속을 지날 때에는 젖은 노면을 각별히 주의해야만 한다. 경험이 주는 긴장감을 잃고 감각이 주는 쾌락에 몸을 기댄 나는 순식간에 바이크와 함께 한쪽으로 미끄러졌다.


순간 아찔한 생각이 나를 스쳤지만, 불행 중 다행히도 젖은 노면의 상태는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거대한 쇳덩이와 주인의 무게까지 함께 매끄럽게 넘어뜨렸다. 넘어질 때 손을 뗀 덕분에 오토바이는 나와 함께 따로 뒹굴었고 둘 다 아주 깔끔하게 자빠져서 본래의 모습을 크게 잃어버리지는 않을 수 있었다.


쾌락의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순식간에 복귀한 나는 로시보다 먼저 일어나 힘겹게 녀석을 세우고 갓길에 바이크를 정차시켰다. 모든 마디가 욱신거리는 내 몸은 짧게 살피고 진흙으로 범벅이 된 바이크를 한참 살폈다. 축축한 공기가 가득한 지대의 길 외곽으로 바이크가 빠져버려서인지 한쪽 면 전체가 흙투성이가 된 것 치고는 외관이 깨지거나 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어? 다만 왼편의 사이드 미러가 깔끔하게 사라졌다.


연료가 어떻게 새어나갔을지도 모르고 사고의 부담감을 떨쳐내기 위해서 한 30분쯤을 쉬었다. 가지고 있는 식수를 이용해서 급하게 세차를 한다. 불쌍한 로시난테. 아프냐? 나도 아프다. (지갑도 아플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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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하고 다가오는 어둠을 피해서 빨리 마음을 정해야만 했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사소한 사고일 수 있었으나, 불안감이 한번 다녀간 자리는 그 공백이 꽤나 컸던 듯하다. 30분 간 인기척 한 번이 없던 도로에 서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원래의 계획을 수정해서 지척에 있는 도이 파 홈 폭 국립공원의 뷰 포인트에 들러 경치를 구경하고 가장 인근에 위치한 마을로 하산하기로 마음을 정한다. 지도를 보니 팡(Pang)이라는 마을이 가깝다.


젖은 노면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다시 로시를 몰았다. 마치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녀석은 평소와 전혀 다름이 없는 소음과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다행이었다. 사고 지점과 멀지 않은 거리에서 산 정상에 위치한 뷰 포인트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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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주 넓은 시야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산 정상에 올라 지평선을 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시야의 양 끝단의 미세한 굴곡이 이 지구를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지구는 둥글다. 이 커다란 구체에 이렇게나 아름다운 자연과 바람, 사람들과 모든 생명들이 어우러져 있다. 조화롭게 사는 일은 자연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누구나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그대로 아름답다.


팡(Pang)으로 내려오는 길도 쉽지는 않았다. 정상에서 팡으로 향하는 도로가 통제되어 마을로 가려면 결국 산맥을 따라 3시간여를 더 돌아가야만 했다. 이미 대여섯 시간에 가까운 주행을 계속해왔기 때문에 우회로를 타고 돌아갈 체력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어둠이 코 앞이었기 때문에 더욱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길목을 지키고 있는 군인에게 손짓과 발짓을 모두 활용해 사정을 설명하고 간절한 표정을 지어 보이니, 그가 잠시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짓다가 바리케이드를 살짝 치워주며 급하게 손짓을 한다. 고맙다는 눈인사를 하고 쏜살같이 통제로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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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2시간 반 이상이나 단축하여 마을로 내려왔다. 예정에 없던 곳이었기 때문에 내려오자마자 바이크를 잠시 세우고 휴대폰으로 숙소를 검색했다. 오늘만큼은 가성비보다는 좋은 휴식이 필요할 것 같아서 시설과 상태가 가장 훌륭해 보이는 숙소를 찾아 예약을 마치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3


숙소는 마음의 평온을 주기에 충분한 사이즈와 청결도가 있었다. 던지듯이 짐을 내려두고 마을의 중심가를 찾아 저녁식사를 했다. 어둠에 잠긴 산세가 멀리 희미하게 보였다. 여행의 일정과 방향을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아쉽지만 미결된 과제들은 또 다음의 기회로. 텅 빈 숙소의 커다란 침대에 누웠다. 넓은 천장의 회벽(灰壁)이 다소 쓸쓸함을 줬다. 그리고는 언제인지도 모르게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총 주행거리: 156.3KM

숙소 정보: Ton Fang Hotel (아고다)



+) 베스트 커피 in 치앙다오. 여행객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곳으로의 여행.

-) 오토바이 슬립(Slip) 사고. 사이드 미러의 파손.

=) 사람이 다치지 않아서 가장 다행이라고 생각함. 항상 자만하지 말라.


&) 오늘의 OST-

https://youtu.be/m-M1AtrxztU

Clean Bandit - Rather Be ft. Jess Gly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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