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다이어리 in Thailand #12

#Day 12. 치앙다오

by J임스

Day 12.


여전히 혼자인 숙소에서, 내 몸의 세 배 정도는 됨직한 커다란 침대를 만끽하며 늦게까지 뒹굴다가 일어났다. 마음씨 좋은 주인의 배려에 손님은 (주거) 공간의 중요성과 면적 대비 마음의 여유도 함께 넓어지는 단순한 부동산적(?) 논리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기지개를 켜러 나왔다가 방 바로 앞 2층 베란다에 가지런히 놓인 아침상을 보고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숙소를 관리하시는 어머님께서도 오늘은 일정이 있으신지 아침부터 자리를 비우셨다. 미풍과 눈 앞으로 선명하게 보이는 도이 루앙의 모습이 이제는 꽤나 익숙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녀의 모습에도 크게 놀라지 않고 지긋이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2


요가를 하기 위해 요가매트를 꺼냈다. 나이롱 요가수련생은 행여 본인의 수련이 남에게 우스꽝스러운 모습일지도 모를까 봐 사람들이 없는 공간과 틈을 선호한다. 최고의 요가쌤을 가까운 지인으로 두고서도 꼭 이렇게 본인 마음대로 몸을 꼬고 비튼다. 간만의 수련에 근육과 마디가 비명을 지른다. 기억에 오류가 있었는지 몇 번이나 다음 자세로 잘 넘어가지지 않았지만, 그것도 나름 운명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2


반 시간여가 지나니 선선한 바람에도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혔다. 자세를 고쳐 잡고 앉아서 사소한 감각에까지 집중을 해본다. 바람이 행여나 노래를 전하지는 않을까, 멀리서 도이 루앙이 혹시 말을 걸진 않을까, 나무로 된 베란다 위를 지나는 개미들이 장난을 걸어오지는 않을까- 하며. (물론 그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자연을 벗 삼는 일은 환경적 요인이 매우 중요하지만 마음이 가장 큰 열쇠라고도 생각한다. 물론 빌딩들의 숲에서 지금과 같은 잎새의 향기, 맑은 바람,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고 느낄 수 있을 리가 만무하지만 그 또한 밖이 아니라 마음속에 숲을 두고 그 공원에 자주 찾아가려는 노력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이완시키고 완화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명상이란 게 꼭 마음을 모두 비우려고 할 필요는 없다. 마음의 힘을 기르면 우리는 필요한 것이 있을 때, 그것을 마음으로 그릴 수 있는 상태에도 도달할 수 있다. (어쩌면 그 어떤 것은 실제로 일어날지도 모른다)


샤워를 마치고 나니 시간이 금방 오후가 되었다. 어제 찾았던 국숫집을 똑같은 길로 오토바이를 몰아 똑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아주머니가 알아보시고는 환하게 웃어주셨다. 이 맛에 새로운 맛을 찾기보다는 익숙함을 나누러 오는 취향일 테다.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2


치앙다오에서 머무는 시간이 너무 평온하고 마음에 들지만, 되려 이 익숙함에 취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오일(Oil: 숙소 주인)이 무료로 업그레이드해 준 방에서 계속 머물기도 미안하고 또 이번 여행은 최소한의 동선을 정했으므로, 오늘을 마지막으로 다시 길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치앙다오에는 후에 별도로 여유를 두고 찾아올 것을 기약하며. 마음이 정해지자마자 바로 오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내일 방 뺀다?"

"어? 왜? 더 있어도 되는데?"

"미안하잖아. 나는 여행자이기도 하고."

"더 머물고 싶으면 며칠 더 머물다가 가도 돼. 나도 주말에 다시 올라갈 테니까."


"우리는 다시 방콕에서 보자. 그때는 내가 한 잔 살게!"


호스트-방문객의 관계로 고작 하루 정도를 같이 보냈을 뿐이지만, 나이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무엇보다 몇 번의 대화 속에서 서로의 생각과 태도에서 공통점을 느꼈기 때문인지 그녀와 부쩍 가까운 사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물론 착각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알 수 있으리라.


남은 하루를 알차게 쓰라는 듯이 하늘이 청명하면서도 날은 그리 덥지 않았다. 다음번을 대비해서 치앙다오의 구석구석 지리를 좀 더 파악해둘 요량으로 로시난테를 끌고 밖으로 나섰다. 녀석도 이 곳이 마음에 드는지 엔진 소리가 더할 나위 없이 맑았다.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2


오일에게서 소개받은 카페가 하나 있어서 들렀는데 안타깝게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휴일인가 보다. 태국 북부의 커피(원두) 산지가 몇 곳이 있는데, 그중 떠오르는 한 곳이 이 곳 치앙다오다. 치앙다오의 원두를 맛보고 싶었는데 며칠간 너무 게으름을 피웠나 보다. 조금 일찍 들를 걸, 하는 아쉬움을 대신해 혼자 텅 빈 카페를 어슬렁대는 고양이 녀석과 조금 놀아주고서는 자리를 떠났다.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2


동네 골목을 들어갔다 나오기를 수십 번, 도이 루앙이 가장 근사하게 보이는 한 곳을 정해서 바이크를 세워두고 한 시간 가량을 머물렀다. 구닥다리 아이폰으로 타임랩스도 좀 찍어보고, 어떻게든 아름다움을 담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만큼의 감동은 없었다. 날이 저물 시간이 다가오자 구름은 남은 해를 더 즐기고 싶었는지 더욱 세차게 산세 주변을 휘감아 요동쳤다. 덕분에 여행자는 예정에 없던 근사한 구경을 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2

마을 사람들 동선이 한쪽 방향으로 쏠리는 듯해서 쫓아보니 동네에 장이 섰다. 간단히 요기도 할 겸 해서 시장 구경을 하고 입맛에 맞는 주전부리를 몇 개 사다가 근처 바닥에 그냥 앉았다. 흥정하는 상인들과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먹는 이른 저녁식사는 그 자체로 별미가 되었다. 바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 잔반과 쓰레기를 처리하고 다시 바이크의 시동을 걸었다. 이제 집으로 가자.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2


석양의 속도에 맞춰 일부러 느릿하게 로시(난테)를 몰았다. 덕분에 발 몇 번 땅에 놓을 필요 없이 잔잔하게 숙소로 돌아왔다. 유달리 붉어진 하늘이 마지막 날까지 치앙다오의 매력을 아낌없이 털어내는 듯했다. 해는 꼭 그동안 가장 집착했던 도이 루앙의 뒤로 돌아가 숨었다. 참을 수 없이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2


풍문(?)을 듣고 여행지를 고르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반해 이번 여행과 방향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하기사 나만이 특별함을 느끼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여행부심을 내려놓을 때도 되었건만 괜한 청개구리 마음으로 사람들이 좋다 좋다고 하는 곳은 거부감부터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치앙다오를 와서 보니 남의 말이라고 안 듣고 무시했다가는 나만 손해겠구나- 하는 평범한 진리를 겸허히 배우고 간다. 정말 좋았다. 모든 것이.


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2


하도 접었다가 폈다 해서 이제는 꽤나 너덜 해진 치앙다오의 지도를 펼치고는 마을의 모든 것과 추억들을 하나씩 곱씹어 꿰매어 보았다. 특별히 놓친 것은 없었지만 어딘가 모를 아쉬움은 어둠이 짙어질수록 함께 진해져만 갔다.


총 주행거리: 29.7KM

숙소 정보: Ashi Bamboo House 1 (아고다 Homes)



+) 도이 루앙. 치앙다오. 도이 루앙.

-) 치앙다오 베스트라는 Hoklhong 커피를 이대로 놓치고 가야 하는지.

=) 치앙다오의 마지막 날에 걸맞은 잔잔한 하루. 아쉬움과 추억을 함께 정리하고.


&) 오늘의 OST-

https://youtu.be/97o-faJAYto

Blink-182 - Califor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