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다이어리 in Thailand #11

#Day 11. 치앙다오

by J임스

Day 11.


아침부터 숙소가 꽤나 분주했다. 여행자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하나둘씩 체크아웃(Check-Out)을 하고 숙소를 떠났다. 잠이 간신히 깨어 여전히 부스스한 몰골로 본관의 베란다(Veranda)에 올라가 짧게나마 인사를 나눈 사람들에게 아쉬운 인사를 건네며 그들의 퇴장을 지켜보았다. 즐겁게,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하게 여행들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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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두 분이 모두 자연스러운 히피(Hippie) 같은 한 네덜란드 가정을 마지막으로, 평일에는 방콕에서 일을 하는 오일(주인장) 대신 숙소의 운영을 맡아주는 어머니와 나만이 이 아름다운 게스트하우스에 남게 되었다. 픽업트럭이 오기 전까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아버지의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그런 두 부녀를 카메라에 몇 컷 담아 숙소를 떠나기 전에 이메일을 물으니 반가워하며 선뜻 알려주었다. 행복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한 가정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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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1


순식간에 평화로운 곳에 더욱더 한적한 분위기가 들어섰다. 오일의 어머니께서는 혼자 남은 투숙객에도 귀찮은 내색 하나 없이 정갈하게 아침을 차려주셨다. 원체 수줍음이 많으신 데다가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일부러 나서서 말을 거는 일을 삼갔다. 대신 마주치거나 지날 일이 있을 때면 서로 어김없이 최대한의 미소를 보여 마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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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주변 관광지 몇 곳을 바삐 둘러봤으므로 이제 크게 찾아갈만한 곳은 남아있지 않았다. 당장 남은 것이라면 마감을 정해두지 않은 시간과 볕이 가득한 하루, 그리고 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나무 데크(Deck)에서의 쉼이랄까.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1초가, 1분이 지나는 것이 온전하게 느껴졌고 마치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이번 여행에 나선 기분이었다.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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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시선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했다. 행복했다. 방콕으로 내려간 오일에게서 연락이 왔다. 숙소에 당분간 사람이 없을 테니, 마당의 방갈로에서 지내고 있는 나의 숙박을 본관으로 옮겨주겠다고 한다. 그것도 본관에서 가장 큰 패밀리룸에서 지내도록 말이다. 감사의 답장을 채 하기도 전에 어머니가 2층으로 올라오셔서 아마도 비슷한 내용으로 추정되는 태국어와 마임(Mime)으로 내게 설명을 하셨다.


너무도 감사하고 아름다운 호의에 사실 평소 같으면 한 두 차례는 거절해봄직한 성격이었음에도, 이 공간에서의 시간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웠고 무엇보다 패밀리룸은 2층의 베란다를 바로 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대신 연신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방갈로로 뛰어내려가 서둘러 짐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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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1


방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분위기와 채광이 너무나도 좋았다. 오일에게 다시 답장을 해, 다시 만나면 방콕에서 식사를 대접하든 꼭 은혜를 갚겠노라고 말해두었다. 그녀는 친구 사이에 그런 부담을 갖지 말고 편히 지내라고 답해주었다. 룸 업그레이드보다도 태국에 좋은 친구가 한 명 더 늘어난 것 같아서, 그게 나의 기분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켰다.


점심을 먹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가 어머니께 가장 가까운 식당을 물으니 숙소와 아주 가까운 곳에 국숫집이 하나 있다고 알려주신다. 가볍게 바이크에 올라타 바로 숙소를 나가 식당을 찾았다. 맑은 국물의 꾸이띠우(태국의 쌀국수)가 일품이다. 도시의 웬만한 국숫집보다도 빼어난 맛에 가격까지도 훨씬 저렴했기 때문에, 이후에도 치앙다오를 떠나기 전까지 가장 많이 찾은 식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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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1


크게 움직일 일이 없으니 가볍게 식사를 해도 쉽게 배가 고프거나 지칠 일이 없었다. 거기에다 간단한 이동도 바이크로 쉽게 다니니 체력적인 부담이 매우 덜 했다. 시간뿐만 아니라 에너지까지 남으니 무엇을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그간의 주행에 지쳤을 로시난테(렌탈한 바이크에 붙여준 이름)의 상태를 점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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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에 잔뜩 흙먼지가 뭍은 것과 여전히 좌로 5도 정도 축이 틀어진 것을 빼면, 타이어도 빵빵하고 엔진과 구동계 부분도 여전히 말끔했다. 이제 와서 다시 보더라도 분명히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대로만 당분간 계속 함께 달리자, 보라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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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의 안정성과 내구성을 확인하고 나니 다시금 주행(스로틀을 힘껏 당기는 일)을 하고 싶어 졌다. 주유도 할 겸 큰 도로를 찾아서 시내로 나섰다. 오전에 짧고 굵은 비가 한차례 다녀갔기 때문인지 공기는 유달리 시원하고 상쾌했다. 읽지도 못하는 표지판을 힐끗 쳐다보고는 그냥 곧바로 로시난테를 내몰았다. 길을 잃거나, 길을 모르겠으면 그저 돌아오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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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11


백미러 뒤로 멀어져 가는 도이 루앙을 보며 순식간에 진한 감상에 젖은 마음이 되었다. 무엇이 그리도 마음속을 적시고 들어오는지도 알 수는 없었지만 먹먹하면서 후련한 기분이 묘하게 밸런스(Balance)를 정할 즈음에 이르러 핸들을 돌려서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마음에 따라 길을 조금 헤매다가 잊지 못할 만큼 멋진 풍경을 만나, 조용히 바이크의 시동을 끄고서 한참 동안이나 구름에 둘러싸여 무심하게 시간을 흘리는 도이 루앙의 존재감을 감상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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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시내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노트북을 들고나가 수리점을 찾아보았다. 동네 끝자락쯤에서 만물 전파사 같은 곳이 있길래 주인을 만나 스티커가 잔뜩 붙은 내 맥북을 보여주니 난색을 보인다. 다만 인심 좋게 본인의 컴퓨터를 대신 내주고는 마음껏 쓰란다. 하릴도 없고 하니 일단 자리에 앉아서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져 방도가 없는지 찾아본다. 이때가 본인이 사서(?) 고생한 마지막 시도가 되겠다. 물론 고쳐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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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좋아하는 듯한 주인의 취향을 드러낸 컴퓨터 앞에서 한 시간 여를 끙끙거리다가 이내 주인과 사사로운 대화로 집중력을 옮겼다. 흥미와 취향이 다채로운 아저씨가 나의 자잘한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준다. 두 남자의 대화가 메카닉(Mechacnic) 쪽으로 흘러가며 그가 본인의 차량을 자랑해준다. 이역만리 시골에서 란에보(랜서 에볼루션)라고 불리는 미쓰비시의 스포츠카를 구경한다. 내가 꽤나 좋아하는 차량인 데다가 만화 '이니셜 D'에 출연하면서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차다. 팔짱을 끼고 갑자기 몸을 1.5배 정도 불리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아저씨를 보며 그의 기분을 더 띄워줄 요량으로 내 애마를 옮겨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서로의 얼굴에 소년들과 같은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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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점의 옆 집에는 아이들을 과외하는 공부방이 있어 괜히 또 기웃거려 보았다. 뭐가 재미난 일이 없나- 하고. 한창 열심히 문제를 푸는 소녀들이 호기심 반, 부끄러움 반으로 낯선 이방인을 재차 쳐다본다. 보드에 쓰인 내용을 보니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원장 선생님이 유창하지는 않지만 꽤나 편안한 영어로 나의 안부를 묻는다. 간단히 소개하고, 교실에 잠시 앉으니 교사 분께서 아이들과 회화를 해보는 것이 어떻냐고 제안하셨다. 학생들의 순진한 호기심과 순수한 열정에 응답하여 십여분 정도를 함께 대화하고 조용히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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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의 고장에 대해서는 이제 이번 여행이 끝날 때까지는 완전히 잊기로 하고, 대신 낯선 곳에서의 낯선 행복에 좀 더 익숙해지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무겁게(휴대폰, 카메라, 노트북 All Set.) 길을 나선 것도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가장 가벼워야 할 여행에 가장 무거운 짐들을 모두 짊어지고 나왔으니, 아무래도 하늘이 다시 바른 방향을 조정해주는 일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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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밝음과 어둠이 묘한 경계에 아슬하게 들어왔다. 그런 풍경 아래에 숙소로 바이크를 몰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좀 더 확실해진 기분이 들었다.


총 주행거리: 41.6KM

숙소 정보: Ashi Bamboo House 1 (아고다 Homes)



+) 최고의 숙소, 그리고 최고의 룸으로. 로시난테 중간 점검 필.

-) 아이들에게 구사한 (외국인) 아재 개그.

=) 스스로의 여행에 대해서도 중간 점검이 자연스레 이루어진 듯.


&) 오늘의 OST-

https://youtu.be/Q8sxuBLurgE

Sublime - Caress Me Down (Live At The Palace/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