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치앙마이, 도이 인타논 국립공원, 매챔
Day 1.
도이 인타논(태국어: ดอยอินทนนท์, 영어: Doi Inthanon)은 동남아시아 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과거에는 ‘도이 루앙’(큰 산이라는 뜻), ‘도이앙카’(까마귀 연못 꼭대기라는 뜻)라는 말로 알려져 있었다. 산 아래 근처에 수많은 까마귀들이 모여드는 연못이 있는데 그러한 유래에서 생겨난 이름이다. 도이 인타논이라는 이름은 인타위차야논 왕에 의해 하사 받은 것으로 그는 치앙마이의 마지막 왕이었다.
(출처: 위키백과)
'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가장 높은 산. 가장.'
최고를 향한 변종적 갈망은 역설적으로 일(하나)도 최고인 항목이 없기 때문에 생겨났다. 자존감과 열등감의 공생에 의한 뮤턴트(X-Men)랄까. 못하는 일이 그리 없는 편이나, 특출 나게 최고인 것도 없다. 우리 형(Jon)께서는 일찍이 이런 얕지만 너른 나의 재능에 대해 일종의 저주(Curse)라고 평하셨다. 물론 반론할 수 있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웃어넘겼을 따름이었다.
여하튼. 가장 높다고 해서 간 것은 아니다. 사실 그냥 가려는 길에 가장 높은 산이 있었을 뿐. 정상으로 향하는 동선이 나의 방향과 같았을지? 아쉽게도 내 길은 정상과는 조금 방향이 달랐다. 정상을 찍고 내 방향으로 내려가려고 보니 정상에는 군사기지(Post)가 있어 일방향으로만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었다. 조금 돌아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장' 높은 곳이 지척이라고 하니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다. 고봉에 오르고 산골 마을인 매챔에서 하루를 머물기로 한다.
출발 예정일 약 이틀 전부터 짐을 고민하고 또 꾸렸건만 최종적인 모양새는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배낭의 무게, 전생의 업보라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죄를 지은 것인지 사뭇 궁금하다. 결국 전날 새벽 2시 반에야 잠에 들어 체크아웃 시간을 딱 40분 남기고 일어났다. 부스스한 머리를 벅벅 긁으며 힘들게 뜬 실눈에는 성격대로 정돈된 방 안에 덩그러니 놓인,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은 가방이 하나 보일 뿐이었다.
부랴부랴 샤워를 하고 1분도 틀림이 없이 꼭 체크아웃 시간을 맞추었다. 입주자를 가족같이 여긴다는 수(Su)는 그녀의 말을 두 달여간 꼭 같이 지켰다. 월세자의 처지이면서도 오고 가며 꽤나 집주인을 챙겼다. 정돈이 습관인 생활에 불필요한 청소를 꼭 1주일마다 돈을 들였고, 요구르트가 3개, 도넛도 12개나 바쳤다. 우리는 무엇보다 각자의 목적이 적절하게 달성된 이후부터는 나름의 정성을 다해 관계를 쌓았다.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지 않나. 그리하여 남들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각별한 정을 나누고 집을 떠나게 되었다. 아쉽게도 자리를 비운 그녀 대신 그녀의 아들이 대신 키를 건네받았지만, 결국 다시 치앙마이로 돌아와야 하므로 큰 아쉬움은 없었다.
식사시간이 애매할 것 같아 아예 점심(아점)을 먹고 출발하기로 한다. 집 앞에도 역시 두 달여를 꾸준하게 들락거린 국숫집이 하나 있어 그리로 갔다. 항상 새로움을 갈망하여 떠나는 여행자이면서도, 익숙함의 소중함은 누구보다 잘 아는 편이다. 그런 연유로 국숫집 사장 내외와도 좋은 관계가 되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치앙마이에서 먹은 국수(Thai Noodles) 중에서 최고로 친다. 이유 없이 정성을 바치는 경우는 사실 없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당분간 치앙마이 근교를 여행할 것, 산 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이라고 하니 조심하라고 재차 이른다. 웃으며 돌아오면 다시 보자, 다시 안 돌아오면 사고(Accident)가 난 것이다- 라고 하니 두 부부가 함께 애정 어린 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친다. 사고가 나도 큰 병원이 여기 있으므로 돌아올 것이다. 하하..
좀 더 편안한 주행을 위해서 휴대폰 거치대를 샀다. 저 가방을 메고 오토바이를 타면 마치 벽돌공이 된 듯한 기분이기 때문에, 주행 중 멈춰 서서 길을 재차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편의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390밧의 가치를 20배 이상 소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항동(Hang Dong)이라는 지역으로 일단 내려가서 도이 인타논 국립공원으로 진입하는 루트다. 항동까지의 도로는 일전에 몇 번 타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무난한 출발이 되었다. 다만 가방이 딱 스타트를 끊은 지 3분 후부터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는데, 가방의 사이드(Side)에 찔러 넣은 요가매트가 바람의 저항을 받아서 자꾸만 중심이 흔들렸다. 30분도 채 되지 않아 '모토사이클 다이어리'에 대한 나의 마음도 끊임없이 펄럭이며 흔들렸다.
나름의 정신력과 고집, 무모함을 잘 버무리며 1시간 반 정도를 달리고 나니 길이 조금 수월해졌다. 차들의 속도가 조금 줄었고 통행량에도 훨씬 여유가 생겼다. 지도에서는 이미 꽤나 도시를 벗어나 있었다. 나도, 이 불쌍한 오토바이 녀석도 잠시 쉬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라고 생각하던 차에 꼭 알맞은 카페가 하나 등장했다. 잠시 휴식.
요가매트를 가방에서 빼서 아예 오토바이 앞에 두고 타기로 한다. 훨씬 낫다. 이제 좀 평화로운 주행으로 접어드나 기대를 함도 잠시, 멀지 않은 곳에서 먹구름이 보였다. 태국은 현재 우기로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온다. 그리고 한번 오기 시작하면 얼마나 많은 양이 올진 알 수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비가 세차게 오기 전에 비를 피하는 것이 최상책.
여지없이 내린 비를 피해 커피를 마신 지 10여 분만에 새로운 커피숍에 앉아 다시 30분을 강제 휴식 후 출발했다. 얼마 달리지 않아 반가운 표지판이 나온다. 도이 인타논 국립공원의 방향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리던 메인 도로에서 우회전을 한 번 받으니,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사인(Sign)이 눈 앞에 다가왔다.
길은 대체로 산을 거의 중앙으로 가로지르는 여유로운 산길이었다. 첫날의 도로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이번 여행을 위해 렌탈 계약을 연장하며 바꿔온 오토바이를 길들이기에도 적당한 난이도였다. 입구로부터 약 40분가량은 치앙마이 인근의 도이 수텝 국립공원보다 더 완만한 커브길이었다고 생각이 된다. 비록 배낭의 어깨끈이 자꾸만 날개쭉지를 파고들었지만, 기분 좋은 마음으로 주행을 계속하였다.
완만한 커브길을 따라 이리저리 핸들을 돌리다 보니, 작은 마을이 하나둘씩 보였다. 커피나무를 재배하는 곳이 꽤 많았다. 치앙마이에서도 몇몇 카페가 이 곳의 원두(Beans)를 가져다가 쓰는 것 같다. 워낙 관광객이 증가하는 추세이고 또 그 많은 관광객들의 커피 소비량이 대단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점점 더 태국에서의 커피 재배가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참고로 태국 북방의 커피는 대체로 밸런스가 무난한 것이 특징이다. 불호가 크게 없고, 다른 원두와 블렌딩 하기가 용이하다.
산 중턱 즈음에 이르니 작은 장(Market)이 하나 섰다. 차림새를 보니 이 부근에도 고산족이 있는 것 같다. 별다른 특산품은 없었고 대체로 인근 마을을 위한 식료품과 의류, 간혹 도이 인타논을 찾는 관광객을 상대하는 곳인 듯하다. 한 상인이 내게 곤니치와- 라고 말을 건다. 그냥 빙그레 하고 웃어주었다. 중국인으로 보지 않은 게 어디냐- 하며.
마켓 너머로는 길이 급격히 가파르게 올라간다. 사람들의 거주지도 이 곳을 기점으로 점차 사라져서 이내 희뿌연 안개(가 아니라 사실 구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대략 1,800미터 이상 지점이지 않을까 싶다. 2,000미터 지점 이후로는 시야가 사실상 매우 가려지게 되고, 엄청난 양의 수증기 속으로 들어가게 되므로 금세 한기가 왔다.
굉음을 내며 수도 없이 폭발하는 실린더조차 차갑게 식힐 것만 같은 싸늘한 공기가 한참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불안하고 지친 마음에 억지로 기합을 수차례 질르고 나니, 이윽고 마지막 커브가 나타났다. 정상에 왔다. 도이 인타논, 태국에서 가장 높은 곳, 이천오백육십오- 라는 숫자는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이 곳의 고도를 의미한다는 것으로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성취감은 손쉽게 한기를 물리쳤다. 주위를 돌아봤지만 날씨 때문인지 혹은 시간의 문제인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사실 마지막 검문소에서 어렴풋이 현재 시각과 근접한 시간(아마도 Closing Time)을 봤음에도 애써 외면하고 고독한 길을 달려왔을 뿐이다. 사실이야 어쨌든 당장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 괜한 자부심을 더욱 북돋아주었다. 정상의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홀로 두고 뿌연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정상에는 인타논 왕의 추모비와 기도를 위한 작은 석탑,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은 것이 분명한 정글이 안개구름 속에 신비롭게 자리하고 있었다.
역시나 잘 알지는 못하지만 쉽게 접할 수 없는 장소와 광경이었으므로 괜히 성스러운 마음이 되었다. 사실 몇 번이나 내려갔다가 아쉬움에 다시 계단을 오르길 반복하며, 최종적으로는 거의 한 시간 가량을 정상에 머무르게 되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 어서 움직여야겠지.
주차장에 돌아오니 덩그러니 남겨진 오토바이가 다시 반가웠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정상은 외방향(One Way)이었기 때문에 다시 왔던 길을 돌아서 내려가야 한다. 낮은 온도 때문인지 내비게이션 역을 수행하고 있는 휴대폰의 배터리가 거의 방전되었다. 금일의 목적지까지 가려면 아직 익숙지 않은 길과 방향을 달려야만 하는데 꽤나 난감한 일이었다. 서둘러 휴대폰을 절전모드로 바꾸고 잠시 구글 지도를 꺼두었다.
안달 내던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인지, 오르는 길에 체력이 고갈되었는지, 몸상태가 조금 불안했다. 나와 오토바이 모두의 컨디션을 두루 살피며 조심스레 가파른 내리막을 탔다. 구름 속에 한참이나 젖어버린 도로는 손아귀의 힘을 많이 요구했다. 구름에 가려 한참 동안이나 해가 보이지 않았으므로 날이 금세 어두워질까 불안한 마음으로 조금씩 더 서두르게 되었다.
마지막 검문소 지점에서 곧장 내려가지 않고 우회전으로 새로운 산길에 접어드니, 오늘의 목적지인 매챔까지 수십 킬로를 열심히 또 달릴 일만 남았다. 중간에 보이는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계속 스로틀(Throttle)을 돌렸다. 어깨가 정말 너무나 빠질 듯해서 짱구를 굴려 배낭을 오토바이의 수납장에 억지로 동여매었다. 배낭은 이미 거의 수명을 다했다고 생각했으므로 있는 힘껏 싸맸다. 어깨가 자유를 찾았을 뿐만 아니라, 모토사이클 다이어리의 뽐새(모양새)도 훨씬 더 그럴싸하게 변했다. 마음에 든다. 앞으로도 이렇게 다니면 될 것 같다.
한 시간여를 더 달렸을까, 작은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매챔에 도착했다. 휴대폰의 배터리가 딱 4% 남았는데 용케 숙소에 도착하기까지 버텨주었다. 당연히 아고다(태국에서는 아고다를 추천하고 싶다)에서 지도에서 인근 숙소를 검색, 정렬은 최저 가격순으로- 찾은 숙소다. 앞으로의 계획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가능한 숙소비를 중심으로 예산을 절약하기로 한다.
그렇지만 첫날부터 가격과는 별개로 매우 근사한 곳으로 하루가 귀결되었다. 숙소의 가격뿐만 아니라 분위기가 환상적이었는데, 아마도 나와 같은 바이크 여행자들이 주로 하룻밤을 묵어가는 숙소인 것 같았다. 주인장은 오토바이에 배낭을 매달고 나타나는 여행자가 익숙한 듯이 별말 없이 편안한 미소로 체크인을 도와주었다.
숙소에서는 텍사스 출신의 루크와 역시 남부 독일에서 온 필릭스를 만났다. 줄곧 담배를 피워대는 녀석들 사이에 껴서 잠시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는, 하루밖에 숙소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좀 더 이 숙소를 즐기기로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도미토리 형태지만 그냥 나무로 지어진 공간 안에 매트리스 4개가 놓여있다. 창문이라는 것은 모양새는 있었지만 창이 없었으므로 자연(에 서식하는 굉장한 모기들)에 편안하게 노출되는 형태였다. 그래도 모기장이 각 침대마다 달려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많은 것을 기대하기에는 내가 지불한 것이 있으니. 좋은 주인과 무드가 있는 공간으로 오늘은 그저 대만족이다.
밤은 서서히 깊어가고 습한 공기와 조용한 풀벌레 소리에 루크와 필릭스, 그리고 주인(Owner)장 아들까지 합세한 여행자들의 조용한 대화가 더해졌다. 기대하지 않은 온수(Hot) 샤워로 고단한 몸을 녹인다. 첫날부터 꽤 강행군이라고 생각이 되었지만, 또 씻고 침대에 누워 생각하니 이내 미소가 났다.
이번에는 또 어떤 여정과 어떤 글들이, 또 어떤 배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서른이 넘어서도 여전히 마음은 같다. 길 위에서 세상을 배우고 나를 얻는다. 20대보다는 조금 더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그때도 역시나 그랬듯이 잘 하고 싶다. 길과 바람이 나를 이끄는 대로. 나의(My) 모토사이클 다이어리 in Thailand, 쾌조의 스타트!
총 주행거리: 156.5KM
숙소 정보: Kwan-Iah Home Stay (아고다)
+) 태국 최고봉(2,565M)에 오름. 배낭을 오토바이에 매다는 법 발견. 가격 대비 훌륭한 느낌(Vibe)의 숙소.
-) 생각보다 고된 일정. 고산의 한기를 대비하지 못 함. 휴대폰 배터리 관리의 위기.
=) 여하튼 출발에 성공함.
&) 오늘의 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