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다이어리 in Thailand #3

#Day 3. 매홍손, 반락타이

by J임스

Day 3.


고지에 위치한 덕분인지 천장에 달린 선풍기 하나로도 도미토리는 밤새 쾌적했다. 대자로 누운 몸에 눈만 껌벅껌벅 감았다 뜨기를 잠시 반복하며 상쾌한 기분으로 침대를 벗어났다. 아침햇살이 드리우는 이 목조 건물을 다시 살피기 위해 1층과 2층을 다시 느린 걸음으로 오갔다. 나무판자 위에 매 발걸음에 느껴지는 나의 무게감에 집중하면서.


간밤에 여행자들끼리 이야기를 나눈 자리에는 보이지 않는 흔적에도 불구하고, 개미들에게는 아침부터 진수성찬을 제공하는 듯하다. 가만히 개미들을 보고 있으니 나도 괜스레 어서 뭔가를 해야 할 것 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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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3


방 안에 들여만 놓은 짐을 조금 더 정리하여 풀고 무거운 짐의 속박에서 벗어난 로시(난테)를 몰고서 시내를 돌았다. 아직 저녁의 쌀쌀한 공기가 조금 남아있는 듯 볼과 귀를 간지렀다. 한산한 타운의 모습은 한층 더 마음에 안정감을 주었다.


'잘 왔다. 잘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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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3


오늘은 해가 구름에 가려 나를 크게 괴롭히지는 못할 것 같은 날이기 때문에, 이런 날 근교를 얼른 둘러보고 남은 일정을 쉬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 다시 핸들을 돌려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남쪽 방향으로 바이크를 달렸다.


사실 이 곳부터는 별다른 계획과 정보가 없었다. 숙소 벽에 붙은 지도를 보니 도로가 난 곳 중에 가장 가까운 국경 마을이 하나 있어 숙소 직원에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중국인 마을'이라고 했다. 왜 이 산 안쪽에 중국인 마을이 있지? 하는 궁금증과 국경 마을에 대한 로망이 어렵지 않게 오늘의 행선지를 결정했다. 이제는 익숙한 풍경일 법도 한데 초록 초록한 풍경들은 뭔가 아직까지는 같으면서 또 다른 것 같기도 하다. 낯선 길에 종종 시선을 좌우로 빼앗기며 얌전하게 바이크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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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어김없이 여기서도 고개마다 오다가 말다가를 반복했지만 짐이 없이 몸뚱이만 타고 달렸으므로 부담감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제는 꽤나 (변태적으로) 빗 속의 라이딩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한 시간 가량을 달렸을까,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발견이 또 있었다. 레드 카렌(Red Karen)족의 마을을 찾았다. 많은 여행자들이 매홍손, 빠이를 포함한 이 근방의 지역에 오면 관심을 갖는 것이 바로 카렌족인데, 다큐멘터리나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의 사진에서 기다란 목에 링을 끼고 사는 부족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편의상 카렌족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내가 알기로 이들의 정확한 구분은 카얀(Kayan) 부족이고, 이 카얀 부족은 카렌의 하위 집단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카렌족이라는 것은 카레니(Karenni) 혹은 레드 카렌 사람들을 말한다.


나 역시 소수 부족과 낯선 문화, 사람들에 대한 환상이 없다고 한다면 (완전) 순전히 뻥일 것이다. 바이크를 서둘러 세워두고서 두근대는 마음과 기대감으로 마을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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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은 미소로 자신의 이질감을 지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숙련된 여행자의 미소와 단정한 걸음, 몸가짐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예의가 느껴질 것으로 예상했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모든 것이 생소하고 신기한 이방인은 연신 고개를 돌려대며 그들의 터전을 기웃거렸다. 골목을 서너 번 정도 꺾었을까, 애써 짓고 있던 미소에 옅은 경련이 왔다. 한 골목, 한 집을 지날 때마다 나는 초대받지 않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행이 주는 생생함보다도 훨씬 더 강렬한 불편함과 미안함이 순식간에 나를 엄습했다. 발걸음이 너무 무거워 앞으로 한 발자국도 더 뗄 수가 없었다. 죄인이 된 기분으로 그대로 몸을 돌려 조심스럽게 마을을 빠져나왔다. 도망치는 중에 조차도 여행자의 이기심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골목에서 기어이 사진 한 컷을 찍고야 말았지만-


정말 참 못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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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마음으로 바이크에 올랐다. 마을을 지나는 언덕을 넘으면서 머리가 괜히 지끈거렸다. 여행자의 마음이나 혹은 여행자에 '더하기 어떤 미사여구'라는 포장지는 과연 어디까지 포장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최소한의 이런 양심이 있으니 '나 나쁜 사람은 아니야'라고 스스로를 자위하며 오르락내리락하는 산길을 달렸다.


중국인 마을로 가는 길은 어느 정도를 지나면 그저 계속되는 외길로, 방향을 찾기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생각보다 훨씬 외지고 고립된 지역으로의 길이 지속되었으므로 돌아갈 수고에 대한 생각이 몇 번이고 났다. 대나무가 울창한 지역을 지날 때 즈음엔 한기가 서렸고, 더 깊은 산속으로 걸어갈 수 있는 트레일(Trails) 길도 몇 있었다. 다만 수십 분을 둘러보아도 들어가거나 근방을 지나는 이는 없었지만.


중간에 여러 곳을 멈추고 서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의 시간이 절반 이상 훌쩍 지난 다음이었다. 마을은 입구 초입부터 중국풍의 분위기가 물씬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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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3


이 곳 중국인 마을은 반 락 타이(Ban Rak Thai)라고도 하며, 매홍손의 북쪽으로 미얀마와 바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오지에 위치하고 있다. 중국인 마을이 왜 이 산골짜기에 있는가 하면, 과거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 장군을 따르는 민족주의자들과 그 후예들이 당시 자국 내 공산당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대만으로 가지 않고 미얀마나 태국 등지로 피신한 것으로 내용이 알려져 있다. 서거하신 태국의 푸미폰 국왕께서 이 마을의 이름을 '태국을 사랑하는 마을'의 반락타이로 정했다고 한다.


마을의 중심에는 아담하지만 운치가 좋은 호수가 있고 그 주변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주변부는 평지와 산지가 고르게 있지만, 근래에 와서는 의도적으로 언덕에 더욱 중국풍의 느낌이 나는 리조트를 만들어 관광지로 성장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실제로 외지인들을 반길 법한 카페와 기념품샵이 꽤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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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3


내가 방문한 날은 날이 흐려서 그 아름다움이 조금 덜 했지만,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이 곳 마을의 건축과 분위기, 주변의 자연경관이 색상 대비와 함께 아기자기하면서도 볼만한 풍경을 선물할 것으로 생각이 된다. 마을까지 오면서 계속 길만 이어지는 통에 한참이나 식사시간을 놓쳤으므로 일단 마을을 한 바퀴 돌아 식당을 찾았다.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이번 여행을 통틀어 가장 맛있는 국수를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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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3


국수를 먹고 사장님께 국경을 물으니 그녀가 손가락으로 마을 안쪽 방향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벽에 걸린 시계를 두드렸다.


"벌써 국경은 닫혔을 시간인데."

"벌써?"

"응. 해가 떨어지기 전에 닫아."


아이고. 주린 배를 잡고 일단 국경부터 다녀올 걸 그랬나. 아쉬운 마음에 잠시 고민하고는 그래도 여기까지 온 김에, 다시 오기는 좀 힘들 것 같았으므로, 두 눈으로 직접 구경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그녀가 가리켰던 방향으로 향했다. 국경이 마을 안쪽으로, 평범한 가옥들을 지나 산으로 난 길을 따라가야 했다. 도로가 아니라 비로 엉망이 된 진흙길을 지나야만 했으므로 마을 어귀에 바이크를 세워두고 산등성이를 향해 걸었다.


사실 지도에 국경이 맞닿아 있다고 해도 모두 그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 국경 검문소가 있는 곳이어야 하고, 2) 해당 국경 지역의 국민이 아닌 외국인의 경우 넘을 수 있는 국경이 별도로 정해져 있다. 이 곳 역시 주민들을 위한 국경으로 외국인인 나는 애초에 국경을 넘을 수가 없다. 다만, 여권을 맡기면 가까운 지역까지는 둘러보고 돌아올 수 있다는 정보를 접했기 때문에 내심 기대를 하고 왔었는데 이미 국경이 닫혔으면 이조차도 소용없는 일이 된 것이다. 아쉽지만 뭐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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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3


대한민국은 3면이 바다인 데다가 위로는 북한이 있으니, 비행기(혹은 배)가 아니면 다른 나라를 갈 수가 없다. 어렸을 적에는 이 사실에 대해 큰 인식이 없었는데, 동남아시아에서 처음 육로로 국경을 제 집 드나들 듯이 넘나드는 경험을 하고 나니 이후로 국경이나 국경 마을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같으면서 다른(Same Same But Different)의 현장이라고 할까. 국경은 재밌다.


그동안 꽤나 많은 포인트의 국경을 보고 넘었는데, 오늘 본 이 국경은 그 허접(?)함이 특별했다. 초소는 있었는데 지키는 사람이 없었고, 나무로 된 게이트는 자물쇠는 걸려있었는데 잠겨있지는 않았다. 아마 낮에 친구를 만나러 건너편 나라로 놀러 간 아이가 혹시 늦게 돌아올 것을 배려함인가? 아니면 국경을 드나들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담합을 해서 뽀찌(뇌물)를 초소에 찔러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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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이 잠시 났지만 이내 이 부실한 나무떼기를 너머 또 새로운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미소가 가득한 마음이 되었다. 일탈에 거부감이 극심한 편이 아니기 때문에 저 자물쇠를 잠시 치우고 건너가 구경을 하고 올까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괜한 짓은 하지 말자- 그냥 근처 덤불을 서성이며 건너편 구름을 구경하다가 돌아섰다. (진짜다) 다만 구글 지도를 살펴보니 GPS상으로는 이미 국경을 넘었더라.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마을을 내려와 얌전히 제자리에 있는 로시를 찾았다.


해가 이미 상당히 사라져 가고 있었으므로 지체할 것이 없이 다시 매홍손으로 달렸다. 한번 눈에 익은 길이고, 외진 곳에서 자칫 고립되면 곤란했기 때문에 전력으로 로시를 몰았다. 확실히 거의 절반 가량 단축된 시간으로 매홍손에 도착했지만 그래도 밤이 상당히 깊어진 이후였다.


지친 몸을 씻고 침대에 몸을 던지듯 누우니 마치 어젯밤과 똑같은 데자뷰(Deja Vu)가 느껴졌다. 참 이거 병이라면 병인데, 여행을 하러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다. 내일은 꼭 쉬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잠에 들기 직전에 오늘 만난 레드 카렌족 사람들의 표정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무거운 마음이 되지 않으려고 애써 기분 좋은 생각을 하고 다시 잠을 청한다.


총 주행거리: 102.7KM

숙소 정보: Crossroads House (아고다)




+) 태국, 미얀마 국경 마을 중 하나인 중국인 마을을 탐방. 배낭이 없이 자유로운 주행.

-) 여행자의 지나친 관심과 호기심. 끊을 수 없는 욕망의 마음.

=) 나(우리)는 어떤 마음과 자세로 여행을 해야 하는가- 에 대한 재고찰.


&) 오늘의 OST-

https://youtu.be/aRYokc3VBC4

The Rolling Stones - Like A Rolling St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