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다이어리 in Thailand #4

#Day 4. 매홍손, 빵웅

by J임스

Day 4.


처음 매홍손 숙소에 도착한 날, 같은 방의 도미토리에는 한 명의 여성 여행자가 있었으나 서로의 흔적만을 확인했을 뿐 따로 인사를 하지는 못했다. 다음 날 아침(어제)이 되고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니 이른 아침에 길을 떠난 것이 분명했다. 어제 동네 마실을 다녀오니 숙소에 도착한 격정적인(주인과 싸우고 있었음) 여행자가 한 명 있었으니, 그는 칠레에서 온 세바스티앙(Sebastian)이다.


맵스미(Maps.Me: 오프라인 지도 어플, 배낭여행자들에게 매우 유용하며 인기가 많다)에 등록된 위치와 숙소의 위치가 달라서 엉뚱한 곳까지 갔다가 돌아오느라고 꽤 성질이 난 것 같았다. 그동안 모든 것이 잔잔해 보였던 미소의 주인장에게 꽤나 당혹스러운 표정을 안겨주며 끝끝내 시시비비를 다투다 원하던 숙소 가격의 할인에는 실패했지만, 맥주 두 병을 얻어내고서야 내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물론 나는 남의 싸움 구경이 가장 재미있는 걸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한참 동안 리셉션을 서성이다가 본의 아니게 공짜 맥주 두 병의 주인공이 되었다.


세바스티앙은 내게 엄지를 한번 치켜들고서는 짐을 풀고, 지나간 일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쿨한 성격의 남미 청년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별 쪼잔한 듯 신기한 놈도 다 있네'라고 생각을 했고-


어제저녁 중국인 마을을 다녀와서 지친 몸으로 숙소로 돌아온 때에는 도미토리에 아주 아주 커다란 가방이 하나 더 있었는데, 세바스티앙과 내 것을 거의 합친 것 같은 크기의 배낭의 주인공은 베트남에서 온 졸리(Jollie)였다. 내가 이름을 묻고는 "Angelina?"라고 했더니, 이건 또 무슨 아저씨야 하는 눈빛으로 나를 슬쩍 피하는 것 같았다. 뭐 아재가 별 수 있나,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머쓱한 표정을 지어볼 뿐이다.


각자의 첫날이 지나니 오전부터 서로 슬쩍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자유로워 보이는 여행자들도 아무리 쿨한 척을 해봐야, 이 낯선 곳에서는 다 초보다. 똑같다. 걔 중에 패기가 가장 넘치는 세바스티앙이 어제 자기가 한참을 갈궜(?)던 주인장에게 살가운 목소리로 여긴 어디가 좋으냐고 묻는다. 역시 참 신기한 놈이네.


주인장은 중국인 마을과 인근의 호수 마을을 하나 알려줬다. 졸리도 리셉션으로 나와서 귀를 쫑긋하더니, 자기는 오늘 안 그래도 그 호수를 가보려고 했단다. 세바스티앙이 말했다.


"그러면 나도 호수로 가지. James, 너도 가야지?"

"응? 나는 오늘 좀 쉬려고 했는데?"

"쉬긴 뭘 쉬어. 매일매일 으쌰 으쌰하는 거지!"

(He actually said; Resting for what? Everyday hustlling man!)


(계획의) 원작자인 졸리도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가기를 원했던 듯 딱히 서두르지는 않길래, 지도 상으로 보나 거리 상으로 보나 어제 달린 거리의 반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같이 동행하기로 했다. 까짓 거.


그렇게 오늘은 세 명의 여행자가 하나의 그룹으로 동행이 되었다. 오랜만의 여행 동지들(Buddies)이다. 나는 이미 바이크가 있고, 둘은 아직 대여한 바이크가 없었으므로 30분 후에 다시 리셉션에서 만나기로 했다. 베트남 사람인 졸리는 걸어서 나갔고, 칠레 사람인 세바스티앙은 내 바이크를 빌려서 나갔다. 참 같지만 다르군- 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30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졸리가 먼저 스티커가 붙은 아담한 오토바이를 빌려왔다. 세바스티앙은 어딘가 모르게 부품이 하나 둘 정도는 빠진 게 아닐까 싶은 허름한 오토바이를 빌려왔다. 누가 봐도 렌트비가 서로 50-100바트 정도는 차이가 날 것 같았다. 역시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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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4


내가 아무래도 현재 바이크 여행을 하고 있고 또 바이크에 휴대폰 거치대가 있는 관계로, 선두에서 길을 안내하기로 했다. 목적지의 이름은 정확하게 빵웅(Pang Ung) 호수다. 구글 지도가 안내하는 길을 슬쩍 보니 어제 달렸던 길과 거의 흡사하다. 바이크 라이더의 어떤 존심도 있고, 한 번 다녀본 길이기 때문에 나 하나를 태울 때면 그 어느 바이크보다도 날랜 로시를 독려하며 선두에서 멋지게 달렸다. (라고 생각한다)


여성 운전자인 졸리를 배려하여 세바스티앙을 후미에 두고 그녀를 가운데에서 따라오도록 했다. 잘 따라오고 있는가 백미러를 재차 살폈는데 생각해보니, 졸리는 바이크가 생활인 베트남에서 왔다. 아마도 (인생) 총 주행시간은 나보다도 훨씬 앞설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고 백미러에 비치는 그녀의 주행 역시 안정적이었다. 안심하고 스로틀(Throttle)을 당겼고 잘 닦인 도로에 바이크는 금방 시속 90km 가까이 도달했다. 초반에는 오히려 세바스티앙이 자꾸 쳐져서 몇 번이고 속도를 늦추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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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달렸던 길에서 갈림길을 타고 새로운 도로로 접어든 이후로는 조금 속도를 늦추었고, 고개를 넘을 때면 안개가 꽤 심했기 때문에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선두에서 위험을 먼저 파악해줘야 후미에서도 안심하고 달릴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지난밤과 새벽에 비(폭우)가 아주 많이 내렸는데 그 여파인지는 몰라도 몇 구간에서 나무가 크게 쓰러지고 도로의 상태가 고르지 못했다. 잘난 척하다가 괜히 바이크와 함께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으니 초반의 우쭐한 마음을 이내 내려놓고 얌전한 마음으로 로시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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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웅 호수 지역은 태국의 스위스라고도 불린다. 태국 사람들은 자국의 아름다움에 타국의 이름을 꽤나 많이 직유 하므로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동행들과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마음은 점잖은 척을 하면서도 설렘이 가득했다. 빵웅 호수는 소나무가 가득한 자연과 숲으로 둘러싸인 호수와 그 위로 드리워진 물안개가 차분하니 아름다운 곳이다. 참고로 Pang은 태국 북부 방언으로 '쉼터'를, Ung은 '젖은 땅' 혹은 '습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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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출발 십여분 전에 재빠른 검색으로 이 곳에서 지역(Local) 커피를 생산, 판매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서 새로운 지역의(Regional) 커피를 마실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것을 오늘의 유일한 목표로 삼았다. 마을 입구 초입에서 바로 그곳을 찾을 수 있었고, 마침 점심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시간이 되어 두 친구를 꼬셔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마을에서 가장 크고 이질적인 (상업적인) 곳이었으므로, 오토바이를 세워두기에도 가장 안전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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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안은 중심에 커다란 대나무들이 한데 모여 자연친화적인 느낌을 주었고, 나무판자로 만들어 둔 테라스는 아무것도 아닌 건너편 산풍경을 그저 바라만 보아도 평온하게끔 만들어 주었다. 쉬고 싶은 하루를 포기하고 이 친구들을 따라서(줄줄이 달고)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었다. 식사는 평범에 살짝 못 미치는 정도였으나 주인장이 자신하던 커피가 평균 이상이었으므로 지불한 가격만큼의 총합으로 적당히 수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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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4


운이 좋게도 오늘 만난 셋은 서로의 여행 속도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누구 하나 어서 마을이나 호수를 둘러보기를 채근하는 법이 없었다. 거의 한 시간 반이 넘도록 서로를 알아가는 수다를 계속하며 지루한 틈이 없었다. 내가 가장 큰 연장자였는데 역시나 세바스티앙은 WTF(아뭐왜), 졸리는 그래도 꼬박 챙기려고 하는 마음이 보여서 둘 다 나름의 재미를 주었다.


호수가 인접해서인지 산에서 부는 바람 때문인지 마을은 절로 미소가 날 정도로 시원했다. 우리는 딱 하나 가운데로 난 마을길을 따라 쭈욱 안쪽으로 들어갔다. 도시와는 다르게 이 곳에서의 집은 모두 대나무로 짓는다. 좌우로 띄엄띄엄 늘어선 가옥들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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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걸을 필요도 없이 호수는 바로 마을에 바로 맞닿아 있다. 비가 한참 내린 후의 산(숲) 속을 걷는 기분, 특히나 소나무가 가득한 숲을 걷는 기분은 아마 한국인이면 누구나 알 거다. 걸음마다 코가 짜부라질 정도로 한껏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반복했다. 피톤치드가 이건가? 마냥 좋았다. 습습 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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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4


숲과 호수에 들어서니 길이란 게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 자연스럽게 서로의 발걸음은 각자가 원하는 것을 찾아서 멀어졌다. 휴대폰의 신호가 수신되지 않는 지역이었으므로, 엇갈리면 한 시간 뒤에 호수의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서로 숲 속으로 탐험을 떠났다. 대체로 세바스티앙은 나무들이 신기한지 계속 나무의 주변을 서성거렸고, 졸리는 호숫가로, 나는 그저 길게 앞으로 뻗어있는 탐방로를 따라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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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걸으니 이 숲의 경비소 같은 작은 초가집이 하나 있었는데 아저씨 한 분이 무심하게 칼도 갈고, 불도 피우고 해서 한참을 옆에 앉아서 지켜봤다. 가끔은 자연풍경이 좋기도 하지만 또 가끔은 그저 사람의 곁에서 그저 사람을 바라보는 일이 좋다. 아저씨도 딱히 귀찮아하는 눈치는 아니었기 때문에 서로 묵묵하게 각자의 영역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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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지기도 했지만 그새 새로운 친구들은 어디서 무얼 하나 궁금해져서 예상보다 일찍 발걸음을 돌렸다. 신기하게도 서로가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40분이 아직 넘지 않았지만 세 사람 모두 호수 입구로 모였다. 세바스티앙이 손 모양을 만들어 희한한 새소리를 내며 장기자랑을 했다. 눈이 휘둥그레진 졸리는 재차 그를 졸라 동영상을 두 번이나 찍었다.


두 사람에게 날이 저물기 전에 마을로 돌아갈 것을 권했고 모두 수긍했다. 돌아가는 길은 다시 내가 선두를 맡았지만, 후미는 졸리가 맡았다. 여유롭게 코너를 빠져나오는 그녀를 백미러로 몇 번 확인하고 나서는 매홍손에 다시 도착할 때까지 굳이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었다. 중간에 한 번을 쉬고 진형을 유지한 채 다시 마을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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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홍손에 도착하니 아직 해가 떨어지기까지는 여유시간이 좀 남아서 같이 마을의 중심부에 있는 사찰인 도이 꽁무(Doi Kongmu)에 올라 석양을 보기로 했다. 서로 별다른 계획이 없이 만난 하루가 석양까지 완벽하게 짜인 반나절의 투어로 완성이 되었다. 셋의 운이 합쳐져서 시너지가 났는지, 때마침 절에서는 고승을 필두로 불탑을 도는 의식을 행하는 중이었다. 매홍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부드럽게 스치는 바람과 풍경소리, 불경을 외는 스님들의 진중한 목소리 등이 한데 어우러져서 현장과 순간에 금세 동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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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마무리될 때까지 나는 의식을 쫓고, 졸리는 멀리 마을을 바라보았으며, 세바스티앙은 앉아서 산바람을 즐겼다. 오늘 그 누구도 셀카를 찍지 않았는데, 그런 그 둘의 사진을 따로 찍어줄까 하다가 억지로 사진을 만들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해서 관뒀다. 마을을 보며, 나도 시원한 바람을 한층 더 선명하게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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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락에 걸린 태양은 구름에 가려 수줍은 듯 아름다운 자태를 숨기고 사라졌다. 기대하던 석양에 못 미치자 그제야 졸리가 처음으로 어리광을 부리며 아쉬운 티를 냈다. 세바스티앙이 그런 그녀를 흉내내고 놀리며 마을로 내려가자고 한다.


바이크에 키를 꼽고 시동을 걸기 직전의 찰나, 어디선가 폭발음이 들렸다.


"펑! 펑!"

"뭐야??"

"어어, 저기 불꽃놀이 한다!"


마을 위로 기대하지 않았던 불꽃이 피어오른다. 단발의 불꽃이 한 발, 두 발 계속 솟아올랐다. 셋은 순식간에 서로 익살스러운 표정을 하고서는 부리나케 다시 전망대 쪽으로 달려갔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마치 우리의 오늘 하루를 축하하는 듯한 불꽃. 카메라를 꺼내어 테스트 샷을 한 방 찍자마자 마지막 소음이 멈췄다. 다시 서로의 아쉬움 가득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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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마을 위로 갑자기 불꽃이 왜 솟았는지는 의문이지만(그 이후로는 보지 못했다) 세 여행자의 하루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마을에서 아무 곳이나 찾아 들어간 저녁 식당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맛이 있던 곳은 아니었을 것이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별관의 식당에 앉아서 세바스티앙은 공짜 맥주를 한 병, 나는 내 돈 주고 산 맥주를 두 병, 졸리는 1.5리터짜리 생수병을 들고서 하루를 정리했다. 하루의 묘사보다 열 배 스무 배는 더 복잡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한 시간 정도 나누고 하루 만에도 엄청 가까워진 여행자들끼리의 가벼운 우정을 느끼며 각자의 침대로 돌아(들어) 갔다.


모기가 꽤나 내 다리를 괴롭힌 것 같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렇게 셋이 친구가 된 하루를 뒤로 하고, 내일을 향해 우리는 간다.


총 주행거리: 99.7KM

숙소 정보: Crossroads House (아고다)



+) 새로운 여행자들을 만나 꽉 찬 하루를 보냄.

-) 식당에 나타난 벌이 무서워서 세바스티앙 뒤로 숨었다. (두 번이나)

=) 베트남과 칠레에 각각 새로운 친구들이 생김.


&) 오늘의 OST-

https://youtu.be/erG5rgNYSdk

Weezer - Island In The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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