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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임스 Sep 17. 2019

돌아가기엔 이미 먼

여행자의 삶 (Pt. Indonesia)

형제(Trip Bros)의 여행에서 불의의 부상을 당하고 원치 않은 귀국길에 올라 수개월을 칩거했다. 몸은 마음의 그릇이라, 몸이 크게 상하니 마음이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부모는 한사코 말렸지만 마음까지 상하니 악순환의 굴레로 몸의 회복이 더욱 더딘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다시금 길을 떠나야만 했다.

별의별 핑계를 다 가져다 붙이곤 ‘여행자의 삶’을 고집하는 내가 아득했다. 길을 잘못 들어서서 어느 한 지점을 지나면 뒤로 다시 돌아가나 그냥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나 매한가지인 경우가 있다. 돌아보면 나의 경우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다시 그럴싸한 변명을 붙여본다.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는 특별히 아는 것도, 끌릴 것도 없었지만 2015년 당시에 국가의 대사(大使) 자격으로 자카르타(Jakarta)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던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방향으로 우선했다. 사람이 있으니 그 이상의 이유랄 것도 없었다.

자카르타는 매우 기묘한 곳이었는데 우선 상업자본과 현지인의 생활공간이 극단적으로 분리된 느낌이 들었다. 오랜 동남아시아 생활을 통해서 부와 자본의 계층구조, 대비되는 삶의 모습에 익숙할 법도 하건만 그 정도를 한참 넘어서는 대조를 보이는 도시였다.

황무지 가운데는 마천루들이 선명하게 솟아있었고 마천루 위에서는 판자와 널빤지로 갈음한 수많은 주거가 모래먼지와 뒤엉켜 희미하게 보였다. 월세가 250만 원이 넘는 대리석 바닥의, 뻠반뚜(가정부)와 운전기사까지 딸린 집에서 먹고 자고 하니 반가운 친구 녀석과의 해후를 넘어서 부담스러운 마음이 켜켜이 쌓였다.

대리석과 원목의 가구, 따뜻한 조명으로 마감된 침실의 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배낭을 마주 보니 아무래도 여행자는 길을 떠나는 편이 옳았다. 친구는 한 주라도 더 쉬고 갈 것을 권하며 못내 아쉬운 눈치였지만 여느 때처럼 ‘다시 만날 것’이라고 다독이며 그의 외로운 타지 생활에 진심 어린 응원을 남기고 나는 다시 배낭을 어깨에 메었다.

자카르타를 시작으로 브로모 화산이 있는 이스트 자바, 이름만으로도 그럴싸했던 족자카르타를 여행했다. 부상의 여파로 아마 논리회로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었는지, 기억을 돌이켜보면 전에 없는 무모함으로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가 전부인 인니어 실력을 가지고 무작정 로컬의 버스를 타고 숱한 여행자를 피해 자꾸만 깊은 곳으로 숨어들었다.

회고하니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생각나는데 첫 번째는 동남아시아권 전반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 때문이었던 것, 그리고 두 번째는 현지에서 나랏일을 하는 친구를 둔 것에 대한 불필요한 심리적 기대감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여하튼.

덕분에 당시의 사진을 살피면서 스스로의 집중력과 시선에 새삼 놀라고 있다. ‘아, 이 때는 내가 이렇게 성장하고 있었구나’ 하면서 길 위에서 만난 사소한 인연들, 잠시간 스친 상인들과 인부들, 골목과 길 가에 아무렇지 않게 남겨진 사람들의 흔적들을 하나둘씩 곱씹게 된다.

시신경(視神經)에 부상이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흑백사진이 많고 간간히 찍은 컬러들은 색이 꽤나 틀어져있다. 그도 또 그대로, ‘내 사진의 모든 것’으로 기록되고 또 남았다고 생각한다. 사진의 비율적으로는 #worklife 시리즈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는 아마도 서른을 넘어서 ‘산다(Live)’는 일(Work)에 대해 본능적으로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고.

물론 본인의 나르시시즘(Narcissism)이겠지만 지난 사진을 보니 좋다. 특히나 이제 완연히 지금 현재의 내 사진세계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느껴지니 더욱 그렇다.

사람들은 보통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 아마 이와 같은 맥락 때문에 내 마음을 쉬이 발설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어쩌랴. 아직 말을 아직 아끼는 방법은 사진을 아끼는 방법만치 배우질 못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참 지겨울 말이지만, 참(眞)으로 대가가 되고 싶다. 그런 마음을 재차 다짐함에 있어서 2015년 인도네시아에서의 기록을 돌아봄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다.

비록 몸이 상해 마음까지도 어그러진 시기였으나, 사진이 나로 하여금 다시 바로 앉아 정진하게 만든 것이 매우 분명해 보인다.

A Traveler’s Life, Indonesia, 2015
@dalaijames

#인도네시아
#사진생각

#여행자의삶


돌아가기엔 이미 먼, 2015 @dalaij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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