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책임 그리고 반꼰대

모든 권리의 근원은 의무이다 - 마하트마 간디

by 달람씨

전제.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1장. 공동체의 책임을 생각하지 않는 개인의 자유

소위 '90년생이 온다'라는 문화에 일종의 안전불감증은 없을까 하는 우려감을 항상 가지고 있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철학과 행동이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철학과 행동이 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최근 이 같은 문화가 중심이 되는 정책을 논의하는 모임에 참가하고 있는데, 거기서도 유사한 의견과 분위기를 감지했는데.

"다양한 노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요. 제 주변에는 하루에 4시간씩만 일하면서 적당하게 살아가는 친구도 있거든요. 그리고 청년수당이 50만원씩 나오니까, 적당히 벌어서 해외여행도 다니고..."

청년수당을 받는 사람이 어떻게 돈을 쓰든 돈의 용처는 자유에 맡겨야 한다고 적극 동의한다. 하지만 그것이 생계수단이 되어서 열심히 생활하는 청년수당의 대상이 아닌 사람들이 내는 세금을 활용해서 본인은 자유와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구조는 아무리 생각해도 동의되지 않는다. 청년수당이 개인에게 지급되는 것이긴 하지만 사회적 공공자원의 할당이라는 부분이 있는 것인데..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안전불감증이다. 주변에는 이 같은 관점과 행태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공의 자산이 개인의 행복에 사용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노력의 결과에 따른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위 사례에서 청년수당에 해당되지 않는 내 주변의 많은 청년들은 열심히 일하면서도 해외여행 한 번 제대로 못가본 친구들도 많은데, 세금을 내는 사람이 여유와 자유가 부족한데 세금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여유와 자유가 넘치게 되면 그 공동체는 누가 책임감을 가지고 이끌게 되겠는가.

(*개인적으로 청년 수당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 수당의 활용이 사용자 의도와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음에 대한 우려라는 점을 명확히 밝힙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지인에게는 이런 에피소드를 듣기도 했다.

신입A: 선배님, 지금 제가 가 업무, 나 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선배님과 함께하는 프로젝트에서 라 업무와 마업무를 할 시간이 없습니다.

신입B: (조언하듯이 선임에게) 이건 회사에 말씀하셔서 자료 달라고 하셔야 될 것 같은데요?

자유가 넘처흘러 그들의 문화에서 그들이 기고만장해졌을 때의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해당 조직은 프로젝트 개념으로 흘러가고 신입이건 팀장급이건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하는 것이 일상다반사다. 게다가 아직 신입은 자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업무가 처리 되지 않는다면 업무가 과중한 것인지 아직 스스로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 것인지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다. 게다가 업무 스케줄 조정은 선배라고 불리는 직급 수준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관리하고 있다는 것도 조직내에서 알려진 것이다.(조직 밖에 있는 나도 알 정도니...) 신입B의 경우는 더하다. 일에 대해서 완벽히 파악되지도 않았고 심지어 업무 책임은 상사가 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조언을 하다니. 그들의 행동은 "나는 내 할 일만 할꺼고, 조직이나 공동체 일은 잘 모르겠고, 월급은 꼬박꼬박 잘 나오고 연봉인상도 됐으면 좋겠어"라는 파렴치한이 아닐까.


2장. 집단의 단일화에 대한 오류 가능성

집단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오류를 깨어버렸던 경험은 젊은 세대라기 보다는 나이가 있는 세대에게 처음 느꼈다. 부장님 나이를 만나서 업무를 하며 그 나이대가 어학연수와 해외 유학의 붐이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소위 사회 운동에도 접점이 있던 나로서는 386세대가 어학연수의 1세대라는 사실에 꽤나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시위하고 힘들게 지냈을 때 누군가는 다른 노력을 통해 사회에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간접 경험이 씁쓸하기도 했다.

'90년생이 온다'는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단일한 형태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믿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개인적 특수성에 따른 반감은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 있다. 소위 '이명박근혜'시기에 20대를 온전히 보냈던 세대 혹은 '82년생 김지영'으로 대표되는 세대는 젊음에 대한 배려, 도전에 대한 응원을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을 하거나 사회적 체제에 순응해서 노력하고 세금내는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배려받지 못했던 세대는 노력하며 여전히 사회적인 가치를 공유받지 못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몇 년차이 나지도 않는 세대는 배려받는게 당연하고 자신의 삶이 우선인 세대가 되었다. 공적인 자원을 근거로 혹은 사회적 분위기를 방패 삼아. '90년생이 온다'는 문화를 단일화해서 생각하는 오류에 빠질까봐 경계를 하면서도 일부분의 경험에 바탕을 둔 이해가 우려를 놓지 못하게 한다.


3장. 꼰대와 어른

신입A와 같은 상황에서 3-4년 선배가 "내가 신입때는..."이라는 말을 꺼냈다가는 꼰대 소리를 듣기에 아주 딱이다. 그리고 신입A의 요청을 들어주자면 당연히 그 선배가 더 일을 많이 해야 한다. 꼰대도 되기 싫고 일도 하기 싫으니 제대로된 커뮤니케이션이 될리가 없다. 커뮤니케이션은 회사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그의 섣부른 발언은 여기에 지대한 피해를 끼친게 틀림 없다. 개인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정책의 모임에서는 "꼰대"라는 이름으로 나이 많은 사람을 통칭해서 "까는"문화가 존재한다. 그들 개인의 어떤 경험에서 그렇게까지 연계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평화주의자(?)인 나로서는 그들의 경험에 대한 공유가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적으로, 가끔은 광기에 가깝게 "까는"문화가 달갑지는 않다. 불합리한 행태가 없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자칫 "꼰대까기"문화가 이 때까지 공동체와 사회를 위해 노력한 많은 사람들을 무시하고 개인의 자유만을 강조하는 문화가 될까봐. 혹시 이런 문화가 이분법적으로 나누기 어려운 인간을 "꼰대가 될까봐" 어른의 역할도 못하게 막지는 않을까 우려스럽기도 하다.


아직 20대는 사회 혹은 공동체를 책임지기 어렵고 이 같은 책임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90년생이 온다'는 문화에 [갇힌] 사람들은 기회가 부족해진 현실에서 책임보다는 자유를 선택하고 공동체보다는 개인을 선택하고 있는 듯하다.

"모든 권리는 의무에서 나온다 - 마하트마 간디"

개인적으로 노트북에 붙여두고 마음에 새겼던 문구다. 내가 책임을 지지 않는 것에 대해 권리를 논하는 것은 성숙한 성인으로서는 아쉬운 자세다. 조직에서 받는 월급에 맞는 책임을 질 수 있을 만큼 했을 때 권리가 생기는 것이고 공동체에서 주는 혜택에 대해 공동체적으로 생각을 했을 때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적어도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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