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조현선
야간 아르바이트를 여러 번 해봤지만 이번 일은 좀 무서웠다. 어쩌면 이번 일자리가 하필 종합병원 매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_9쪽
나희는 어색하게 웃었다.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고 창문에서 물러난 후 고개를 까딱 숙여서 인사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살짝 가르마를 타서 펌한 귀여운 헤어스타일에 길에서 지나가다가 눈이 마주친다면 상당히 설렜을 법한 외모였다. 하지만 나희는 다른 의미에서 그의 얼굴을 기억했다. 이미 일주일째 같은 시간에 똑같은 모습으로 매점 창문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_14~15쪽
어두운 하늘 아래 미용실 사장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희고 둥근 달이 떠서 그녀의 단발머리를 비추었다. 나희에게 등만 보이는 상대는 검은 정장을 입고 흰 장갑을 낀 여성이었다. 그녀는 미용실 사장에게 정중하게 한쪽 방향을 손으로 안내했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쪽입니다.” _40쪽
“주말에 가을식당 나랑 가자, 아빠. 내가 살게.”
“그래, 그러자.”
“거기 가면 엄마가 잘 먹던 반찬 가르쳐 줘. 내가 사장님한테 잘 말해서 레시피 배워 올게.”
아빠는 대답 없이 빙그레 웃었다. 아마 반찬 레시피 정도는 아빠가 모두 알 것이다. 아빠는 오래 분식집 사장님으로 살아서 음식 솜씨가 무척 좋은 사람이었다. 냉장고 속에 있는 반찬 중 엄마가 좋아하던 것이 대다수일 게 분명했다. _95쪽
삶만큼 죽음도 모두에게 고유한 것이다. 죽음의 순간이 모든 사람에게 다르듯 죽음 이후도 달랐다.
“대체로는 죽은 사람이 미련이 있거나, 반대로 산 사람이 미련을 가지고 붙잡고 있거나 뭐 그런 경우지. 미련이라는 게 원한일 때도 있고 후회일 때도 있고.” _103쪽
희진이는 여전히 바다를 보고 싶어 할까? 수영이 아는 희진이라면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건강 때문에 자유롭게 다니는 것을 꿈도 꾸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동해는 둘의 추억이 깊이 깃든 곳이었다. 만약 희진의 입장이라면 죽은 뒤에라도 가장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곳이 어디일지 수영은 그제야 확신했다. _195~196쪽
그는 기억이 뚝뚝 끊어지고 논리적인 생각도 사라져 아주 오래 검은 어둠 속에 묻히기도 했지만, 때때로 그림자를 헤어 나와 매점에 와서 정나희를 보면 머릿속이 명료해졌다. 그가 나타나는 곳은 대체로 의지와 상관없었는데도 정신을 차리면 매점 앞에 자주 와 있어서 고마웠다. 정나희는 갓 스물이라 했고 아주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녀를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기억이 사라진 이후 ‘기분이 좋다’라는 감각을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_211쪽
새벽 두 시, 할머니가 다시 나타났다. 나희는 가만히 있다가 어쩐지 억울해져서 투정부리듯이 말했다.
“할머니, 사장님이 화나신 거 같아요.”
당연히 할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할머니가 준 쪽지 때문인 거 같아요. 제가 안 보여드리고 그냥 모아만 놨거든요. 근데 그 쪽지 보고 왜 이상하다고 생각하신 건지도 모르겠어요.” _277쪽
회사 점심시간과 퇴근 후에 책을 읽었다. 회사 게시판에 추천이 올라와서 읽기 시작했는데, 시작부분은 은근히 작가가 독자들을 끌고 가는 느낌이 있었다. 중간을 지나 끝으로 갈수록 작가가 독자에게 많은 설명을 해준다. 독자가 생각하면 읽기보다는 작가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많은 사건들이 저절로 해결이 된다.
요즘 SBS 드라마 "신이랑 변호사"를 보는데, 비슷한 소설이다. 귀신마다 에피소드가 있고 에피소드가 끝나면 다른 귀신이 나와서 또 다른 에피소드를 만드는 구성이다. 신이랑 변호사는 귀신을 보기도 하지만 빙의를 통해서 귀신이 직접 사건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해피엔딩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 재미가 없다. 그냥 작가가 설정한 세계에서 재미있게 놀다가 나오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좋다.
간만에 부담없이 읽은 소설이다. 책을 편식하지 말고 다양한 장르를 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