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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피어난 한 줄의 빛.

브런치스토리 10주년을 기념하면서 ー

by 엄태용

새벽 네 시, 컴퓨터 화면의 희미한 불빛만이 나를 비춘다. 키보드 위, 길 잃은 손가락 열개. 무엇을 써야 할지, 아니, 무엇을 쓸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던 시간.


직장에서의 모욕과 무시, 인격 모독과 고립이 내 안에서 독처럼 번져가고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었던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 앞에서 문장은 부서지고,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 침묵만 남았다.


어쩌다, 브런치스토리를 우연히 알게되었다.

처음 글 한 줄을 올리던 순간의 떨림을 아직 기억한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쓰지 않으면 질식하겠다"는 절박함 사이에서 주저하던 날이었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됐다.

“오늘도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아직은 거짓말 같다.”


그 작은 고백이 누군가에게 닿았다.

“저도 그런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함께 버텨봐요.”

낯선 이의 짧은 댓글 하나가 얼어붙었던 가슴을 녹이기 시작했다.


브런치스토리는 내게 단순한 플랫폼이 아니었다.

부서진 마음의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담는 공간이었다. 매일 밤, 하루를 견뎌낸 나 자신에게 건네는 작은 선물처럼 글을 썼다. 눈물로 얼룩진 문장을 쓰기도 했고, 희미한 희망의 빛을 담기도 했다.


예상보다 큰 반응이 돌아왔다. 내 글을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사람들, 같은 아픔 속에서 위로를 구하는 사람들, 그리고 글에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의 존재는 분명히 말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직은 새벽이지만 한낮의 따사로움을 기다려》


내 첫 에세이집의 제목도 브런치에서 태어났다. 가장 어두웠던 순간에 쓴 글이 책이 되어 세상으로 나갔다. 한 독자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작가님의 글 덕분에 저도 다시 쓰기 시작했어요. 제 상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브런치스토리는 내게 치유의 공간이자,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 무대였다. 출간의 기회, 새로운 인연들… 모든 것이 그 작은 글쓰기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다시 ‘쓰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예비 작가님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상처도, 기쁨도, 일상의 사소한 순간도 모두 글이 될 수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진실한 한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나는 아니, 우리는 믿는다.

차가운 새벽은 지나가게 되어있고, 한낮의 따스한 햇살은 '반드시 온다'는 것을.


고맙습니다, 브런치스토리.
당신 덕분에 '다시' 꿈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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