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프 J. 뒤부아, 엘리즈 루소, <새들이 전하는 짧은 철학>
백인들이 인디언들의 땅을 탈취할 때, 그들은 인디언들을 '야만인'으로 생각했지만, 인디언들은 백인들을 '신'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관점의 차이는 삶을 살아가는 차이다. 무학 스님이 이성계를 보고 부처가 있다고 하며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했던 일화와 비슷하다. 내가 부리는 언어는 내 모습이다. 우리의 언어는 어디에서 올까. 경험과 환경에서 올 것이다. 나는 온전히 나로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 광고 카피에서 말하듯 내 인생은 나 이외의 인생들로 만들어진다.
통찰은 관찰에서 온다. 인류가 세계를 구성하는 일부라는 사고를 가진 사람은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나는 신앙인이다. 그러나 성경 공부에는 더딘데, 특히 창세기의 말을 유심히 보게 된다. 인간이 동물들을 지배하도록 한다는 구절은 특히나 마음이 쓰인다. 성경은 그 자체로 둬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들 말한다. 레위기에서 비늘 없는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을 지금까지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텍스트는 시대와 호흡해야 한다. 성경의 가치를 마음대로 재단해서도 안 되고, 또 그 자체를 엄밀하게 들어대어 인간을 종속해도 안 된다는 뜻이다. 텍스트는 해석의 영역으로, 삶에 다가와야 하는 것이다. 나는 동물을 지배하라는 것을 다시금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모든 하나님의 피조물에서 위계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앙인은 기본적으로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피조물을 지배하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결국 자연과 더불어 사는 자세를 나타내는 것이 성경의 구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근대적 사고는 쉽게 왜곡되었다. 퓌지스. 즉 자연이라는 말은 옛날에 영혼을 가리키기도 했던 용어였다. 결국 자연 속에 신의 섭리, 영혼이 있었다고 헬레인들은 믿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서양의 철학은 자연을 지배하는 개념으로, 자연과 인간을 대립시키는 것으로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으로 봤을 때, 근현대에 이르러 만들어진 개념이다. 자연이라는 속성은 옛날부터 신의 섭리를 담고 있는 것으로서 인간과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었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를 거치며 영혼은 일차적인 것, 영혼이 깃든 자연 세계는 이차적인 것으로 분류되면서 조금씩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것이다. 그러면서 싹튼 것이 바로 개발의 논리였다. 인간을 척도로 보고, 인간의 제도와 문명이 개척되지 못한 공간을 '미개'라는 이름으로 마구 들쑤셨다.
인간의 제도는 한계가 분명하다. 그러나 자연의 언어는 이보다 훨씬 간명할 수 있다.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오래도록 갈망해 온 권력의 정점에 오르기 위해, 목표를 이루는 데만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을 잃고 만다.' 인간은 끝 모르게 올라가고픈 욕망에 사로잡혔다. 인간성은 자본주의에서 쉽게 증발해 나갔고, 이는 다시 개발이라는 논리로 포장되었다. 수컷 목도리도요는 암컷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종일 싸움을 일삼는다(119p). 그러는 동안에 싸움에 밀린 베타 수컷들이 암컷 목도리도요와 사랑을 한다고 한다. 경쟁이 경쟁의 목표가 되는 것을 맹목이라고 한다. 과연 목도리도요의 경쟁과 우리 사회의 무한 경쟁이 다른 면이 있을까. 맹목적 발전은 맹목적 퇴보다.
'수라'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우리의 맹목을 향해 묵직한 화두 하나를 던진다. 관찰을 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필요하지 않겠나. 수라에 나오는 주인공은 어릴 때 도요새의 군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이 지금 자신을 만들었고 지금도 새를 관찰하며 일지를 쓴다고 했다. 내 어릴 적의 기억만 더듬어 보아도 그렇다. 나는 놀이터에 나가면 잠자리들이 하늘을 덮고, 장미꽃 덤불 위에 앉으면 곁으로 다가가 손으로 낚아채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잠자리 떼가 잘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방아깨비조차도 들에, 산에 찾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의 맹목으로, 후대의 배움을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가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약 1만 여종의 새가 21세기말에는 25%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타인의 소멸은, 관찰의 소멸이다. 경험의 소멸이고, 결국 나의 소멸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중심이 아니다. 우리는 일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