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이소

-(이)소

by 이여름

'어서오이소'. 거가대로를 지나며 부산으로 들어섰다. 내가 태어난 곳은 부산시 북구 시랑로, '구포'라는 부산의 작은 동네다. 포천초등학교 교문을 나와 언덕길을 따라 세 블럭 정도 올라가면 철물점이 있었고, 이를 끼고 들어가면 골목길 끝으로 2층짜리 붉은 벽돌집이 나온다. 양 옆으로도 빽빽하게 주택들이 있었지만, 나는 붉은 벽돌집을 끼고 아래로 내려가는 반지하집에서 살았다.

우리집은 빌라, 식육점 쪽방 등을 전전했다. 아버지께서 오리고기 납품업과 식육점 사장, 학습지 교사 등 직장을 옮길 때, 우리도 그에 맞춰 두세 번 이사했고 새로운 동네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기억들이 내게 사투리로 남았다. 집의 이동은 이웃의 변화를 의미하고, 이는 언어의 확장이었다. '밥 뭇나', '오데가노', '니 뭐하노'. 동네 골목길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어른들은 언어가 되었다. 내 말 속에 남아있는 사투리로 말이다. 그러나 한동안은 내 뿌리를 잊고 지내왔다.

고향에 내려가는 일도 고되게 느껴졌다. 명절 연휴를 끼고서야 겨우겨우 내려가게 되면서 가족들을 만나는 일도 뜸해졌다. 집으로 내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4시간이다. 자가용을 끌고, 휴게소에서 10분 정도 짧게 휴식했을 때 4시간이다. 조금 더 여유를 부리거나, 차가 막히게 되면 5시간은 예삿일이다. 그러니 내려갈 때는 가족들을 볼 수 있다는 기쁜 마음보다, '어떻게 내려가나'하는 막막함이 앞선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지면 마음이 아니라, 말이 멀어진다. 말이 먼저 멀어지고, 말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진다.

묘하게 나는 멀어진 마음을 충청도 사투리를 따라하며 채우려고 했는지 모른다. 나는 충청도 말이 끌렸다. '개갈 안 난다.', '겨 안 겨?', '그리 급하면 어제 오지 그렸슈'. 말들에는 익살과 부드러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여기서 가장 심한 욕이 '아는 착혀'라고 했다. '아는'은 '아이는', '애는'이라는 의미고, '착혀'는 '착하다'라는 말이다. 놀라웠다. 충청도 말의 언어적 인내력이 말이다. 사투리와 언어는 지역의 특색을 보여준다. 충청도 사람의 사투리를 보면 여유가 느껴지는 것이, 참 닮고 싶었다. 의뭉스럽다고도 하지만, 직설적으로 누군가를 욕하기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뿌리 언어가 쉬이 마르지 않았다. 다른 지역의 방언, 언어에 대한 관심이 짙어질 수록 내 지역의 언어에 대한 애착도 함께 떠올랐다. 내 뿌리 언어의 강인함은 반가움과 함께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를테면 한번 씩 고향으로 내려갈 때 느껴지는 언어가 유독 반가웠다. '매르치 사이소(멸치 사세요)', '뭐라카노(뭐라고 했니?), '어어어(아니)'. 충청도에서 만나는 경상도 언어도 유난히 반가웠다. 그 반가움은 동질감을 일으켰다. 교육공동체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거기서 마산에서 올라오신 분을 만난 일이 있다. 반가움은 고향이 어디냐는 물음으로 이어졌다.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백석, 「고향」)'. 우리 고향은 언어의 고향과 다를까.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이라는 책에서는 전쟁 속에서 자신의 언어를 버리고,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워야 하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어로 우리는 같지만, 그 속에서 방언으로 우리는 조금씩 다른 개별성과 고유성으로 엮여있다. 언어는 곧 정체성이다. 방언은 고유성을 바탕으로 나의 정체성을 형성했다. 사람, 책, 나의 삶이 나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물음이 내 사투리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졌다. 이런 시간들 속에서 나는 내 언어를 되살려야겠다는 다짐이 되었다. 앞으로 내가 쓸 글은 내 언어와 기억이 섞여있는 글이다. 언어 속에 담긴 기억을 통해서 내 삶을 기록해 두고자 하는 게 글을 쓰는 목표다. '어서오이소'. 내 특별한 방언 속에 담긴 기억을 통해, 어쩌면 보편적인 감정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움은 방언에 묻어있기에 개별적이며, 기억을 통해 드러난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내 방언(뿌리 언어)를 되새기며 어떤 색으로 살아왔나, 또 어떤 언어를 내 삶에서 부릴 수 있을까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될 수 있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