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봤데이

욕보다: 수고하다

by 이여름

"욕봤데이."

큰아버지는 함께 식사를 할 때, 동생들에게 늘상 이 말로 이야기를 맺었다. 화장실을 새로 수리하느라 욕봤데이, 멀리서 와줘서 욕봤데이, 벌초하느라 욕봤데이. 그러다가는 고마운 일이 있을 때면 그 사이에 '마이(많이)'를 끼워넣으신다. '욕 마이 봤데이'

우리 아버지는 실제로 욕보면서 살아오셨다. 어릴적에 아버지는 다단계에 휘말려서 돈을 잃고, 식육점과 학습지 교사를 전전했다. 학습지 교사를 하면서 월마다 학생들에게 학습지비를 직접 걷어서 지역의 본부에 보내야 하는데, 아버지는 모질지 못한 품성은 늘 통장을 향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미납금 만큼은 당신이 모아두신 돈에서 제하고 마감 기한을 지키신 것이다. 몇달이 밀려도 어떻게 다그치지도 못하고, 늘상 한탄을 하셨다. 10시, 11시에 돌아오는 길에는 없는 형편에도 먹을 것을 꼭 사오셨다.

'아빠 왔다. 치킨 먹어라'

아버지는 통큐 치킨에서 작은 닭을 한 마리씩 꼭 사오셨고, 소주 한두 잔에 하루하루를 쓸어내리며 살아오시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의 미납금은 곧 가족 미시 경제사(?)와 맞닿아 있었다. 무항산 무항심이라고들 한다. 들쑥날쑥한 월급에 어머니는 불안한 마음을 직설적인 언어로 쏘아붙이셨고, 그 결과는 우리 또한 감당해야 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한다. 그러나 물 속에 있는 물살이들인 우리 형제는 그 칼을 피해 이리저리 헤엄쳐야했다.

이제 성인이 되고, 이제서야 나를 스스로 보듬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글을 쓴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다 참 욕 마이 보셨다. 아들 둘, 키우느라 대단한 사치도 부리지 못했을 텐데 고향엘 내려가면 못해준 것이 미안하다고 눈망울 가득하게 말씀하신다.

나는 다른 가정들도 우리집 같을 줄 알았다. 그러나 몇몇 만났던 애인들을 보면 가정이 좀더 따듯하고 예뻐보였다. 나는 그 시간을 지나왔지만, 내겐 결핍이 되어서 어느 순간순간 언어가 되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전 애인은 내가 무뚝뚝해 보인다고 누차 이야기했다. 내가 인식하지 못한 순간에 무심함은 애인에게 무심이 아니라 무관심으로 전해졌고 관계는 끊어졌다.

물론 가족의 환경은 이제 내게 큰 영향을 줄 수 없다. 앞으로는 과거를 조금씩 치유하면서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결핍 가득한 나에게 다가와준 모든 이들은 참 수고롭게도 나를 사랑해줬다는 것을 잘 안다. 각자의 위치에서 나를 은근하게 사랑해준 정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구의 탓으로 현재를 허비하고 싶진 않다. 결핍은 탓을 할 때는 아물지 못한다. 그러나 결핍을 나의 일부로 인정할 때, 고유성이 된다.

대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어 아버지와 술을 한잔 기울이는 시간이 더러 생겼다. 한번은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과거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되었는데, 문득 '그래도 늘 너희들과 있었다이가' 하신다.

반지하를 전전하던 시기가 초등학생 때였으니, 아버지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와 얼추 비슷하다. 나를 돌아보면 참 어린데, 아버지는 얼마나 좌충우돌이었을까. 아버지는 어릴 때 꿈이 '아빠'였다고 한다.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한 선생님께서 그냥 아빠된다는 생각으로 살면 안 된다며 말씀하셨었는데, 지금와서 보니 아빠는 그냥 아빠가 아니다. 생명에 대한 책임을 아는 어른이다. 이는 엄마 또한 마찬가지다. 어른은 책임을 실천하는 사람이고, 아이는 책임을 배우는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내가 배울 수 있게 해준 부모님께 참 고맙다.

'어무이, 아부지. 욕 마이 봤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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