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디: 제대로, 확실히, 꼼꼼히
단디해라는 말은 '단단히'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경상도에서는 잘 살펴서 하라는 의미로 '단디'를 사용한다. 어제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집에 잘 들어갔나? 단디 해라이"
무얼 '단디'하라는 것일까? 주어를 빼놓으니 인사말처럼 들린다. 사실 아버지는 꼼꼼하지 못한 내가 늘 걱정이신지 밥이며, 청소며, 살아가는 것 하나하나에 관심을 주신다. 내 부주의한 성격이 창조한 인사말이다. 단디해라.
나는 정리의 습관이 몸에 잘 배어있지 않다. 정리가 되지 않을 때 시간을 쉽게 허비하게 된다. 이를테면 자동차 키를 찾는 데 쓰이는 시간이 퇴적되고 있다. 그러지 말아야지, 잘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늘상 보면 어질러져 있고, 물건을 어디다 뒀는지 찾고 있다.
특히나 책에서는 더 심한 무질서를 보인다. 나는 책을 좋아하기에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책이 보이면 사서 모으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우리집에는 책이 200권 정도 있다. 그러나 사두고선 대강 사회, 문학, 고전 등으로 엉성하게 분류해 놓은 탓인지 책을 찾기는 어렵다. 그럴 때 권정생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위안을 삼기도 한다. 도서관에 책을 찾으러 갔다가, 원하던 책 말고 다른 책이 재밌어보여 빌리게 되는 귀한 방황을 말이다. 우리집에는 책들이 방황을 하고 있다.
내 환경을 단디하는 것은 이런 비합리적인 이유로 후순위로 밀리기 십상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무질서가 통하지만 삶의 모든 영역에서 쓰이는 치트키가 아니다. 학생들과, 혹은 친구들과, 혹은 지인들과 잡은 약속들이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신용을 잃기 쉬웠다. 단디는 특히 관계에서 필요한 마음가짐이지 않을까.
요즘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을 하다보면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 삶의 과제처럼 느껴진다. 과제란 늘 미루게 되는 특성이 있다.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 과제처럼 느껴지는 것을 보면 은연 중에 이를 밀어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한 선생님과 함께 '영피프티'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신체의 나이는 사십 대인데, 내면은 아직 어린 사람을 영피프티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서른셋인 나는 돌아보니 아직까지 내면이 어린 아이에 머물러 있다. 이를테면 남이 나를 더 사랑해줬으면 좋겠고, 무언가를 더 챙겨줬으면 좋겠고, 관심을 더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이 마음 깊에 새겨져 있다. 동료 선생님들을 보면 같은 나이인데도 성숙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바르게 '질문'하는 동료 선생님들을 보면 그 내면의 성숙도를 짐작할 수 있다. 질문은 사람을 움직이는 섬세한 설득이라는 것도 그들을 통해서 배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그치지는 않으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찾으며, 조금씩 꾸준히, 확실히, 꼼꼼히 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곁을 따듯하게 챙기는 사람. '단디'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