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by 이여름

강원국 작가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지금까지 누군가의 이야기를 써냈다고, 그렇게 잘 들었던 결과 성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듣기만 하는, 반사체의 역할을 하다 보니 자신의 이야기가 막혀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통하지 않아 병이 되었다며, 나이 오십에 찾아온 암을 이겨낸 이야기를 했다. 지금까지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했으니, 이젠 다른 이가 내 이야기를 들을 차례라며 글을 쓰게 된 계기를 밝혔다.

나도 마찬가지다. 책들을 받아들이기만 했지, 그 내용을 내 언어로 표현해 내는 것에는 소홀했다. 듣기만 하니 답답한 것이 가슴 한 구석에서 꽉 막혀있었다. 이제 써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앞으로는 듣고, 쓰는 활동을 함께 하면서 병이 되지 않게 하고 싶다. 그래서 그냥 쓰고 싶다. 그동안은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필터처럼 용기를 걸러내 버렸다. 이제는 좋은 글을 쓰겠다는 허울 좋은 생각도 버리기로 했다. 그냥 솔직하게 쓰는 글을 모으고 싶다. 내가 토해낸 언어들을 훗날 돌이켜 보고 싶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목적이 있어야 하겠지만, 나는 거창한 목표를 두고 시작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다만 나는 모순적인 글쓰기를 하고 싶다. '흰 바람벽이 있어(백석)'이라는 시에는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사랑하는 것들에게 왜 가난과 외로움과 쓸쓸함을 준다고 했을까? 외로움에는 긍정과 부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저 그런 자리가 있을 뿐이고, 그 자리에서는 기쁨, 슬픔 등의 감정을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외로움은 감정을 둘러싸고 있는 외피가 벗겨진 상태다. 벗겨진 상태에 다가오는 감정의 온도는 그대로 느껴지게 된다. 따듯하거나 차갑게. 그렇기 때문에 외로움은 함께 살아가기에 꼭 가져야 하는 마음 상태, 혹은 자리이다.

신영복 선생님은 '함께 맞는 비'라는 시에서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비 오는 날,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비를 함께 맞는 행위라고 하셨다. 온전히 그 사람의 몸을 체험할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다. 외로움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마음으로 다가가기 전에, 몸이라는 촉감으로 먼저 느끼는 것. 그리고 이러한 벌거벗겨진 상태가 되었을 때 다시금 누군가를 공감하고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나는 이런 모순의 글쓰기를 하고 싶다. 상처받은 이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모순. 기쁨은 슬픔이며, 선행이 악행이 되고, 고독이 연대가 되는. 그 순간들을 포착한 모순적 글쓰기를 하고 싶다. 그 모순의 매개로 나는 책을 끌어들이려고 한다. 앞으로 내가 읽는 책들은 무언가 하나를 꿰뚫는 주제를 찾기 어려울 수 있다. 다만 시기에 맞게 내게 찾아온 책들을 읽으려고 한다. 희미함으로 더디게 짚어보며 한 걸음을 내딛는 글을 쓰겠다. 내 글은 내 글에 의해 비판받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한 모순을 맞닥뜨릴 수 있으면 좋겠다. 삶의 모순을 깨닫는 순간에 시와, 삶, 그리고 철학과 문학이 태어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