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밥

정지우, '글쓰기로 독립하는 법'

by 이여름

정희진 작가는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글을 쓴다고 했다. 글을 쓰는 이유의 가짓수를 묻는다면 인류의 머릿수 이상일 테다.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쓴다. 나는 한 때 글로 먹고살 궁리를 했다. 좋은 글을 써서 글을 팔아서 먹고 산다는 옹색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은 쓰기 행위의 지속성을 잃게 만들었다. 나에게 글쓰기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는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글을 쓰는 순간에 나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어렴풋한 자각이 생겼다. 이유를 뚜렷하게 알 수는 없다. '돈'은 내가 쓰는 이유 중 부분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 나는 글을 왜 쓰는가.

최근에는 이러한 질문에 '해방'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는 아침마다 시를 읽고, 시에 대한 나의 감상평을 짧게나마 쓴다. 최근에는 김수영 시인의 시를 읽었다. '파밭 가에서'라는 시인데, '삶은 계란의 껍질이/ 벗겨지듯/ 묵은 사랑이/ 벗겨질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최근 들어 관계에 대한 고민들이 번져나가며 삶이 괴로웠다. 외롭다는 말의 '외'를 살펴보면, '외골수, 외길' 등에서 보듯 '홀로'라는 의미가 담긴다. 나는 홀로 됨을 느꼈다. 기능을 잃어버린 것 같은 마음. 쓸모없음을 온몸으로 견뎌내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때 김수영의 시는 내게 해방감을 주었다. 내가 지금 잃고 있는 것들은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한 움직임이라 생각하니 마음에 활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었다. 해방의 개념이 풍부해졌다. 숨 막히는 상황들 속에서도 시라는 짧은 글에 해방이 숨어있었다. 자유를 느꼈다.

정지우 작가의 글쓰기는 '독립'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독립이 역설적으로 관계 속에서 탄생했다는 점이 신기하다. 정지우 작가는 이십 대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서 저작권 관련 분야의 책들을 출간했다고 한다. 정지우 작가의 '독립'은 자기 계발서의 서사, 즉 '괴로움이 있고, 이를 극복했고, 경제적으로 부유해졌다'와는 다르다. 그의 이야기는 '부유'해지는 비법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독립'이라는 삶의 가치에 대해 언급한다. 독립으로써 글쓰기란 사람으로서 관계 맺기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독립한 사람은 매일매일 스스로 할 일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요즘 자동화 수익이라는 말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팔로워 수를 늘리고, 노출수를 늘려, 광고로 수익을 얻는다는 것이 자동화 수익의 핵심 골자다. 우후죽순처럼 자동화 수익에 대해 떠들어대는 요즘, 이 책은 반대로 진정성과 신뢰를 이야기한다.

콘텐츠들을 손가락만 딸깍하면 쉽게 생성할 수 있다. AI의 발달은 글, 그림, 자료 수집 전반에 걸쳐 우리에게 효율성을 가져다주었다. 콘텐츠 또한 쉽게 생성할 수 있다. AI로 짧은 동영상을 만들어 어떻게 수익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영상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스크린 타임을 늘리기 위한 짧은 영상들이다. 내 친구도 '이것을 모르면 40대에 큰일이 날 수도 있습니다' 따위의 제목으로 조회수가 1,000명을 돌파했다며 자랑했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진정성이라는 말은 내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삶의 해방, 즉 내 삶의 진정성을 얻기 위한 과정임에 틀림이 없다.

글이 우리를 먹여 살린다는 말을 곱씹다 보니, 관계가 우리를 먹여 살린다는 말로 들려서 기뻤다. 우분투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있어서 내가 있다는 뜻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끊임없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이다. 나의 글이 어느 순간 누군가의 삶에 닿게 된다면, AI와는 다른 아우라를 느낄 것이다. 내 지인은 AI로 독후감을 쓴다고 한다. 읽는 것은 자기가 읽되, 쓸 때만 AI의 도움을 받는단다. 매체는 의미이다. 내가 어떤 수단으로 글을 쓰느냐 또한 하나의 의미로 글에 녹아든다. 진정성이란 결국 아우라로 발현된다. 나의 글이 비효율적이고, 비상식적이었으면 좋겠다. AI가 인류의 비효율, 비상식을 흉내내기는 어렵지 않을까. 우리는 부족함 덕분에 연결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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