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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복이 Sep 07. 2022

안녕 나의 작은 별, 오늘도 여전히 예뻐




3월 초, 그러니까 우리 가족이 줄줄이 확진되기 바로 전에 마지막으로 캠핑을 갔던 날 밤이었다. 날이 많이 풀렸지만 밤공기가 아직 차가웠다. 아빠랑 밖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데리러 막 나간 참이었다.

7살 된 딸이 고개를 젖히고 밤하늘을 한참 뚫어져라 보고 서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이쪽 눈을 감았다가 또 저쪽 눈을 감았다가, 손으로 가렸다가 치웠다가 뭔가 바빴다. 그래서 뭐하는 중이냐고 했더니 대단한 걸 발견이라도 한 듯 들떠서는 쫑알대기 시작했다.


"엄마!! 신기한 게 있어! 지금 하늘이 까맣지? 그래서 이렇게 그냥 보고 있으면 어두워서 그런지 아무것도 안보였어. 엄마도 지금 그렇지? 분명 밤에는 별이나 달이나 그런 것들이 있는데...

달은 크니까 보이는데 말이야 별이 안 보여서 별이 없나? 하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계속 봤어. 계속 보다 보니 갑자기 없던 별이 보이는 거야!

엄마도 봐. 이제 별이 보일 거야. 그런데 계속 봐야 돼. 눈이 좀 아플 수 있어... 어때? 보여?"


"엄마, 그리고 더 중요한 거는 계속 보다 보면 별이 반짝거릴 거야. 하늘에서 거인이 불을 껐다 켰다 하는 거 같기도 해. 원래 별은 반짝거린다고 하잖아. 그런데 나는 색깔이 금색이라서 반짝거린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게 아니야. 이제 알겠어. 진짜 반짝반짝해. 보여? 엄마, 보이지? 엄마도 몰랐지?"


밤하늘이 그렇게 예쁜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아니, 늘 예뻤을 텐데 밤하늘을 그렇게 관심 있게 들여다본 것이 오랜만이었다.

도시에 살진 않지만 항상 불빛을 훤히 밝혀놓은 아파트에 살다 보니 더 그랬다. 일부러 작정하고 나가지 않는 한 밤하늘을, 그것도 반짝이는 별을 가만히 들여다볼 일이 잘 없었다.

BGM처럼 깔린 아이의 목소리가 점점 멀리서 들렸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았다. 어깨가 빳빳해질 때까지 고개를 들고 별을 보았다.

하늘은, 별은, 하염없이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나 보다.


내가 처음 별을 그렇게 자세히 봤던 건 언제쯤이었을까?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은 일곱 명이 다 함께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갈 수도 없었다. 방학이나 주말에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이 마냥 부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텐트를 하나 장만하셨다. 내 기억에 그 텐트는 엄청 크고 넓고 그리고 정말 좋았다. 이제 그 텐트를 가지고 우리도 놀러 갈 수 있을까 내심 기대를 했다. 그리고 그날 밤에 아빠는 앞마당에다 뚝딱하고 텐트를 세워주셨다. 그랬다. 그 좋은 텐트는 앞마당용이었다. 실망 아닌 실망을 하긴 했지만 그것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열대야로 잠들기 힘들었던 무더운 여름밤이면 우리는 마루나 평상에 나와 잠을 자기도 했었는데 이제 텐트에서 잘 수 있었다. 방에서 겨우 몇 발자국 걸어 나와 누웠을 뿐인데 텐트 안에 쏙 들어가 있으면 어딘가로 놀러 나온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텐트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꽤나 낭만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그곳이 우리 집 앞마당이었다 하더라도.

그해 여름은 거의 매일을 텐트에서 잤다. 우리는 평상에서 저녁을 먹고 텐트 안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가지고 놀 만한 장난감도 없는데 텐트 안에서는 깔깔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책도 읽고 장난도 치고 수다도 떨며 놀다가 잠이 들었다. 엄마 곁에서 자는 막냇동생을 제외하고 우리 넷이서 쪼르르 누워 하늘의 별을 세다가 저절로 달콤한 잠에 빠져드는 꿈같은 날들이었다.

저 별에도 누가 살고 있을까?

저 별에서도 우리가 사는 지구가 보일까?

지구도 저렇게 작은 점처럼 보이겠지?

언젠가 저 별로 여행을 갈 수 있을까?

이쪽 별에서 저쪽 별로 놀러도 다니고 했으면 좋겠다.

텐트에 누워서 보는 별은 어쩐지 더 반짝 빛이 나는 듯했다. 텐트의 낭만은 어쩌면 8할이 그 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어린 마음에 저 별에 진짜 누가 살고 있다고 믿었던 건지, 소원을 빌자 하면 "별님"부터 그렇게 찾았다. 기도를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르면서 기도를 시작하기에 앞서 콕 집어 별님을 부르기부터 했다. 종교가 없는 나는 그게 습관처럼 되었고 커서도 마음이 불편한 날엔 별부터 올려다봤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밤하늘의 별을 보며 명복을 빌었고, 우리 집 강아지 쫑이, 해피, 레드를 묻어주던 날도 그랬다.

가족의 품을 떠나 혼자 외로운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별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라 저 별과 함께 하고 있는 거라고.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그러면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났을 때는 별을 보며 눈물의 편지를 띄웠다. 마치 대낮의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기라도 한 것처럼 별이 뜨는 밤만 되면 하늘을 올려다보고 말을 걸었다. 그리고 별이 반짝이는 건 나의 부름에 대답을 해준다고 생각했다.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믿었다.

누군가 죽으면 하늘의 별이 된다는 그 말을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 엄마도 밤하늘의 별이 된 것일까. 저 무수히 많은 별들 중 정말로 우리 엄마의 자리가 있기라도 한 것일까.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저 위에서 반짝이는 우리 엄마에게는 내가 보일까. 알 수 없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이 생을 마감하게 되는 오더라도 덜 쓸쓸할 것만 같다.

지금 나이에는 어울리지도 않을 동화 같은 이야기이긴 해도, 그럼에도 별은 별이다.

신비로운 저 별들이 사실은 별 볼 일 없는 돌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여도, 사실은 우주에 떠다니는 수많은 우주 쓰레기였다 하더라도, 여전히 나에겐 절로 두 손 모아지는 예쁘고 따뜻한 별님이다. 비록 나의 촌스런 상상에서 비롯된 하찮은 관심일 뿐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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