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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복이 Sep 11. 2022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겨울을 기다리는 아이가 있었다. 정확히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는 말이 더 맞겠다. 산타할아버지라는 엄청난 분을 알게 된 후로 아이는 크리스마스 그날을 위해 살았다.

  그게 언제였을까. 다섯 살 아니면 여섯 살 그쯤이었을 것 같다. 교회를 다녔던 것도 아니고, 학원이나 유치원을 다녔던 것도 아니었는데 어떤 경로로 산타할아버지를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기억나는 건 꼭 선물을 받고야 말겠다는 다짐이었다. 이왕에 선물을 주시려거든 공평하게 모두 나눠주실 것이지 착한 아이에게만 주는 건 또 뭔지. 어린 맘에 얼마나 심장이 쫄깃해졌을까.

  아! 노래였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밤에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나눠주시러 우리 마을에 다녀가신다던 노래. 그 노래를 통해 저절로 인지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튼 그것보다 중요한 건 나는 선물을 꼭 받아야만 했다. 선물이라는 것을 받아 보고 싶었다.

  나 정도면 착한 아이이지 않을까.

  엄마도 많이 도와 드리... 항상 기쁜 마음으로 선뜻했던 건 아니었지만, 언니들 말도 잘... 아주 가끔 짜증 나서 귀를 틀어막고 개긴 적도 있긴 하지만, 동생이랑도 잘... 물론 서로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댈 때도 있지만 그래도, 울기는 좀 아주 많이 너무 자주 울었지... 아....... 아무래도 나는 또 선물을 못 받을 건가 보다......


  때는 7살의 크리스마스이브날이었다. 산타할아버지가 오늘 밤에 우리 동네에 다녀가실 것이다.

  나는 며칠 전부터 착한 아이로 살았다. 엄마 말도 잘 듣고, 언니들이 시키는 것도 최대한 다 하고, 동생이랑도 되도록 안 싸우려고 참아가며, 울기는 조금 울었지만 그래도 정말 노력했다. 오로지 12월 24일 오늘 밤을 위해서.

  스스로 생각해봐도 기특할 만큼 올해는 선물을 받아 마땅했다. 만약 이번에도 선물을 받지 못한다면 나는 엉망진창이 될 예정이었기에 산타할아버지는 꼭 선물을 주셔야만 할 것이다.

  내일이 얼른 오라고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그때 작은 언니가 양말을 걸어둬야 한다고 했다. 양말이 없으면 선물을 안 받겠다는 뜻인 거라고. 아차차. 그럼 안되지. 나는 얼른 양말을 꺼내왔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내 양말은 너무 작았다. 선물의 크기는 상관이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작은 양말 안에 받을만한 선물은 어디에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안방으로 갔다. 아빠 양말을 꺼내려고 옷장 서랍을 열었을 때 내 눈에 띈 것이 있었다. 바로 엄마의 버선이었다. 아빠 양말보다 크기도 크고 넓어서 더 큰 선물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난 참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얼른 엄마의 버선 한 짝을 가지고 와서 삐그덕 대는 작은 방문 앞에 걸었다. 두근거렸다. 얼마나 설레던지 그때의 쿵쾅거리던 심장소리가 지금도 들릴 정도다. 나는 얼른 큰언니와 작은언니 사이로 들어와 이불속에 쏙 미끄러져 누웠다. 내일 아침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설레어서 잠을 못 잤을 것 같지만 아주 푹 잤었나 보다. 여전히 꼴찌로 일어났다. 그것도 언니가 깨워서 겨우겨우 눈을 비볐다. 선물을 확인하지 않을 거냐는 말에 나름대로는 벌떡 일어났다. 엄마의 버선은 그대로 방문에 걸려있었다. 나는 비몽사몽 버선에 손을 갖다 대었다. 딱딱한 무언가가 만져졌다.

  세상에! 진짜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다녀가셨다! 착한 내가 드디어 선물을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선물"이었다.

  그제야 잠이 확 달아났다. 진짜 선물을 받았다며 한껏 들뜬 나를 보고 언니는 싱긋이 인자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기쁜 맘에 선물을 꺼내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버선채로 들고 엄마에게 냅다 뛰어갔다. 온 세상 사람들은 내 목소리를 다 들어라는 듯 소리를 지르면서.

  "엄마, 엄마!! 진짜로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고 갔어~~~~ 버선 안에 정말로 선물이 들어 있어~~~~"

   엄마는 내 손에 들린 버선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무 기뻐 날뛰니까 일단 같이 웃어주기는 하는데 선물은 무슨 선물일까 하는 듯이.

   엄마가 얼른 선물을 꺼내보라고 재촉했다. 나는 버선채로 만져보며 뜸을 들였다. 네모난 모양으로 조금 납작하긴 하지만 제법 크다. 뭘까?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선물을 받는 기분은 이런 거구나.

   한참만에 정신을 가다듬고 버선 안으로 손을 쑤욱 넣었다. 내 손보다 훨씬 큰 것 같았다. 살짝 꺼냈는데 은색 포장지가 보였다. 아, 이게 뭘까. 아직 다 꺼내지도 않았는데 내 선물은 벌써부터 이렇게 눈부시도록 예쁘기도 하다.

  짠!! 꺼낸 선물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엄마도 그랬다. 도무지 뭔지 모르겠어서 계속 봤다. 그리고 잠시 뒤 나는 대성통곡을 했다.


  납작한 네모 모양에 은색으로 반짝거리는 그것은 다름 아닌 짝짝이였다.

  우리 언니가 운동회 때 백팀 이겨라며 응원할 때 쓰던 나무 짝짝이 말이다.

  내가 자동차라며 붕~ 부웅~ 거리며 방바닥에서부터 벽을 타며 가지고 놀다가 고무밴드가 터진 그 나무 짝짝이 이 이 이이 이.

  대체 산타할아버지는 왜 이걸 나에게 주신 걸까.

  원래 선물은 집에 있는 것 중에 주시는 건가.

  내가 착한 아이가 아니어서 그러셨나.

  큰 선물을 받으려고 엄마의 버선을 걸어둔 걸 보고 혹시 화가 나신 걸까.

  나는 결국 산타할아버지의 깊은 의중을 알아채지 못했다. 대신 그날 저녁 다른 비밀을 알게 되었다. 언니와 숫자 찾기 게임을 하려고 펼친 연습장에 적힌 글씨를 보고 뒤통수가 너무 아파 또 울부짖었다..


 <버선까지 걸었다 바보. 언니야 선미 자면 이거 저기 넣어놓자>

<어>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지 잠들 때까지 숨을 헐떡거리는 통에 가슴이 아플 지경이었다.



  어느 기사에서 평균적으로 만 5세부터 산타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갈수록 그 나이도 점점 어려지고 있다고 하던데 그때 우리 언니들의 장난이 아니었다면 나는 언제까지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었을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커밍아웃하는 건 아니지. 정말 오랫동안 언니들을 원망했다. 선물을 받지 못해서였는지, 알고 싶지 않은 걸 강제로 알게 해서였는지, 나무토막이 선물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차라리 내가 까막눈이었더라면. 애초에 언니들이 그 종이를 제대로 버리기만 했더라면. 그랬다면 나는 산타할아버지가 선물해주신 그 나무토막도 어지간히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안타깝지만 산타할아버지에 대한 환상은 시작도 못해보고 그렇게 시시하게 끝이 났다. 어쩐지 좀 억울하긴 했지만 그다음 해부터 나에게는 크리스마스의 기쁨이 새로 시작되었다. 옆집 언니를 따라 우연히 놀러 간 교회에서 달란트를 받고나서부터 였다. 교회에 갔을 뿐인데 초코파이도 주고 달란트도 주고, 달란트로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도 있었다.

  아... 달란트! 그것은 내 것을 온전히 소유해보지 못한 나의 작은 두 손 위에 사뿐히 내려주신 축복과도 같았다.

  물론 그 축복도 얼마 못 가 더는 받을 수 없게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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