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이 시작할 시간

by 달콤한복이


막내가 입학을 했다. 아직 내 손아귀에 쏙 들어오는 여리고 작은 손을 꼭 잡고 자기 덩치보다 큰 가방을 메고 입학식을 하러 학교로 갔다. 벌써 세 번째 입학식인데 왜 이렇게 유난히 걱정스러울까. 아이가 못 미더워서라기보다 막내라서, 그저 제일 꼬마라서 일 것이다.

마냥 어린 아가 같던 아이의 입학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뭔가 뭉클하다. 대견하기도 하고 염려스럽기도 하고 엄마눈에는 아직도 아기인데 이 철없는 것이 학교에 가서 선생님 말씀을 알아는 들을까 괜한 생각에 마음이 시끄럽다. 엄마눈에만 그렇게 보인다는 게 그나마 다행스럽다.


언니, 심쿵이는 걱정할 게 없겠다. 야무지게 제일 잘할 거 같아요.


하지만 주변의 말도 귀에서 맴돌 뿐 내 마음을 다스려주지는 못한다.

한 명만이라도, 제발 딱 한 명만 같은 반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낯선 환경에 '처음 교실'에서 아는 얼굴이 하나라도 있으면 마음이 놓일 텐데. 결국 그 바람은 물 건너갔다. 아이는 익숙한 얼굴 하나 없는 차가운 교실로 혼자 걸어 들어갔다. 아니 얼떨결에 엄마손을 놓치고 선생님 손에 이끌려 들어가 버렸다. 차라리 다행이다. 돌아볼 여유도 없어서.

잠시 뒤 입학식 시작 전에 강당에서 만난 아이는 조금 낯설었다. 긴장된 얼굴에 경직된 발걸음으로 입장하며 눈이 마주친 엄마를 보고 살짝 웃음을 보였다. 그 얼굴이 어쩐 이유인지 감동스러웠다.

정말 사회생활을 시작하는구나. 너 조금 대견하다.



둘째 날엔 방과 후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라 기대감을 안고 등교를 했다. 그렇게 동경하던 언니와 함께 등교를 하니 발걸음도 가벼웠다. 수업 마치면 제일 큰 문, 정문으로 나오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아이들을 들여보냈다. 손을 꼭 잡고 들어가는 뒷모습에 만감이 교차했다.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꾸 마음이 싸르르했다.

아이에게는 처음이지만 엄마에게는 마지막이다. 내 손을 잡고 학교를 가는 마지막 아이. 그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이렇게 점점 내 품에서 멀어져 가겠지. 오빠와 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나와의 관계가 멀어진다는 게 아니다. 그건 친밀감과는 다른 것이다. 아이가 커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정상적으로 자립심이 길러지고 있다는 근거겠지만 엄마는 그게 조금 아쉽다. 애들이 어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 손을 거쳐야 할 때는 그것 때문에 힘들고 귀찮다고 그랬으면서. 이제 와서 의미 없는 후회를 한다.

하교하는 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오며 우리 선생님 어때 라며 상투적인 질문을 했다.


아직 잘 몰라. 지금은 당연히 좋지, 처음에는 다 잘해주는데.


"인생 2회 차"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대답을 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사귄 친구가 있냐는 질문엔 고개만 도리도리 저었다. 친해지고 싶은 친구에게 먼저 말 걸어보라고 했더니 그런 친구가 없단다.


우리 반 여자친구들은 다 예쁜척해...


터지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예쁜척하는 게 아니라 예쁜 거겠지 하고 아이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니 아마도 새침한 친구들인가 보다. 처음이고 낯설어서 그럴 수도 있으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 했다. 묻고 싶은 것이 한가득이었지만 혹시나 스트레스일까 더 묻지 않았다. 그날밤에 자러 들어가기 전에 아이가 먼저 학교 얘기를 꺼냈다. 엄마가 궁금한 게 있으면 들려주겠다고. 냉큼 아이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급식이랑 수업시간이랑 방과 후랑 사물함정리랑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물었다. 자기도 재미있는지 엄마에게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수업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시무룩해지더니 그랬다.


엄마, 난 자유시간은 싫어. 말할 친구도 없는데... 그런데 20분이나 된다니까? 나는 가만히 앉아서 책만 읽고 있다고. 나도 친구랑 이야기도 하고 싶어...


잠시도 오디오가 안 쉬는 아이인데 학교에서 묵언수행을 하고 있을 거 생각하니까 안쓰러웠다. 그러다가도 아주 잠시 잘 됐다 싶기도 했다. 아주 잠깐.


오늘 학교에서 온도계를 만들었거든? 100도까지 있는데 칭찬받을 일을 하면 1도씩 올라가는 거야. 포인트 쌓이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10도씩 1단계부터 10단계까지 있는데 단계마다 선물도 있어. 선생님한테 100도 되면 다른 반에 놀러 가도 되냐고 여쭤봤는데 그건 안된대.....


신나게 설명하다가 친구 얘기에 또 풀이 죽었다. 가장 친한 친구 2명이 바로 옆반에 있다. 얼마나 그 반에 가고 싶을까. 반편성이 되고 자기는 5반이 아니라 4반으로 바꿔달라고 학교로 전화해 보라고 했다. 1명만 바꾸는 거면 쉬운 일 아니냐고.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냐고. 아무튼 4반에 놀러 가고 싶은데 학기 초라 그런지 다른 반에 못 가게 하시니 시무룩하다. 화장실 가면서 열린 문틈으로 4반을 열심히 살피는가 하면 친구들을 만나려고 아니 말을 좀 하려고 화장실을 그렇게 열심히 간단다. 그 말을 듣고는 조금 웃기기도 했다. 아 그래서 그런가. 등하교하며 아는 얼굴을 만날 때마다 활짝 편 손바닥을 흔들며 열심히 인사를 한다. 겨우 며칠인데 친구가 그리운가 보다.


셋째 날 집에 걸어오며 새 친구가 생겼다고 했다. 자기에게 먼저 다가와 나랑 친구 할래? 했다는 친구. 그 친구의 이름은 뭐냐고 했더니


몰라. 9번.


이라고 정 없이 말했다. 친구 이름은 알아야지 했더니 아직 친한 친구는 아니란다. 아직은 그냥 친구. 잘 모르는 친구라서 있어봐야 할 거라고 했다. 그래도 말할 친구 한 명이 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넷째 날. 하교 후 놀이터에서 놀기로 했다.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필통을 꺼냈다. 그리고 작은 쪽지를 꺼내 보여줬다.


엄마 나 새 친구 사귀었거든? 이름도 알아왔어. 혹시나 까먹을까 봐 적어왔어.



내 친구라니. 이게 뭐라고 뭉클했다. 몇 글자 적힌 것도 아닌데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정글짐 앞에 선 아이가 엄마를 서너 번 불러댔다.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얼른 뛰어갔더니 우리 반 친구가 여기 있다고 소개해줬다. 이름은 모르지만 같은 반친구라고 둘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서 웃기만 했다. 엄마가 나서서 통성명을 시키고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했다. 친구들과 한참을 뛰어놀다가 와서 그랬다.


엄마. 나 갑자기 친구가 많이 생겼어. 주말 지나도 친구들이 나 기억하겠지? 다음 주에는 또 누구를 사귀게 될까?


다행이다. 학교 가기 싫어서 억지로 가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음 주에도 다다음주에도 다음 달에도 새로운 친구 많이 사귀고 엄마에게 다 소개해줘. 너의 새로운 시작이 기대와 설렘이 된 걸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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