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분위기

사랑스러운 리틀산타에게

by 달콤한복이


엄마, 친구들이 산타가 없대. 누구는 엄마가 선물사준대. 그런데 우리 집에는 어떻게 오는 거야? 친구집은 주소를 모르는 걸까?
어떻게 생각해? 진짜 있는 거 같아?
응 당연히 있지. 우리 집에 왔으니까!
산타는 믿는 사람에게는 있고, 안 믿는 사람에게는 없어.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 주는 게 아니라 안 믿는 아이에게 안주는 거구나! 그래서 나랑 심쿵이도 받은 거고. 우린 많이 울었는데도 받았잖아, 그건 맞잖아!



어느덧 10살. 두 달 뒤면 4학년이 되는 사과는 여전히 산타를 믿었다.

매년 그랬던 것처럼 12월 초부터 창문에 붙어 서서 어디선가 듣고 있을 산타할아버지에게 소원을 말했다.

예쁜 요술봉을 받고 싶다고 했다가, "이제 4학년 되면 안 가지고 놀 거 같긴 해."

하얀 드레스를 받고 싶다고 했다가, "금방 크니까 몇 번 못 입겠지?"

사실은 디지털카메라가 제일 갖고 싶었다고 하더니, "화질 좋은 핸드폰으로 바꾸면 잘 안 써지려나? -지금은 키즈폰이라서 사진 저장도 안 되고 화질도 흐린데-"

그러다가도, "산타 할아버지가 알아서 주시겠지. 산타 할아버지는 나에게 뭐가 필요한지 다 알고 계시거든, 진짜!" 하며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둔 어느 날 하교를 하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가방을 힘없이 툭 내려놓으며 세상을 잃은 표정을 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친구랑 싸운 거니, 어떤 질문에도 입을 꾹 닫고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녁을 먹고 숙제를 하고 양치를 하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좀 전의 그 표정에 대해서 어떤 말도 없었다. 자는 줄 알았던 아이가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다.


엄마가 혹시 산타야? 아니면 아빠나...
우리 반 남자애들이 그랬어. 엄마한테 속고 있는 거라고.
내가 아니라고 산타 진짜 있다고 했는데 나보고 바보래. 엄마가 산타래. 그래서 우리가 갖고 싶은 게 뭔지 계속 물어보는 거래. 생각해 보니까 엄마도 우리가 받고 싶은 선물에 관심이 많잖아...
그래서 기분이 안 좋았던 거구나. 그 친구들은 이제 산타를 안 믿는 모양이네. 그러니까 산타할아버지가 안 오시는 거고. 혼자만 못 받으면 속상할 테니까 엄마가 사주는 거겠지?
엄마는 사과가 요즘 뭘 좋아하는지 궁금하니까 물어보는 거지. 그런데 이때까지 너희가 받고 싶다고 말한 걸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지 않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 산타할아버지는 내가 말하지 않은 걸 주셔. 그런데 그게 항상 마음에 쏙 들었어.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그만큼 사과를 좋아하고 사과한테 관심이 많은 거지. 산타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어.
친구들이 계속 그렇게 말하니까 속상했어. 나는 분명히 산타를 믿는데 내 마음이 안 믿는 것같이 느껴지니까 으앙~


뜬금없이 울음이 터졌다.


산타가 없다고 하면 선물을 못 받게 될까 봐?
아니 선물은 안 받아도 괜찮아. 나는 지금도 꼭 받고 싶은 게 없어. 갖고 싶은걸 오랫동안 계속 상상하다 보니까 이미 다 받은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아. 그래서 안 받아도 돼.
그냥 까먹고 지내다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왠지 모르게 행복해지거든. 예전에는 선물을 받아서 행복했는데 이제는 굳이 안 받아도 괜찮아. 그런데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가 없다고 생각하면 조금 쓸쓸해...
나는 믿고 싶어 엄마...



무슨 말인지 알겠어. 사과가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면 돼.
친구들이 그렇게 말하면 굳이 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해 버려, '아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런데 나는 아니야.' 하고.
하지만 나이가 점점 들어서 친구들처럼 산타를 믿지 않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잖아? 그때부터는 엄마가 산타 해주면 되지.
있잖아, 사실 창피해서 다른 사람한테는 말 못 했는데 엄마는 아직도 산타가 있다고 믿어. 진짜야! 산타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응. 엄마가 믿으면 나도 믿어.
엄마는 역시 내 엄마야. 잘 자 엄마!



곧 11살. 내일 당장 산타는 세상에 없다고 어른들이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이의 아이에게 억지로 거짓말을 해가면서까지 믿게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동심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아이의 말과 반대로 나는 산타가 없다는 걸 아는 데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고 싶어서 너무 몰입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만 산타라는 존재가 세상 어딘가에 정말 있을 것 같은 느낌.


나는 일찍이 산타가 없다는 걸 깨닫고 배신감이 들었다. 단 한 번도 새 장난감 같은 걸 받아본 적이 없어서 산타만 믿고 착한 노릇을 하느라 나름 용을 썼다. 그 모든 것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어린아이가 받은 충격은 웃고 잊어버릴 단순한 허탈함을 넘어 상실감에 모든 의욕이 사라지는 걸 경험했다. 종교적으로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나에게 산타는 희망이었다. 그때의 나는 불우했고 간절했다. 학교에 가서 산타에게 받은 선물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친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선물을 준 사람이 산타라고 믿는 친구들이 바보 같다기보다 그 애가 갖고 싶어 한 걸 사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더 부러웠다.

이제 스스로에게 선물 하나 사줄 정도의 능력이 있는 어른이 되었지만 내가 갖고 싶은 걸 사는 것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주는 기쁨이 더 크다. 지금의 나는 어쩌면 우리 아이들을 통해 어린 시절 나의 욕구를 채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언젠가 산타할아버지는 세상에 없다고 믿는 날이 오더라도 나처럼 상실감을 느끼기보다 우리 엄마 아빠가 자신만의 진짜 산타였다고 믿어주면 좋겠다. 그리고 산타는 선물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 주는 존재라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 산타가 진짜 있고 말고 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산타는 그저 사랑이었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기를.


이브날 트리아래 둔 편지와 직접 만든 선물. 리틀산타라니 어쩌면 아이는 이미 알고있는지도 모른다. 산타의 의미를, 그리고 주는 기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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