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의미 없는 손짓으로 숏츠를 넘기다가 우연히 모 연예인 부부의 그것을 보았다.
엄마에게 뭐 바라는 거 없어?
지금이 기회일지도 몰라, 말해봐
그러자 아이는 엄마가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집을 어지르는 자신에게 엄마가 화내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물으니 기죽은 듯 치워야지.... 하는 아이가 너무 귀여웠다. 우리 사과와 또래인 것 같아 보이기에 저맘때 아이들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사과의 대답이 궁금했다. 화라면 저 연예인보다야 내가 훨씬 많이 낼 텐데 아직 듣지도 않은 대답이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주말 오후, 점심을 먹고 식탁을 치웠는데 그날따라 유독 이야기가 끊이지 않게 재잘대서 그 자리 고대로 앉아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친구얘기, 케데헌 이야기,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해주신 이야기 등등 많은 주제가 이어지고 목소리가 줄어들 즈음 물어보았다.
엄마한테 바라는 거 이야기해 봐. 뭐라도 괜찮아.
그런데 말이 끝나자마자 없는데? 하길래 조금 생각해 보고 다시 얘기해줘 했더니 진짜 없어.라는 단호한 대답에
진짜? 혼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던가, 뭘 사주면 좋겠다던가 뭐 그런 거 있잖아.
하며 설거지를 하려고 일어났다. 그런 나의 등뒤에서 사과가 그랬다.
그런 건 진짜 하나도 없어. 그냥 엄마가 안 아프면 좋겠어. 건강하게 오래오래 우리랑 살면 좋겠어. 내가 바라는 건 그거뿐이야.
엄마에게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고 없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이런 영향을 주는 걸 지도 모르겠다. 열 살짜리 아이가 엄마에게 바라는 것이 사랑도 아니고 장난감도 아니고 용돈도 아니고 엄마의 만수무강이라니.
언젠가 아이와 그림을 그리던 중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엄마 없이 어떻게 살았어? 나는 가끔 상상만 해도 무섭고 슬픈데 엄마는 어떻게 했어? 살 수 있었어?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릴 때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이십 대 중반에 돌아가신 건데(물론 그때도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지만) 아이는 진심으로 나를 안쓰러워했다. 그런 마음이 내내 아이의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나 보다. 엄마 없는 엄마가 가여우면서도 자신 또한 엄마를 빨리 잃을까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다행이다! 그런 거라면 엄마는 자신 있어. (팔 근육을 보여주며) 이렇게 건강하잖아. 더 건강해지려고 몸에 좋은 음식 많이 먹고 계단도 오르는 거 아니야.
엄마와 언니의 대화를 조용히 듣던 심쿵이가 나를 안았다.
엄마 진짜지? 나 할머니 될 때까지 같이 사는 거다? 약속 어기면 절대 안 돼!
응! 대신 엄마만 건강해서는 약속 못 지키는 거 알지? 너희도 건강해야 하는 거야.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겸사겸사 아이들의 버릇도 집어줄 겸 물어본 거였는데. 항상 아이들은 나의 생각을 비껴간다. 나의 얄팍한 머리보다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훨씬 깊고 넓어서인 것 같다.
어떤 여배우가 그랬던가. 아이들에게 배울 것이 없다고. 얼마나 넋을 놓고 사는 어른이면 어린아이에게 배우느냐고. 아마도 내가 그런 어른인가 보다.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늘 생각지 못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