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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Feb 24. 2020

메기와 나  

친구와 자주 만나지 않는다. 관리해야 하는 많은 인맥이 아니라 가끔 만나도 어제 본 것 같은 사람들만 있다. 안심해도 되는 사이면서 챙겨주고 싶은 간격이 있는 사람들. 그런 일상은 단출하다.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고 쇼핑을 하고 술을 마시는 시간 대신 적당량의 일을 하고 책상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책을 읽고 스트레칭을 하고 하루 한 끼는 음식을 차려 먹는다. 오프라인 만남이 별로 없는 대신 다이렉트 메시지와 짧은 카톡, 전화 정도로 안부를 대신한다. 한편으로는 내 생활에 젖어 사는 일상이다. 혼자 계획하고 생각한 만큼 하루를 일구는 데 편안함을 느낀다. 사주 앱인 점신에서 타고난 사주를 보면 이런 말이 쓰여있다.




승연님은 대체적으로 게으름을 피우는 일이 별로 없으며 언제나 계획을 세워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방심하거나 인생을 즐기는 것에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부을 , 스스로 모든 역량을 자신의 목표에 집중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최후의 승리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장점은 너무나 사람을 냉정하게 만들고, 스스로 타인과의 교류나 대인 관계에 돈과 시간을 쓰는 것을 막아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성공할지라도 실제로 당신을 좋아하거나 인정하는 사람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을  있습니다. 사주를 맹신하는 건 아니지만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일하지 않고, 실현한 것도 아니지만 피곤 하리만치 할 일을 정해놓고 그것에 매여 사는 사람은 맞다. 글을 쓰면서 더 심해졌다. 쓸 때도 쓰지 않을 때도 온통 그 생각뿐이라 모든 직, 간접적인 경험들이 쓰는 일로 수렴된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몇몇 친구들에게 요즘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노라고 말했다. 부끄러운 건 죽어도 바깥으로 뱉지 않는 성격인데 서투른 성장이나마 지켜봐 달라는 의미였다. 아예 관심이 없는 친구도 있고, 기계적인 하트만 누르거나 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잘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다시 부끄러울 것이다. 읽고 쓰지 않은 시간도 있었고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의심한 날도 있다. 어떤 날은 쓰지 않은 이유를 합리화하는 내 모습에 질리기도 했다.    “요즘 글 안 써?” 최근 카톡을 보낸 건 메기였다. 네덜란드의 한적한 도시에 사는 워킹맘이자 20년도 넘게 숙성된 내 친구. 메기는 카카오 스토리에 육아 일기를 올리는 것 빼고는 sns를 거의 하지 않아서 카톡으로 안부를 묻는데 대뜸 연락이 왔다. 브런치에 글이 올라오지 않은 탓이다. 엄마와의 여행, 아빠의 기일, 집안 행사와 일들로 바빴다고 구구절절 이야기를 하려다 대충 얼버무렸다. 생각과 달리 간단한 안부를 묻는 말이 아니었다. 그 후에도 ‘글을 기다린다’, ‘이 일로 너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요지의 카톡을 받았다. 카톡이 오는 건 항상 이른 아침이니까 메기의 시간은 늦은 밤이다. 메기는 육아를 하고 가장 힘든 점이 수면 부족이라고 했는데 소싯적 올빼미족 습관은 버리지 못했나 보다. 아이가 일어날 때 깨서 어린이집에 보내고 회사 일을 재택근무로 해낸다. 그 와중에 아이를 픽업하고 매 끼니를 챙길 것이다.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녹초가 되었을 때, 누구보다 늦은 밤의 고요가 소중할 때 쉬지 않고 보냈을 마음이다. 고맙고 부끄럽고 켕겼다. 혼자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걔가 보낸 말들이 너무 든든했다. 어릴 때부터 우등생만 하던 메기는 대기업을 다니다가 갑자기 결혼을 하고 네덜란드로 떠났다. 입버릇처럼 외국에서 살 거라 했는데 정말 그렇게 했다. 얘 인생에는 실패가 있었을까. 우린 그런 이야기를 오래 한 적이 없다. 메기네 집에 수시로 드나들던 중학생 때 하루는 아빠가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애가 왜 너랑 놀아?”라고 한 적이 있다. 대답할 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는데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그땐 공부에 관심이 없었고 메기랑 놀 때는 쿵짝이 맞았다. 둘 다 패션지와 듀스를 좋아했고 잡지 광고를 스크랩했고 쇼핑을 함께했다. 또 매일 보다시피 하면서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20대 때는 첫 유럽 여행의 동행자였고 지금껏 가장 열렬하게 싸워 본 친구이기도 하다. 메기네 집에 가면 늘 채널 v나 엠티비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한 손에 밑줄이 빼곡한 책을 펼쳐 놓고 음악을 들으면서 나랑 노는 것도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 공부는 물론 자기만의 패션 세계가 있고 피아노에 그림 실력까지 겸비한, 그야말로 나와 물이 다른 친구였다. 반면에 성격이 급하고 귀걸이를 자주 잃어버린다. 주변 정리를 잘 못한다. 엄청난 속도로 씻고 걸음걸이가 빠르다. 하기 싫은 건 죽어도 안 한다. 대학생 때 메기가 사는 원룸에 간 적이 있는데 너저분하고 정신없는 집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광속으로 씻고 화장하고 가방까지 챙겨(그 와중에 베이글도 구웠다) 나오더라. 몇 배속 빨리 감기를 사람 버전으로 보는 것 같았다.  현관에 선 나는 놀란 눈으로 언젠가 얘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세상에 없는 캐릭터가 분명했다. 그런 천하의 메기도 육아 앞에서는 시련을 겪는 듯하다. 내 마음처럼 먹고 크고 놀고 말하지 않는 육아의 어려움은 똑똑한 멀티플레이어에게도 변수인 것이다. 육아 일기 속의 메기는 냉탕과 온탕을 수십 번도 오고 가는 것 같다. 미치고 팔짝 뛰겠다가도 예쁘고, 끓어오르는 아줌마 파워를 실감하기도 한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이 매일의 주요 사건이다. 어떤 날의 육아 일기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이 다섯 문장 안에 메기의 빡침과 열정과 사랑이 다 농축된 것 같았다.




육아는 미친 짓. 내 맘대로 되는 것이란 거의 없는. 나란 인간의 자존감 따위는 바닥에 패대기 쳐지는. 그래도 매일매일 웃을 일은 생기는. 내 생애 가장 희한한 프로젝트.      내 고충과 메기의 현실 육아를 비교할 수 없지만 나 또한 글쓰기가 ‘내 생애 가장 희한한 프로젝트‘인 건 사실이다. 1년 넘게 매주 수필을 쓰면서 글쓰기의 기쁨을 알게 됐다. 반면에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올 것 같은 소재 고갈과, 뼈 속까지 발가벗겨진 기분이 덤으로 따라왔다. 이야기란 어느 정도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지만 글에는 결국 내가 담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것까지 써야 하나?’

‘이런 마음까지 드러내야 하나?’


수치심이 드는 글, 그렇지만 솔직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글도 있었다. 가장 괴로운 건 쓸 게 없을 때였다. 안 읽고 안 쓰면서 막 보낸 시간에도 여유를 찾지 못하고 나를 탓하는 시간만 늘어났다. 이미 쓴 이야기와 쓰지 못한 이야기 사이에서 자주 헤맸다. 중요한 건 어떤 감정에 놓여 있더라도 빈 화면을 채우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슬럼프를 핑계 삼을 수라도 있지만 메기는 그런 여유조차 사치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고통은 어떻게든 잘해보려는 데서 파생된 일들이다. TED에서  ‘모든 일에 물어야 할 세 가지 질문’을 주제로 한 스테이시 아브람스(stacey abrams)의 강연을 들었다. 세 가지 질문은 이렇다.      


내가 뭘 원하나? (what do i want?)

내가 왜 원하나?(why do i want?)

어떻게 얻을 수 있나?(how do i get it?)


이 단순한 물음이 인상 깊은 건 질문의 방향이 외부가 아닌 나 자신에게 있어서이다. 문제가 생기고 그게 잘 되지 않을 때 상황 탓을 하는 건 쉽지만 적극적인 나를 발현하기는 어렵다. 가난과 흑인이라는 프레임 때문에 차별받아 온 스테이시 아브람스도 처음엔 어떻게 하면 남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한다. 이 사람이 멋진 건 미국 최초의 여성 흑인 주지사가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상황을 대할 때 이유를 탓하거나 비교하지 않고 우선적인 나의 문제로 들여다본 용기 때문이다.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을 곧 행동으로 옮길 자신에 달렸다는 걸 보여준 강연이었다.  


고로 언제나 불안하더라도 책상에 앉는 것만이 앞으로 겪을 고통이자 행복이라고 결론지었다. 쓰는 사람이 아닌 나를 상상하면 불편하고 어색하다. 읽고 쓰는 데 기댄 시간이 길었고 계속 그럴 거라는 확신이 있다. 게다가 먼 타국에서 내 글을 기다리는 독자가 있다는 게 어디인가. 육아와 글쓰기. 메기와 난 자의로 한 행동에 대해 좌절하고 애쓰면서도 행복해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린  다르면서도 닮았다. 메기가 너랑 왜 놀아주냐고 물었을 때 답하지 못한 과거의 나는 지금 뭐라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힘이 되고 독촉이 되는 메기의 카톡을 떠올리며 다시 책상에 앉았다. 우린 각자의 영역에서 끝까지 물고 늘어질 거라 믿는다. 사주처럼 최후의 승리자는 책상에서 불린 살이 증명할 것이다. 오늘도 생애 가장 희한한 프로젝트의 기록 경신을 위해 달릴 그녀처럼 나도 막막함을 딛고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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