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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소담소

예민함의 대가

by 달다

나는 사람 사이를 흐르는 공기에 쉽게 흔들린다.

함께 흥에 겨워지거나

함께 푸드덕대며 언성을 높이거나

함께 바닥을 치며 침울해지기도 한다.


다른 이의 감정을 살피느라

하루를 망치는 날도 더러 있다.


서점에는 나와 같은 사람을 지적하는 책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침 튀기며 끝없이 말하는 상담사를 마주한듯 하다.

요목조목 친절히 짚어주는 말들을 읽다보면...

'너는 남 눈치나 보는 자존감 낮은 사람이다!'.

판사봉으로 땅땅땅 세 번 두드려 맞은 듯 얼얼해진다.


착잡하게 끄덕이다가 슬그머니 억울했다.

그치만 따박따박 반박할 궁책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 역시, 나의 평안을 해치는

이토록 예민한 자신이 다소 거추장스럽던 참이었으니...

역시, 뭐든간에 문제가 있긴 한가보다.

내 팔에 기댄듯이 누워 선잠을 자던 고양이는

번쩍 눈을 떴다.

귀 끝이 쫑긋해져 긴장한 표정을 보니

또 무슨 소리를 들었나보다.

층간 소음인지... 길고양이 울음인지... 알 도리는 없다.


어찌나 소리에 예민한지 창문이라도 열어두려치면,

깜짝 깜짝 호들갑을 떨어대니

보고 있는 나도 어수선해지기 일쑤다.


나의 고양이가 불안증이 있다거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는 사람보다 3배나 뛰어난 청력을 가졌단다.

이 세상이 녀석에게 얼마나 시끄러울지 안쓰러울 따름이다.


그러고보면, 뛰어남은 피곤함을 동반한다.

뛰어난만큼 예민하게 느끼고 쉽게 동요할테니 말이다.


그리고...어쩌면...

나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내 고양이를 옹호하는 길에

우연찮게 나의 변호사를 만난듯 반가움이 반짝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예민하다는 말 못지 않게

따뜻하다는 말도 곧잘 듣는다.


아쉽지만, 너그러운 사람이어서는 아니다.

내 몫을 듬뿍 떼어다가 내어 준 경우는 손에 꼽는다.


다만, 상대의 감정에 스며들어

내 것인냥 느끼는 일을 잘 하는 편이다.

모습에 위안을 느끼는 곁의 사람들이

나를 따뜻하다 생각했는지 모른다.


나는 신이 나서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나의 예민함이 쓸모 있었던 사례들을

낱낱이 뒤지다가 꽤 흐뭇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뛰어난 감정선을 가진 사람이 맞는 것 같다.

음... 그래 맞다. 확실하다.


나는 이내 으쓱해졌고

이토록 특별한 능력의 대가로 치르는 피곤함정도야,

까짓거 쿨하게 감당할만 하다 싶어졌다.





달다(@iamdalda) •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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