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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다 Jun 19. 2023

지키려는 마음과 내려놓는 마음


타지에 혼자 살며 맞이한 유일한 가족.

나의 고양이.

  

개미굴 같은 원룸과 옥탑방을

번갈아 허덕이던 날들이었다.

밤낮으로 이력서를 쓰느라

정신이 혼미하던 취업 준비 시절,

비루한 주머니 사정으로

그럴싸한 간식 한번 사주지 못해도

나는 고양이와 함께였다.     


불면의 밤이면 곁에 누운 고양이의 앞발을 슬쩍 끌어당겨 잠이 들었고...     

볕을 받은 은빛 털이 들 숨 날 숨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보면

금세 마음이 편안해졌다.     

갸르릉거리는 목덜미에 코를 파묻고

여린 진동을 느끼는 일도 좋았다.     


내 삶이 흥망성쇠로 아찔하게 울렁거려도

나는 언제나 고양이를 지키는 보호자였다.

그 마음은 내게 의심 없는 의무였고 변치 않을 사명이었다.          


나의 고양이는 올해로 열여덟 살이 되었다.

에머랄드빛 눈동자는 희끄무레

탁해졌고 날렵하던 걸음도 둔해졌다.     


얼마 전, 고양이는 갑작스런 발작을 일으켰다.

미친 여자처럼 날뛰며 안고 간 동물 병원에서 녀석은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두려웠다. 시도 때도 없이 불안이 치밀어 올랐다.

그날로 나의 모든 촉수는 고양이를 향했다.

고양이의 작은 움직임에도 경기를 일으키며 다가가 살폈다.     


나의 지극정성에도 고양이는 점차 왼쪽으로 고개가 빼뚜름히 기울었다.

축축한 눈꼽이 자주 꼈고 다리를 절기도 했다.

어떤 날은 죽은 듯이 잠만 잤다.     


모로 누운 고양이의 생기 잃은 털을 바라보며

나는 소리 없이 우는 날이 잦아졌다.     

발을 동동 굴러봐도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점차 나의 무력함에 굴복하게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희미해지는 고양이를

나는 이제 지킬 수 없다.     


나는 더이상...

나의 고양이를 지킬 수 없다.          


-


반려 동물을 사랑하는 순간부터

우리에게는 묵직한 미션이 시작된다.     


나 없이는 살 수 없는 그들을

세상 끝날 것처럼 지키는 일과     

나보다 빨리 사라져가는 그들을

세상 끝난 것처럼 내려놓는 일.     


지키려는 마음과 내려놓는 마음을

함께 해야 하는 이 잔인하고 모순적인 과제를

나는 꾸역꾸역 해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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