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너희를 사랑해
보육교사가 허리를 많은 쓰는 직업인 것을 나는 몰랐다. 어린이집 청소와 기본적인 보수 공사, 짐 나르는 것까지 모두 교사 몫이다. 어린이집 택배가 오면 지정 자리에서 실내로 옮기는 것 역시 교사가 한다. 택배는 다수의 아이가 쓰는 물건이다 보니 크기와 무게가 어마어마하다. 물건 옮길 위치가 1층이면 다행. 4층까지 올려두려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단독 4층 건물인 우리 어린이집에는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 허리를 괴롭히는 것이 무거운 물건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청소와 공사를 하기 위해 쪼그려 앉는 자세 역시 허리에 무리 가는 동작이다. 청소시간 아이들 책상과 교구장은 왜 이렇게 무거운지. 모든 것이 원목이다. 교구장 안에 놀잇감까지 들어 있어 그 무게는 가중된다. 청소할 때마다 빼고 넣으며 움직여야 하는 교구장과 책상은 만 4세 반 교실 기준으로 교구장 10개, 책상 7개다. 비록 우리 반 아이가 10명밖에 되지 않지만 이후 인원이 늘어나면 책상 수도 늘어난다.
일과 중 느끼는 허리 통증은 1을 시작으로 10을 최대치로 봤을 때 '3-4'정도다. 학기 초가 되면 그 수치는 수직 상승해 '8-9'를 웃돈다. 특히 영아반 교사는 최소 한 달, 아침마다 허리가 'ㄱ'로 숙여진다. '베테랑 교사의 우는 아이 달래는 법'에서 말했듯 적응을 어려워하는 아이는 최소 2주, 울음이 멈추지 않는다. 아이가 홀로 우는 건 아니다. 우는 아이를 위로하고 진정시키기 위해 내가 안아준다. 앉아서 안겨있으면 좋으련만 아이는 일어나라고 발길질한다.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운 아이를 위해 원하는 것 하나쯤은 들어줘야 한다. 아이를 앉고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양 옆으로 흔들며 아이를 진정시킨다.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내가 집중하는 건 오로지 아이의 적응. 몸을 보살피는 건 두 번째다. 아이가 하원하고 허리라도 피려 하면 '우두둑'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새 학기 아침마다 나는 꼬부랑 할머니가 된다. 허리를 '콕콕' 찌르는 아픔을 삼키기 위해서다.
허리뿐 아니라 검지와 중지의 고통도 무시할 수 없다. 내 검지와 중지는 나만의 것이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사용하는 모두의 것이다. 손이 작은 아이들은 산책할 때 커다란 선생님 손보다 손가락 잡는 것을 좋아한다. 손가락 하나는 부족한 느낌이다. 두 개가 딱이다. 그렇게 우리는 산책을 한다. 하지만 아이가 바르게 걸으면 다행. 자칫 몸이 갸우뚱하면 내 손가락 관절 역시 손에서 갸우뚱한다. 순간의 짜릿함으로 얼굴이 구겨지며 작게 소리를 지르지만 아이는 무슨 일 있냐는 듯 다시 내 두 손가락을 잡고 걸어간다.
기저귀 착용하는 아이들을 돌볼 때도 내 검지와 중지, 거기에 엄지까지 더해 열일한다. 평균적으로 기저귀 갈이는 오전 9시 등원, 오후 5시 하원하는 아이 기준으로 오전 간식 후, 오전 자유 놀이 중, 점식 식사 후, 낮잠 후, 하원하기 전까지 모두 다섯 번이다. 거기에 정기적으로 큰 일을 보면 총 여섯 번. 아이가 한 명만 있는 건 당연 아니다. 최소 10명이 있다고 가정하면 기저귀 갈이는 대략 60번 해야 한다. 내 세 손가락은 쉼 없이 움직인다. 기저귀 갈이를 끝나고 누워있던 아이가 일어날 수 있도록 검지와 중지를 내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손가락이 빠질 것 같지만 안정적으로 일어날 수만 있다면 이 손가락쯤이야 기꺼이 내준다. 막상 기저귀 갈이에 대해 적다 보니 애만 안 낳았을 뿐 내 손 모가지는 10 쌍둥이 키우는 엄마 마냥 손가락이 너덜너덜하다.
아이들과 상호작용 포인트는 눈높이 교육이다. 아이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시선이다. 어린이집 교사는 아이들과 대화할 때 시선을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거나 허리 혹은 고개를 숙인다. '어정쩡한 자세' 그것이 바로 아이를 대하는 방법이다. 구부정한 허리와 앞으로 튀어나온 목, 쪼그려 앉은 다리는 내 허리와 목, 골반과 무릎에 치명적인 자세다. 이로 인해 내 관절은 '삐그덕 삐그덕' 아우성친다. 걸을 때마다 골반에서 들리는 '뚜둑 투둑' 소리는 내가 가고 있음을 주변인들에게 알려준다. 추운 날 계단을 내려올 때면 찌릿한 무릎 통증으로 가던 길을 멈출 때도 있다.
이것 말고도 점심식사 시간, 아이들과 정신없는 상황에서 급하게 먹다 생긴 턱관절 통증, 아슬아슬 계단을 오르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움직이느라 생긴 발목 관절 통증,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힘쓰다 부러진 발가락 관절 통증까지. 저마다 나에게 아우성친다. '삐그덕, 뚜둑 투둑, 우두둑, 찌릿, 콕콕...'
그럼에도 나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좋다. 학기초 모든 것이 낯설지만 교사인 나를 안전한 존재로 믿고 안기는 순박한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산책 중 신기한 것을 찾아 제일 먼저 나에게 보여주는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쉬'해놓고 도망가다 얼굴만 '쏙' 숨는 개구쟁이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때 부리다 혼나서 '펑펑' 울다가도 다시 내 품에 안기는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비록 나는 보육교사를 하며 관절을 잃어가지만, 그보다 더 큰 감동을 준 너희들 때문에 "그래 난 다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