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흘러도 괜찮은 "반려 살림"

by 다정한온기



넘쳐흘러도 괜찮은 살림



제대로 된 살림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작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내 살림은 언제나 369처럼 띄엄띄엄 대충대충 숨기기에 급급했고

겉으로만 단정해 보이려 했던 시절들을 지나

외적인 살림 말고 내적인 살림까지 시작하면서 비로소 나의 진짜 살림이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소모적인 살림을 하지 않기 시작하면서 힘들다는 말보다

어떻게 하면 나를 편하게 하는 살림을 할까 고민하게 되고

내가 편하면 그것은 오롯이 가족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한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의 모든 걸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 집에서 내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었다.

아주 어둡고 구석진 곳까지 나의 생각이 들어가고 흔적과 채취를 남기는 것 또한 나였다.

그래서 나는 나를 돌보고 그 돌봄으로 가족들을 돌봐준다.






반려 살림



요즘 반려라는 말을 붙여 반려동물, 반려식물, 반려 용기 그만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것들에게 붙여지는 "반려"

단어를 난 우리 집 살림에도 붙여본



내 손길이 닿기만 해서 반려 살림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흔한 밥을 짓고, 야채를 썰고, 때 묻은 냄비를 씻으면서 난 많은 생각을 나의 살림들에게 입히고 각인하고 있다

그 생각이 고민이었던 내일의 할 일이었든 무슨 생각이든 그 살림에게 나의 생각을 심으며

다음번 밥 짓기를 하거나 설거지를 할 때면 그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나도 기억한다 나의 생각을 입고 있는 물건들을 보며 내가 잊어버리고 있던 생각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

내 생각까지 가지고 있는 나의 살림 물건들이라며 "반려 살림"이라는 말 이전 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주방



주방에서의 생각하기는 나의 마음 컨트롤에 아주 좋은 습관이었다.

하나의 행위에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연결고리를 만들어 꼭 새끼 꼬듯 줄줄이 이어진다.

결국 나의 마음에 평안함을 주곤 한다



해야 될 것들이 늘 나를 기다리고 있는 주방에서 한글을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한 가지씩 기억하며 해 나가기엔

나의 자유로운 시간마저 갉아먹게 된다.

제대로 된 살림을 하며 내 육체가 편해지기도 했지만 나에게 자유의 시간도 주어지고 있었다.




얼룩진 냄비를 세척하려고 과탄산소다를 넣은 냄비 속 물이 끓으면

삶아야 할 소창 행주를 넣어본다.

냄비는 내게 단 1초의 느림도 허락하지 못하고 금세 넘쳐버린다

넘쳐 흘러도 괜찮다 그것 역시 하나의 목욕재계 같은 느낌이랄까

소창 행주와 함께 부르르 끓어오른 냄비 속 물을

그냥 버리지 않고 냄비의 겉면에 얼룩진 곳을 지우기에

안성맞춤인 스텐설거지통에 함께 넣어본다

그 참에 스텐 설거지통 역시 과탄산소다로 물때를 지우는 득을 보게 된다.

설거지통에 자리가 남았다

제일 작은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을 세워 넣고 요리조리 돌리며 얼룩진 부분을 조금이라도 지워본다.















그사이 소창 행주는 비누로 살살 문질러 주면

언제 얼룩이 졌었냐는 듯 새로 태어난 새하얀 행주는 마음까지 말끔해진다. 그저 별것 아닌 행주일 뿐이데 말이다













이렇게 하나씩 만들어지는 나의 반려 살림 들은 내게 힘들고 귀찮은 그냥 해야만 하는 것들이 아니라

또 하나의 가족 같은 물건으로 나의 "반려 살림" 이 되어가는 중이다.




비록 나와 언어로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내 마음을 입히면서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어느 인터뷰에서 문태준 시인은 책상 위에
레몬이나 생화, 돌을 두고 그 정물들에 마음을 입힌다고 했다
할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엿한 책상 생활자 송은정-








난 레몬이나 생화, 돌은 아니지만 그리고 내 책상 위도 아니지만

늘 봐야 하는 살림에 마음을 입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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